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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현대소설

압둘라자크 구르나 장편소설 『배반(Desertion)』

by 언덕에서 2023. 1. 4.

 

압둘라자크 구르나 장편소설 『배반(Desertion)

 

 

탄자니아 소설가 압둘라자크 구르나((Abdulrazak Gurnah, 1948~)의 장편소설로 2005년 발표되었다. 구르나는 아프리카의 주요 무역 거점으로서 다양한 문화가 뒤섞여 공존해온 탄자니아의 자치령 잔지바르에서 태어났다. 1968년 영국으로 이주한 그는 영국의 침탈로 환란에 빠진 20세기 조국 잔지바르와 영국 때문에 삶의 터전을 잃은 주민들의 유배와 같은 삶을 연민 어린 시선으로 탐구해왔다. 2005년 발표한 『배반』은 제국주의의 그림자가 짙어지던 1899년, 그리고 독립과 혁명의 광풍이 사회를 휩쓸었던 20세기 중반에 각각 싹튼 비밀스러운 열정을 중심으로 인종의 차이를 초월한 사랑, 그것을 압도하는 전통의 굴레와 시대의 격랑, 그리고 삶을 이어가게 하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이 작품은 기묘한 운명으로 얽힌 연인들의 이야기에서 출발해 그가 평생에 걸쳐 천착해온 ‘떠남’과 ‘단절’의 주제를 가족, 조국과의 관계로까지 자연스럽게 확장해나간다. 『배반』은 작가의 여러 작품 가운데서도 특히 높은 평가를 받으며 “강렬한 이야기 전개를 쌓아나가는 능력과 가족 간의 역학관계를 포착하는 섬세한 시선", "인간 정신을 좀먹는 식민지배에 대한 이해를 완벽히 장악한 기량이 정점에 오른 작품”, “구르나의 묘사는 마에스트로의 경지에 이르렀다.” 등의 찬사를 받았다. 구르나는 2021년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탄자니아 소설가 압둘라자크 구르나(Abdulrazak Gurnah, 1948~)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1899년 어느 이른 아침, 작은 상점의 주인 하사날리는 기도 시간을 알리기 위해 모스크로 향하던 중 길에 쓰러져 있는 백인 남자를 발견한다. 의식을 잃은 상처투성이 백인의 등장에 마을에서는 소동이 벌어지고, 하사날리는 곤경에 처한 이에게 은혜를 베풀어야 한다는 이슬람의 교리를 지키기 위해서, 그리고 경외와 호기심의 대상인 백인을 독차지하고 싶다는 마음에 그를 자기 집으로 데려가 보살핀다. 소식을 접한 그 지역의 영국인 관리 프레더릭 터너는 문제의 백인을 관사로 데려가고, 그곳에서 정신을 차린 남자는 마틴 피어스라는 이름의 영국인임이 밝혀진다.

 유럽 문명의 우월성을 믿으며 아프리카인을 정복과 계몽의 대상으로 여기는 여타 백인들과 달리 순수한 호기심으로 아프리카의 풍경을 보고 언어를 들어보고 싶어 하는 그는 대륙 여행에 대한 기대를 품고 백인 관광 무리에 합류했지만, 동물을 도륙하는 일행들을 견디지 못하고 무리와 헤어졌다가 길 안내를 맡은 소말리아인들에게 모든 소지품을 빼앗기고 버려진 것이었다.

 마틴은 하사날리가 그의 목숨을 구해주었음에도 소지품을 훔쳤다는 근거 없는 의심을 받았다는 사실에 죄책감을 느끼고, 건강을 회복하자마자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부당한 대우에 대해 사과를 하기 위해 하사날리의 집을 찾는다. 그리고 그곳에서 하사날리의 누이 레하나에게 알 수 없는 이끌림을 느낀다. 결혼에 실패한 뒤 체념 속에서 하루하루를 견디듯 살아가던 레하나 역시 미지의 존재 마틴에게 강렬한 매혹을 느낀다.

 그리고 이야기는 반세기 후, 독립을 앞두고 혼란스러운 1950년대 후반의 세 남매에게 초점을 맞춘다. 공부에 소질이 없는 맏이 파리다는 몇 번의 시도 끝에 진학을 포기하고 집안일을 돌보며 마을의 여자들을 대상으로 옷을 지어 판다. 반면 어린 시절부터 바깥세상을 향한 호기심이 왕성해 이탈리아어를 독학하며 식민교육에 빠른 속도로 적응한 막내 라시드는 영국 유학을 위한 장학생 시험을 준비한다. 그리고 둘째 아민은 부모님처럼 교사의 길을 걷는 한편 이루어질 수 없는 은밀한 사랑에 빠져든다. 상대는 파리다의 고객이자 마틴과 레하나의 손녀 자밀라로, 인도인과 유럽인의 피가 섞인 데다 이혼 경력이 있으며 유력 정치인과 교제를 한다는 소문이 돌아 눈총을 받는 여성이다. 두 사람의 밀회를 알게 된 아민의 부모는 자밀라의 배경과 과거, 추문을 이유로 둘의 관계를 반대하고, 어린 시절부터 순종적이던 아민은 사랑을 포기하고 늙어가는 부모를 돌보며 살아간다.

