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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소설

이상 단편소설 『지팡이 역사(轢死)』

by 언덕에서 2023. 2. 15.

 

이상 단편소설 『지팡이 역사(轢死)』

 


이상(李箱. 김해경. 1910∼1937)의 단편소설로 1934년 [월간 매신]지에 발표되었다. 이상이 황해도 배천 온천장을 다녀온 개인 경험담을 적은 내용으로 수필로 간주해도 무방할 정도로 단편소설과 수필의 경계선 상에 있는 글이다. 여기에서 역사란 인류 사회의 변천과 흥망의 과정 또는 그 기록을 의미하는 '역사(歷史)'가 아니라, 차에 치여 죽음을 의미하는 '역사(轢死)'로 '지팡이가 차에 치어 죽음'을 의미한다.
 한편 단편소설 「집팽이(지팡이) 轢死」는 1920년대 한국의 몇몇 문인들이 광화문의 해태와 관련해 생산해 낸 ‘조선인의 이야기’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평가가 있는 작품이다. 이상은 1930년대 한국인들의 불구적 주체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해태를 심판관으로 호명해 판결을 내리게 했고, 그 판결의 내용을 상징하는 것이 이 소설의 제목이어서 그러한 주제를 함축하고 있는 ‘지팡이 역사’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 소설은 의미심장한 내용도 숨겨져 있지 않고, 작품 자체의 복선 또한 찾아지지 않는 콩트에 불과한 내용이어서 작품 자체를 침소봉대 평가했다는 평가 또한 존재한다.

 

이상(李箱.김해경.1910-1937)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주인공이 황해도 배천에서 온천을 즐기고 경성으로 돌아가던 길의 화차(火車)에서 화자 '나'와 동행한 친구 S는 화차 바닥에 뚫린 구멍을 발견한다. 그게 어떻게 생겼는지는 의문이지만 둘은 그 구멍을 침 뱉는 구멍(唾口)이라고 단정 짓는다. 그러던 중 S가 해태 담배를 내게 주어 불을 붙이려는데 옆에 앉은 해태처럼 생긴 한 노인이 화자(이상)에게 담뱃불을 빌린다. 이후 담배를 피우던 노인의 지팡이가 열차 바닥의 구멍에 들어가서 온데간데 없어져버린다.
  여기서 노인은 지팡이를 찾지 않겠다고 말한다. 주인공이 철길을 따라가면 지팡이를 찾을 수 있다고 하자 노인은 돈 주고 산 것이 아니니까 잃어버려도 좋다면서 태연자약하게 담배를 피운다. 심지어 담뱃재를 구멍에 떨어뜨리는 노인을 보고 주인공은 섬뜩해하기까지 한다.

 

일제시대 온천장


 이상은 1930년대 후반에 유행된 자의식 문학의 대표적인 작가로 꼽히며, 우리나라 최초로 심리주의 적인 수법으로 자의식의 세계를 묘사했다. 그는 독특한 위트와 패러독스로 근대적 자의 의식을 강렬하게 옹립하고 나섰으며, 그의 자의식의 특이한 점은 작중 인물 등이 자의식의 실의에 의해 움직인다는 사실이다. 그는 심리주의 기법에 의해 내면세계를 다룬 초현실주의 기법과 심리주의 경향의 난해한 실험적인 작품을 썼는데, 이와 같은 경향은 시와 소설에서 공통된다. 

 이상은 1933년 폐결핵으로 총독부 기사직을 그만두고 황해도 배천온천으로 요양을 떠났다. 이곳에서 그의 소설에 등장하는 기생 금홍을 알게 되었다. 이후 종로에 다방 [제비]를 열어 금홍과 동거하면서, 이태준, 박태원, 김기림, 정인택, 조용만 등 다방을 출입하던 문인들과 어울렸다. 이 소설은 이상이 황해도 백천에 요양 갔을 때의 경험이 만든 작품으로 추정된다. 술을 먹고 새벽에 들어와 여관에서 자고 난 주인공과 S는 여관 주인아주머니가 차려준 밥상을 받고 돈을 지불한 후 기관차를 탄다. 그 안에서 여러 사람을 만나는데 그중에 지팡이를 가진 노인을 만났고, 지팡이가 달리는 열차 바닥의 구멍에 빠졌다는 단순한 내용이다.

 


 이상 문학적 특징은 ‘난해하고 자기중심적이며 피해망상적인 데’ 있으며, 그의 세계는 ‘당대의 세기말적 위기감으로부터 우러나온 현대인의 고민을 천재적 재능을 빌어 표출한 것’이라는 찬사와 ‘자기기만의 속임수에 지나지 않는다’는 혹평 속에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오감도>에서 거의 무모할 정도로 대담한 언어를 실험한다든지, 그 외의 작품에서는 아라비아 숫자나 고등 대수의 수식까지도 사용했다. 그의 초현실주의 시들은 몽환의 분위기와 의식의 착란이라고 하며, 이상의 이런 시작 태도는 당대에 심한 물의를 일으켰다. 그러나 문학의 특징이 개성화에 있다고 한다면, 그의 문학적 특징이 시대의 선구자적 역할을 한 점을 간과할 수 없다.

  「지팡이 역사(轢死)」는 1인칭 화자인 주인공과 그의 친구 S가 황해도 배천온천에 여행 갔을 때 과음 후 여관에서 잠을 잔 뒤, 기차를 타고 어디론가 가고 있는 과정에서 만난 인간 군상에 대해 묘사한 만연체의 문장의 소설이다.
  
내용이나 소설의 전개 방식이 상당히 모던한 작품으로, '무슨 일이 벌어졌나'라는 물음이 지속적으로 변주되는 작품으로 의도적으로 긴 문장을 이어 붙인 점이 눈에 띈다. 1인칭 관찰자 시점에서 쓴 이상 자신이 '희문'이라고 이름 붙인 단편소설이지만, 이상 소설 특유의 난해한 소설 구성은 이 작품에서는 눈에 띄지 않는다. 이 작품을 읽은 후의 느낌은 소설이라기보다는 콩트나 수필이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