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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현대소설

카밀로 호세 셀라 장편소설 『파스쿠알 두아르테 가족(La familia de Pascual Duarte)』

by 언덕에서 2023. 1. 26.

 

카밀로 호세 셀라 장편소설 『파스쿠알 두아르테 가족(La familia de Pascual Duarte)』

 

 

스페인 소설가 카밀로 호세 셀라(Camilo Jose Cela, 1916~2002)의 장편소설로 1942년 출간되었다. 스페인 현대 소설 중 가장 중요한 작품으로 자리 잡은 이 소설은 세상을 경악하게 한 희대 살인마의 수기이다. 열악한 농촌 마을에서 태어나 평생을 학대와 증오 속에서 자란 주인공은 아무리 몸부림쳐도 벗어날 수 없는 숙명처럼 잇따라 살인을 저지르고 점점 더 깊은 수렁으로 끌려 들어간다. 개인의 의지로 통제할 수 없는 비극적 운명 앞에 무너진 나약한 인간 본성, 누구도 보호해 줄 수 없는 변두리 삶의 극단적 비극에 대한 날카로운 묘사가 투박한 어조 속에 숨어 있는 작품이다.

 호세 셀라는 스무 살 때 스페인 내전이 발발하자 프랑코 휘하의 반란군에 가담해 싸우다가 상처를 입고 입원했다. 전장에서 돌아와 노동조합 사무실에서 서기로 일하면서 첫 소설 『파스쿠알 두아르테 가족』을 집필하기 시작했다. 1942년 출간한 이 작품은 출판 금지 조치를 받지만,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셀라는 말년까지 소설뿐 아니라 시, 단편, 수필 등을 망라한 여러 작품을 남겼으며, 2002년 1월 17일 마드리드에서 여든여섯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프랑코 정권의 엄격한 검열 정책은 이 작품에 대해 잔인한 소재와 폭력적인 묘사를 근거로 출판 금지 조처를 내렸지만, 내전 이후 황폐해진 스페인 대중은 그 잔혹함에 공감하고, 그 비극성에 감동했다. 『파스쿠알 두아르테 가족』은 출간되자마자 억압적인 사회 분위기 속에서 침체하여 가던 스페인 문단에 “일종의 건전한 카타르시스”로 작용하며 스페인 현대 소설에 새로운 시작을 알린 작품이다. 셀라는 1989년, 스페인 소설가로는 처음으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스페인의 열악한 농촌 마을에서 태어난 파스쿠알 두아르테는 어려서부터 극단적인 폭력을 경험하며 자란다. 가난하고, 무지하며, 세상에 대한 적개심으로 가득 찬 그의 부모는 언제나 서로를 잡아먹을 듯이 싸웠고, 그럴 때마다 어린 파스쿠알은 무자비한 학대의 대상이 된다. 그러다가 아버지는 미친개에게 물려 감금된 채로 죽고, 여우 같은 여동생은 집안의 재산을 훔쳐서 가출한다. 지능이 떨어지는 남동생은 기름통에 빠져 죽으면서 비극적인 가족사가 이어진다.

 매번 이 불행이 마지막이기를 간절히 바라던 파스쿠알은 결혼을 해서 새로운 가정을 꾸리지만, 아내가 유산하면서부터 시작된 불화에 그의 삶은 또다시 어두워진다. 결국, 아내는 파스쿠알에게 불륜을 추궁당하다가 급사하고, 파스쿠알은 아내의 외도 상대인 파코와 몸싸움을 벌이다 그를 죽인다.

 몇 년간의 수감 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파스쿠알은 두 번째 아내를 맞아 새로운 인생을 도모하지만, 그의 곁에서 늘 저주를 퍼붓는 어머니 때문에 견딜 수 없는 불안과 위협을 느낀다. 파스쿠알은 어머니를 죽여야만 자신이 살 수 있다는 강박에 빠져든다. 마침내 그는 어느 날 밤 날카로운 칼을 들고 어머니의 침실에 들어간다.

 

 

 『파스쿠알 두아르테 가족』이 보여 주는 모친 살해라는 소재와 잔인하고 거친 에피소드는 당시 스페인 독자들에게 커다란 충격을 안겼다. 이 작품은 스페인 예술과 문학에서 전통적으로 이어져 온 ‘전율주의’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자리 잡았다. 파스쿠알 두아르테가 겪은 비극이 일반적인 현실이라기보다 극단적이고 과장된 일면일 수 있겠지만, 스무 살 즈음의 젊은 나이에 내전을 직접 경험했고, 프랑코 휘하 반란군의 일원으로 참전하기도 했던 작가 자신에게 세상이 그만큼 처참하고 끔찍한 지옥으로 느껴졌다는 것도 이해할 수 있다.

 작가는 『파스쿠알 두아르테 가족』을 통해, 빈곤과 무지, 야만이 지배하는 이 사회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비극적인가를 우회적으로 전달한다. 내전을 소설의 직접적인 소재로 삼는 것이 금지된 억압적인 사회에서, 그는 사실적인 묘사 대신 괴물 같은 한 인물이라는 독창적인 은유를 통해 시대의 비극과 공명을 시도했다.

 

 

 작가가 전달하고자 했던 것은 체제에 대한 도전이나 선정주의는 아니었다. 오히려 이 소설의 저변에는 철저하게 세상의 변방으로 몰린 한 인물에 대한 연민이 깊게 깔려 있다. 작중 주인공이 일상화된 가혹함과 만연한 폭력 상황에서 끔찍한 수렁에 점점 빠져들어 갈 때, 그가 믿고 쉬어갈 만한 도피처는 세상 어디에도 없다. 가족도, 이웃도, 교회도 그에게 낙인을 찍고, 그를 추궁할 뿐이다. 결국, 파스쿠알이 언쟁 끝에 친구를 칼로 찌르고, 아내를 뺏으려는 자의 뼈를 부러뜨리고, 자신을 저주하는 어머니의 목에 칼을 꽂은 것은 그가 할 수 있는 가장 잔인한 복수이기보다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대응이었다고 역설한다.

 이 작품은 파스쿠알이 저지른 범죄에 대한 선악의 판단은 차치하고, 소외와 좌절, 죽음이 끊이지 않는 극한 상황에서 나약한 개인이 무엇을 할 수 있겠느냐고 독자들의 동정심에 호소한다. 더 나아가 내전으로 인한 집단 학살을 경험한 사회에서, 범죄자 한 명을 놓고서 짐짓 정의의 편에 서는 체하는 게 얼마나 위선적인가를 에둘러 물으며 무책임한 사회에 대한 비판으로까지 주제를 확장한다.

 장편소설 『파스쿠알 두아르테 가족』에서도 이러한 작가의 가치가 잘 녹아 있다. 내전 이전의 군주제 사회부터 공화정이 자리 잡기까지의 혼란스러운 사회상을 소설 곳곳에서 느낄 수 있다. 또한 떠돌이 무산자 주인공이 고난과 역경에 맞서는 스페인 문학 특유의 ‘피카레스크 전통’의 주제를 알게 되며 당시 스페인 사회에 깊게 깔린 불안하고 황폐한 대중 심리를 파악할 수 있다. 이렇게 우리는 이 한 편의 소설을 통해 당시 스페인의 다양한 풍경들을 생생하게 체득할 수 있다. 이 작품은 스페인 문학의 획기적인 분수령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가장 ‘스페인다운 것’의 전범으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