 한편 이 모든 혼란을 뒤로하고 마침내 영국으로 유학을 떠난 라시드는 그동안 너무도 잘 안다고 생각해왔던 세계에 진입하는 것이 불가능함을 깨달으며 이방인이자 혐오스럽고 열등한 존재로 삶을 이어간다. 떠나온 조국에서는 혁명의 소용돌이가 가족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았지만, 검열을 거쳤을 편지와 뉴스를 통해 단편적으로 전해지는 소식으로만 그곳의 실상을 짐작하며 두고 온 이들에 대한 부채감을 느낄 뿐이다. 그리고 마침내 라시드는 자신이 함께하지 못한 고통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기 위하여,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던 형의 아픔을 헤아리기 위하여 과거의 시간을 되살리고자 한다.

 

 

 이 작품은 ‘관계의 단절’과 ‘떠남’이라는 주제를 연결고리로 끝내 파국을 맞은 사랑 이야기와 잔지바르의 역사를 한곳에 엮는다. 제국주의가 본격화되어가는 19세기 말, 사랑에 빠진 연인은 인종이 다르다는 장벽을 만나 좌절한다. 반세기 후, 비슷한 관계에 놓인 연인 두 사람 역시 격렬한 반대에 부딪혀 결국 이별을 맞는다. 단절과 떠남의 주제가 반복되는 가운데 가장 주목해야 하는 인물은 후반부의 주인공 라시드다. 떠나온 곳과 지금 사는 곳 어느 쪽에도 속하지 못한 채 이중의 소외를 겪는 외부자의 삶은 작가 구르나 자신의 개인적 삶의 궤적을 떠올리게 한다.

 망명자가 되어 고국에서 일어나는 정치적 박해를 그저 '머나먼 곳에서 일어난 비극'으로 관찰할 수밖에 없는 라시드는 “영국에 살며 문제들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여전히 마음속으로는 큰 고통을 받았다”라는 작가 자신처럼 '트라우마로부터 도망치고, 자기만 스스로의 안전을 찾아 떠났다는 마음의 짐'을 품고 살아간다. 동시에 지금 사는 곳인 영국에도 완전히 동화되지 못하고 유럽인의 눈을 통해, 즉 혐오스럽고 불만족스러운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기 시작하면서 지금까지 쌓아온 정체성과도 단절된 채 과거와 현재를 오간다.

 

 

 이렇듯 연인과 가족을, 그리고 조국을 떠났으되 떠나지 못한 이들의 초상을 그리면서도 작가는 향수와 비애에 매몰되지 않는다. 작가는 그 고통을 이해하고 삶을 이어가게 하는 이야기의 힘에 대해 역설한다. 전반부가 마무리되는 시점에 일인칭 화자 ‘나’가 등장하면서 이 모든 이야기는 라시드가 기억과 상상을 동원해 과거를 재구성한 것이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그가 고국의 혼란스러운 상황과 거리를 둔 채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슬픔과 죄책감으로 우는 것뿐이었다. 이후 그는 떠나온 가족을, 특히 형을 이해하기 위해 그가 겪었던 인생의 비극을 기록하기로 한다. 그 과정에서 자신이 함께하지 못한 형과 누나의 삶을 재현하려는 시도는 오십 년 전의 두 연인과 그들 주변의 인물에 관한 관심으로까지 확장된다.

 라시드의 이야기 속 아민 역시 사랑을 포기한 자신의 선택에 수치와 회한을, 혁명정부의 정치적 탄압에 무력감을 느낀다. 그러면서도 자신에게 내가 살아 있다고 말하기 위한 행위이자 잊지 않으려는 방법으로 끊임없이 스스로의 이야기를 남긴다. 결국, 반세기의 시차를 두고 반복된 비극으로만 보였던 연인들의 운명은 이러한 이야기를 통해 새로운 생명을 얻고, 더 나아가 또 다른 이야기의 출발점이 될 가능성을 암시한다.

 “이 이야기에는 ‘나’가 있지만, 이것은 나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이것은 우리 모두에 관한 이야기”라고 작가는 주인공 라시드의 입을 빌려 말한다. 거대한 서사는 포착하지 못하는 평범한 이들 하나하나의 삶을 기억하고 이야기함으로써 크고 작은 역사를 복원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