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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대머리'의 어원

by 언덕에서 2023. 4. 11.

 

'대머리'의 어원 

 

 

‘여덟 시 통근길에 ☞대머리총각’이란 유행가가 있다. 하여간 이 노래가 불리면서부터 이른바 대머리총각들의 열등감 같은 것이 조금쯤 가셔졌지 않았나 싶어지기도 한다. 처녀가 ‘오늘도 만나지려나 기다려진다’고 애절하게 노래 불러 주었으니 말이다.

 대머리 까진 사람은 정력이 여느 사람보다 높다는 말도 있다. 대개는 턱수염이라든지 그 밖의 곳에는 털이 많은 사람이 대머리이기도 한 것인데, 남이야 울렁거린다는 건 장가갔나 근심된다 건 간에, 젊은 나이에 훌러덩 벗어진 이마가 그렇게 달가울 것은 없는 일이다. 필자도 20대의 후반기부터 슬슬 벗겨지기 시작하더니 이젠 별명 ‘대 선생’, 하여간 불혹을 넘어선 이 나이에도 그렇게 기분 좋을 건 없는 처지다.

 말을 놓는 친구들은 숫제 이름 대신 ‘대머리’라고 불러버리는 것인데, 필자는 그 병리적 원인관계도 연구해 보았지만, 그 말에 대해서도 생각해 본 일이 가끔씩 있었다. ‘대머리’는 언제부터 쓰이기 시작했으며, ‘대’에 무슨 뜻이 있는 것인가 하고.

 ‘대머리’라 않고 ‘민머리’라 할 때는 그런 대로 뜻을 알 만해진다. 한자로 ‘禿山’이라 하는 훌러덩 벗겨진 산이 ‘민둥산’이며, (한자의 ‘禿’은 ‘秀’ 자와 궤를 같이 한다) 여자의 화장하지 않은 소안(素顔)이 ‘민낯’인 것과 같이, ‘민’은 본디 머리가지(접두어)로서, 아무런 꾸밈새나 덧붙어 딸린 것이 없음을 나타내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민대가리’, ‘민머리’ 같은 것이 대머리의 뜻으로 됨은 당연한 이야기일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 이젠 ‘민머리’쪽은 거의 쓰이지 않는 말이고 ‘대머리’ 쪽이 강세다. (사실은 ‘민머리’란 말속에는 벼슬을 못한, 즉 감투를 써 보지 못한 머리라는 뜻도 있었다.)

 ‘대머리’는 ‘머리’의 낮춤말인 ‘대갈머리’쪽에서부터 온 것이나 아니겠느냐는 생각이 있긴 하다. ‘身體髮膚 受之父母(몸과 털, 살갗은 부모로부터 물려받았다)의 사상에 젖어 있을 때만 해도 아무리 인공이 가해지지 않은 현상으로서의 대머리일지언정 어머니 뱃속에서 나올 때와는 달라져 버린 그 벗어진 현상이 '불효'였던 것이요, 그래서 '대갈머리'로 낮춰 쓰다가 '대머리'가 아니겠느냐는 생각에서이다. ('대가리'는 중세어에서는 '껍질'이란 뜻이 있기도 했다.)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대’ 그 자체에서 하나의 뜻을 찾아보는 방향도 있을 것 같다. 크고, 밝고, 드러내놓는다는 뜻으로서의 머리가지(접두어)로서 ‘대’라는 말을 생각할 수 없을 것인가 함에서이다. ‘대낮’이라든지 ‘대보름’, 승부를 마지막으로 결정한다는 뜻으로 쓰이는 ‘대매’라는 말 외에도 한번이란 뜻으로 ‘대번’ 할 때의 머리가지로서의 ‘대’의 성격 따위가 그렇고, 앞에 든 ‘대보름’의 경우처럼, 더러는 한자로 ‘大’ 자를 얹어 쓰는 말의 경우도 사실은 순수한 우리말로서의 ‘대’가 아니었던가 하고 생각해 볼 수 있음에서이다.

 지난날의 지명에 ‘대섬’, ‘대고지’, ‘대나무’ 같은 것이 있고, 그 ‘대’가 ‘大’나 ‘竹’으로 음ㆍ의역 되고 있지만, 혹시 위에 말한 ‘대’에서 온 것이나 아닌지 모른다.

 

 

- 박갑천 : <어원수필(語源隨筆)>(1974) -

 

 


☞유행가 「대머리 총각」은 1968년 한국에서 제작된 심우섭 감독의  영화의 주제곡이다. 구봉서, 서영춘 등이 영화의 주연으로 출연하였고 신태일 등이 등이 제작에 참여하였다. 이 대중가요는 김상희가 불러 크게 히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