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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현대소설

막스 프리쉬 장편소설 『호모 파버(Homo Faber)』

by 언덕에서 2023. 1. 17.

 

막스 프리쉬 장편소설 『호모 파버(Homo Faber)』

 

 

스위스 소설가 막스 프리쉬(Max Frisch, 1911~1991)의 장편소설로 1957년 발표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종식 이후 12년이 지난 1957년 출간된 이 소설은 기술 문명을 신봉했던 인류의 오만함을 비판하기 위해 오이디푸스의 비극적 여정을 환기한다.

 전 세계를 초토화한 두 차례의 전쟁이 종식되고 12년이 흐른 뒤 출간된 『호모 파버』(1957)는 기술 문명을 신봉했던 인류가 거대한 재앙 앞에서 얼마나 무력해질 수 있는지 보여 주는 소설이다. 현대인의 정체성 혼란을 정교하게 그려 온 막스 프리쉬의 문학 세계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작품으로,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로부터 가져온 비극의 원형에 현대 문명에 대한 비판을 덧입혀 서늘한 울림을 자아낸다.

 제목인 ‘호모 파버’는 도구적 인간을 가리키는 철학 개념으로, 합리주의적 사고에 매몰된 채 파국으로 치닫는 주인공 발터 파버를 상징한다. 운명에 휩쓸린 인간의 초상을 극적으로 묘사한 이 작품은 과학 기술의 수혜 속에서 초자연적 섭리에 무뎌져 가는 오늘날의 현대인들에게도 경종을 울린다. 현대판 오이디푸스라 할 수 있는 발터 파버의 원죄는 자연을 억압하고 지배하려는 오만한 태도에 있다. 오직 물질문명과 과학 기술만을 맹신하던 그는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나서야 운명을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결국 『호모 파버』의 비극은 과학이나 논리로 설명할 수 없는 자연의 섭리, 삶의 고귀함에 대해 역설하고 있다. 이 작품은 1991년에 샘 셰퍼드와 줄리 델피 주연의 영화 <여행자(Voyager)>(국내에서는 「사랑과 슬픔의 여로」로 개봉)로 제작되기도 했다.

 

영화&nbsp;&nbsp; 「 사랑과 슬픔의 여로 」, 1991년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뉴욕 맨해튼에 사는 발터 파버는 스위스에 사는 50세의 망명객으로 유네스코에서 엔지니어로 일하고 있다. 그는 개발도상국 기술 원조프로그램을 수행하기 위해 세계 여러 나라를 방문한다. 그는 과학과 논리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모든 것을 정확하게 격식에 맞춰야만 직성이 풀리는 기계와 같은 인간이다. 그가 탄 베네수엘라행 비행기가 멕시코 사막에 불시착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질서 정연한 그의 삶에 끼어든 이 혼란과 생각지도 못했던 과거 가장 친했던 친구의 동생과 만남은, 파버로 하여금 묻어두었던 과거와 마주 보게끔 몰고 가는 사건들의 시작이다.

 운명을 인정하지 않는 파버에게 젊고 아름다운 여인이 나타난다. 한나와 결별한 뒤 50세가 되도록 독신으로 지내고 있는 파버 앞에 나타난 여인은 그의 딸 자베트였다. 하지만 그는 딸의 존재를 전혀 알지 못했다. 전쟁 전에 파버에게는 독일계 유태인 한나라는 여자친구가 있었다. 한나가 임신하자 파버는 결혼하자고 했지만 한나는 거절했다. 그녀가 아이를 지울 거로 생각한 파버는 그녀를 떠났는데, 그녀가 실제로는 다른 남자와 결혼했다는 사실을 멕시코에서 알게 된다. 이 충격적인 사실로 금이 가기 시작한 파버의 이성이라는 갑옷은, 그가 한나와 존재하는 줄도 몰랐던 딸 자베트와 재회하면서 산산조각이 나고 만다.

 자베트를 만난 뒤 기계 인간(냉혹한 인간) 파버는 사물에 대한 객관적 태도와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인다. 자베트와 더불어 아침에 떠오르는 해를 보는데 파버가 그간 고수했던 ‘설명 가능한 언어’ 대신 ‘비유적이고 환상적인 차원의 언어’를 봇물 터지듯 터뜨린다.

