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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소설

심훈 장편소설 『직녀성(織女星)』

by 언덕에서 2023. 2. 9.

 

심훈 장편소설 『직녀성(織女星)』

 

 

소설가 · 영화감독 심훈(沈熏. 1901∼1936)의 장편소설로 1935년 [중앙일보]에 연재되었다. 심훈은 경성제일고보 4학년 때 3.1 운동 가담으로 체포되었고 출옥 후 학교 당국으로부터 퇴학 처분을 받았다. 이후 그는 중국 지강대학(芝江大學) 극문학부에서 공부하였으나복역 시절의 후유증으로 결국 중퇴했다. 1923년에 귀국하여 신극 연구 단체인 극문회를 만들었고 동아일보조선일보에서 기자 생활을 하며 시와 소설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1925년 5월에 철필구락부 사건으로 동아일보에서 퇴사했다. 그러나 동아일보를 떠난 후에도 대한민국 최초의 영화 소설인 <탈회>를 1926년 11월부터 [동아일보]에 연재했다. <탈회>를 계기로 영화계에 진출해 이듬해 이경손 감독의 <장한몽>에 배우로 출연했으며, <먼동이 틀 때>의 시나리오를 쓰고 각색 및 감독을 맡았다. 1930년 [조선일보]에 중편소설 <동방의 애인>을 연재했는데, 일본 경찰의 검열에 걸려 완성되지 못하고 집필이 중단되어 미완성 소설로 남았다.

 장편소설 「직녀성」은 <영원의 미소>, <상록수> 등과 함께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고 있다.  심훈은 열여섯 살 때 부모의 의사에 따라 왕족인 후작 이해승의 누이 이해영과 결혼했다. 처음에는 그럭저럭 지내지만 중국에서 3년 동안 있다가 온 뒤에도 도무지 애정이 일지 않아 1924년 이혼을 하기에 이른다. 1930년 그는 무용가 최승희가 후계자로 점찍어 둔 열일곱 살짜리 미모의 무용가 지망생 안정옥과 동거하다가 곧 재혼을 한다. 바라던 대로 자유연애에 의한 결혼을 하게 된 것이다. 장편소설 「직녀성」은 심훈과 조혼하여 이혼했던 첫째 아내, 왕족 여성 이해영에 대한 회고 작품이기도 하다. 남편의 외도와 아들의 죽음 등의 고통을 극복하고, 남편과 이혼한 후 교육 사업에 매진하는 여성 인물 이인숙을 통해 봉건적 관습의 굴레에서 벗어나 정체성을 찾아가는 여성의 자립 과정을 그리고 있다. 1937년 9월 <박문서관 장편전집> 1차 9권, 10권에 상ㆍ하 2권으로 나뉘어 출판되었다.

 『직녀성』은 주인공 이인숙의 비극적 삶의 굴절을 통하여 조혼(早婚)에 대한 비판과 자유 연애관을 바탕으로 한 신식 결혼관을 주제 의식으로 하는 계몽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주인공 이인숙은 이한림의 막내딸로서 전통적 가문의 가정교육 속에서 부모의 사랑을 받으며 성장한다. 그녀는 여덟 살 때 두 살 아래인 윤 자작의 막내아들 윤봉환과 약혼을 하였고 열네 살 때 결혼을 하게 된다. 어린 나이에 혼인을 하게 된 이인숙은 신랑과 함께 지내지도 못하고 어린 시누이와 함께 자면서 심한 시집살이를 겪는다. 그녀는 친정 부모님이 그리워 죽을 지경이었으나 시댁에서는 이를 용납하지 않는다.

 그러다가 친정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접하고 달려갔으나 이미 운명한 뒤였다. 겨우 초상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시증조모가 돌아가셨다. 겨우 삼 년이 지났을 때에야 남편인 윤봉환과 부부로서 생활하게 되어 행복한 시절을 보낼 수 있었다. 그런데 남편인 윤봉환이 미술 공부를 위해 일본으로 떠나게 되었다. 일본으로 간 남편 봉환은 자기를 견우성에, 인숙을 직녀성에 비긴 편지를 보내면서 서로 사랑의 편지를 주고받는다.

 그러나 막상 방학이 되어도 윤봉환은 돌아오지 않는다. 마침내 일본에서 윤봉환이 돌아오지만 신여성과 사귀며 집에는 손님처럼 들렀다 갈 뿐이다. 윤봉환은 자신의 친구와 자신의 애인인 신여성이 어울리는 현장을 목격한 후 낙심하여 집으로 돌아온다. 그간 윤봉환의 동생 윤봉희는 자신이 사랑하던 고학생 박세철이 사상 문제로 관에 붙잡혀 가자 이를 고민하다가 자살을 기도하지만 실패한다. 윤 자작 또한 중풍으로 쓰러져 가세가 급격하게 기운다. 이인숙은 남편 때문에 성병에 걸리지만 윤봉환은 오히려 이인숙의 외도를 의심한다. 윤봉환의 의심은 깊어지고 이인숙은 친정으로 피신한다. 그녀는 삯바느질로 생계를 이어 가며 학교에 다시 다닌다.