 어느 순간 파버는 자베트가 자신의 딸이라는 사실을 미리 말하며 끊임없이 자신을 변호하면서 얘기를 이끌어간다. 파버는 자베트가 위급해진 상황에서는 한나를 만나고 비로소 딸의 존재를 확인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주절주절 변명한다. 냉철하다고 스스로 자부했던 파버의 흔들리는 모습에서 기계 인간의 허술함이 나타난다. 파버는 친딸을 몰라봤던 자신을 ‘차라리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그것이 나의 유일한 바람이다. 이놈의 포크 두 개를 집어 들고, 내 얼굴에 내리찍어, 두 눈을 뽑아버리는 게 어떨까’라고 자책한다. (‘두 눈을 뽑아 버린다’라는 대목에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연상하게 된다)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데 실패하고, 논리로 환경을 제어할 수 있다고 고집스럽게 믿어온 파버에게 이 만남은 행복을 가져다줄 수 없다. 소설은 비극적으로 끝난다. 자베트는 충분히 방지할 수 있었던 사고로 죽는다. 완벽한 기계 인간으로서 모든 걸 분석하고 수치로 계산하던 파버는 위암 수술을 받게 된다. 죽음을 앞두고 비로소 발터 파버는 자신이 진실하게 살아보지 못했으며, 진실하지 못하였음을 깨닫는다. 하지만 죽음을 기다리면서도 통계적인 설명으로 자기의 종말을 해명하기 시작한다.

 

영화 「사랑과 슬픔의 여로」, 1991년

 

 

 유네스코 소속 엔지니어인 발터 파버는 냉철하고 냉정해서 '기계 인간'이라 불린다. 여느 때처럼 뉴욕 라과디아 공항에서 출장길에 올랐으나, 멕시코 타마울리파스 사막에 불시착하는 사고를 겪는다. 확률과 합리주의로 무장한 기계 인간과 같은 그에게 기묘한 우연과 사건이 거듭 일어난다. 비행기 옆자리 승객이 옛 친구 요아힘의 남동생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데 이어, 크루즈 여행에서 만난 묘령의 소녀 자베트는 요아힘의 아내이자 한때 자신의 연인이었던 한나와 닮았다. 

 통계학적 사고로 무장한 발터에게 기묘한 우연은 자꾸 거듭된다. 서로에게 이끌려 사랑에 빠진 발터와 자베트는 함께 밀월여행을 떠나고, 끝내 그리스 비극의 종착지인 아테네에 당도한다. 그곳에서 발터는 드디어 한나와 맞닥뜨린다. 개발도상국 기술 지원 업무를 맡아 지구 곳곳을 전전하며 살아온 발터는 아득한 신화의 도시에 정주하며 직관과 영감으로 삶을 이어가는 한나의 모습을 잠시 낯설어한다. 그리고 발터는 결국 한나의 입을 통해 끝까지 부정하고 싶었던 진실과 직면한다. 자베트는 다름 아닌 자신과 연인이었던 한나 사이에서 태어난 친딸이었던 것이다. 

 

 

 이야기는 총 2부로 구성된다. ‘보고서 Ein Bericht’라는 부제처럼 기록문 형식을 취한 첫 번째 정거장은 주인공 발터 파버가 우연히 과거의 인물을 맞닥뜨리며 기억을 술회하는 과정으로 전개된다. ‘두 번째 정거장은 암 수술을 받기 위해 입원한 발터가 일주일 동안의 상황과 상념을 써 내려간 일기 형식을 취한다. 두 정거장의 한복판에는 발터 파버의 옛 연인 한나가 있다. 한나는 발터의 합리주의적 세계관과 대립하며 신화와 자연으로 이루어진 세계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주인공의 이름이 발터 파버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 철학자 앙리 베르그송은 도구를 사용함으로써 환경을 개척하는 인간을 두고 ‘호모 파버 Homo Faber’라 일컬었다. 유네스코 소속 엔지니어로 일하는 발터 파버는 비행기, 카메라, 타자기, 면도기 같은 기계 없이는 하루도 살아갈 수 없는 현대인의 전형이다. 이성주의와 물질문명에 경도된 발터의 태도는 멕시코 타마울리파스 사막에 불시착하는 사고를 겪고서도 이어진다. 구조를 기다리던 그는 옆자리 승객이 한나의 전 남편이자 학창 시절 친구인 요아힘의 동생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발터는 순간적으로 한나와의 즐거웠던 시절을 그리며 한나가 자신을 ‘호모 파버’라는 별명으로 놀려 댔던 사실을 떠올린다. 그렇다고 해서 감상에 빠지거나 동요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그는 자신을 둘러싼 모든 상황을 타자기와 카메라로 기록할 뿐이다.

 현대판 오이디푸스라 할 수 있는 발터 파버의 원죄는 자연을 억압하고 지배하려는 오만한 태도에 있다. 오직 물질문명과 과학 기술만을 맹신하던 그는 자신의 과오를 깨닫고 나서야 운명을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결국 『호모 파버』의 비극은 과학이나 논리로 설명할 수 없는 자연의 섭리, 삶의 고귀함에 대해 역설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