 한편 윤봉희는 세철과 비밀리에 결혼한다. 시집과 관계를 끊은 이인숙이지만 윤봉희와는 친밀한 관계를 유지한다. 이인숙은 우수한 성적으로 학교를 졸업하고 윤봉환의 아들 윤일남을 낳는다. 그러나 윤봉환은 윤일남을 자기 아들이라고 인정하지 않는다. 여학교 교사가 된 윤봉환은 음악 선생과 약혼하고, 이인숙에게 이혼을 요구한다.

 이를 보다 못한 윤봉희가 인숙의 누명을 벗기지만 윤일남이 감기에 걸려 앓다가 죽는다. 실의에 빠진 이인숙이 자살을 기도하지만 실패한다. 그 후 이인숙은 윤봉환과 이혼하고 유치원 보모가 되어 아이들을 돌보는 일에 매진한다.

 

영화 [직녀성], 1968년

 

 심훈은 15세 때 왕족 가문의 이혜영과 중매결혼(부친은 면장, 이혜영 부친과 친구 사이였다)했으나 1920년 중국으로 건너갔다가 귀국 후 이혜영과 이혼을 했다. 유부남 심훈은 모 여고 교사와 연애를 해 그녀의 요구로 이혜영과 이혼했으나 교사와의 결혼도 여자 부모의 반대로 성사되지 못했다. 1930년 무희(舞姬) 안정옥과 재혼, 3남을 두었다

 심훈은 손이 없어 이해영과 헤어졌고 1924년 이후 동아일보의 기자로 있으면서 나라 없는 울분을 술로 달랬으나, 아무리 기생이 구애를 해도 거들떠보지도 않아 호탕하고 멋진 미남의 무관심에 기생들은 가슴만 불태웠다고 전해진다.

 1930년 12월 24일, 심훈은 19세의 무희인 안정옥과 혼인하여, <독백> <그날이 오면> 등을 발표하다가 장남 재건과 같이 충남 당진에 내려가 창작에 전념하게 된다. 1933년 장편 <영원의 미소>를 조선, 중앙일보에 연재하고 단편 <황공(黃公)의 최후>를 발표한다. 이해영에 대한 회고 작품이라고 하는 「직녀성」을 조선 중앙일보에 연재하여 그 고료로 부곡리에 집을 지어 <필경사>라고 불렀다.

 이 필경사에서 쓴 <상록수>가 1935년 동아일보 15주년 현상모집에 당선되어 상금 5백 원을 받아 그중에서 상록학원을 설립한다. 1936년 9월 6일 대학병원에서 급서(急逝)하여 심훈의 문학은 더 펼치지 못하고 만다. 시집 <그날이 오면>이 일제의 검열로 출간되지 못하고 조선일보에 연재하던 <동방의 애인> <불사조>가 검열로 중단되고 말아 미완성으로 끝난다.

 

 

 심훈의 소설은 다음과 같은 몇 가지 면에서 주목할 수 있다.

 첫째는 존재적 현실을 극복하려는 행동성이 강력하게 나타나 있다. 식민지 치하의 질곡 속에서 신음하는 현실, 낡은 관념과 관습에서 새로운 것을 지향하는 동력을 저해하는 현실을 극복하여 새로운 내일을 지향하려는 정신이 투철하게 나타나 있다. 

 둘째는 사랑을 기저로 한 인간 애정이 발현되어 있다. 역사적 현실의 인지에서 인간의 본질을 외면한 표면적인 현실의 인식에 머무르는 경우가 적지 않았으나 심훈은 사랑을 비롯한 인간의 본질의 인지와 그 역동에 의한 현실극복의 지표를 추구한다. <상록수>에서 채영신과 박동혁의 사랑과 신앙, <영원의 미소>의 수영과 계숙의 현실 극복의 집요한 자세 등은 모두가 사랑을 기저로 한 인간애의 발현이다.

 셋째는 장르의 확대에 의한 표현영역의 확대와 일탈이다. 심훈은 주로 소설을 쓰면서 저항정신이 나타나 있는 시집 <그날이 오면>의 시, <탈춤>의 영화소설 등 장르의 확대에 의해 그의 문학적 영역의 다양성과 확대를 보여준다. 그러나 소설은 전통적인 기법에서 벗어나지 않고 있어 그의 기법과 문체는 변혁보다는 영역의 확대라는 데 특징이 있다.

 이와 같이 심훈은 식민지 치하란 역사적 현실에서 존재현실을 극복하려는 행동성을, 사랑을 기저로 한 인간애의 정신으로 1930년대 소설에서 사회의식에 의한 현실과 지향적 성취의 갈등을 부각하고 삶의 지표를 제시하려는 작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