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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소설

박태원 단편소설 『성탄제(聖誕祭)』

by 언덕에서 2022. 12. 22.

 

박태원 단편소설 『성탄제(聖誕祭)』

 

 

월북작가 박태원(朴泰遠, 1909∼1986)이 1937년 12월 [여성] 지에 발표한 단편소설로, 1948년 [을유문화사]에서 간행한 단편 소설집 <성탄제>의 표제작이다. 이 단편집은 1938년 [문장사]에서 간행한 단편 소설집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에 수록된 작품 중 4편을 뺀 9편의 단편소설이 수록되어 있으며, 작품집 끝에 후기가 첨가되어 있다.

 단편소설집 <성탄제>에는 표제작이 된 이 작품 이외에도 <옆집 색시> <5월의 훈풍> <딱한 사람들> <전말> <길은 어둡고> <진통> <방란장 주인> <소설가 구보 씨의 1일> 등 1933년부터 1937년 사이에 쓰인 8편의 단편소설이 실려 있다. 작품집에 수록된 다른 작품과 마찬가지로 단편소설 「성탄제」도 가난한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어려운 가계를 돕기 위해 카페 여급으로 나가는 언니와 이를 부끄럽게 여기는 동생의 갈등을 그리고 있다.

 박태원의 소설에 있어 특기할 사항은, 문체와 표현기교에 있어서의 과감한 실험적 측면과, 또 시정 신변의 속물과 풍속세태를 파노라마식으로 묘사하는 소위 세태소설의 측면이다. 이러한 특징은 그가 예술파 작가임을 말해주는 중요한 요건이다. 일제강점기 말에 발표한 <우맹(愚氓)> <골목 안> 「성탄제」 등에도 비슷한 경향을 잘 드러내었다.

 

일제 강점기의 서울 풍경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영이와 순이는 네 살이나 차이가 나는 자매이면서도 남달리 사이가 나쁘다. 동생 순이는 언니가 카페 여급이란 것을 못마땅해한다. 영이는 수많은 직업 중에서 뭇 사내들에게 시달리며 웃음이나 팔아야 하는 직업을 택한 언니를 이해하지 않고 창피를 느낀다. 그러나, 언니 영이는 동기간에도 욕을 먹어 가며 천대를 받는 여급을 누가 좋아서 하겠는가, 가족의 생계를 도와야 하고 동생의 학비도 보태야 해서 어쩔 수 없이 하는 것을 남들이야 모르겠지만 동생조차 자기를 멸시하는 곳이 분하고 원통하기만 하다.

 운동회 날, 언니의 직업이 알려지자 순이는 언니를 공박한다. 영이는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되고 말았다며 당당하게 생각해야 한다고 변명을 하자 순이는 더욱 화가 치밀어 언니의 약점을 잡고 계속하여 공박한다. 언니가 자신의 학비를 보태는 것은 순전히 부모의 뜻에 어쩔 수 없어서 그러는 것이라며 마치 자기를 위해서 카페에 나가는 것처럼 말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까지 한다. 계속되는 순이의 공박에 영이는 너무 화가 나서 아버지, 어머니, 동생 셋이서 모두 자기의 뼛골을 빼먹으면서도 한통속이 되어서 자기만을 못살게 군다고 악을 쓰며 까무러치고 만다.

 영이는 임신 3개월이라는 진단을 받고 아기의 아버지를 맞추어 본다. 사내들이 점점 떠나가고 아기 아버지까지 그녀를 멀리하지만 영이는 순산을 한다. 영이는 삯바느질을 해가며 아기를 키운다. 한편 동생 순이는 학교를 그만두고 여배우가 되겠다며 돌아다니다가 남자를 끌고 들어온다. 영이는 동생까지 자기와 똑같은 길을 밟는 현실이 서러워 눈물을 흘린다.

 

이상 김해경과 구보 박태원

 

 작가 자신이 후기에서 술회하고 있듯이, 소설집 <성탄제>에 수록된 작품들은 '딱한 사람들'의 이야기들이다. 카페의 여급이나 직업 없는 지식인과 수입 없는 소설가가 모두 딱한 사람들이며, 이들을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의 인간적 정황이 그려져 있는 소설들로 엮어진 이 작품집은 작가의 절제된 문장으로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

 학교를 그만두고 여배우가 되겠다며 돌아다니던 동생 순이가 어느 날 남자를 끌고 들어온다. 순이와 영이의 위치는 뒤바뀌게 된 것이다. 영이는 지난날 순이가 짜장면을 거부했던 것에 대한 일종의 복수 심리로 자신은 짜장면을 맛있게 먹겠노라 다짐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영이는 자신처럼 남자를 끌어 들일 수밖에 없는 순이의 불행을 공감하기에, 순이가 식구들에게 시켜 줄 짜장면을 떠올리며 눈물을 흘린다. 그러니까 순이가 영이의 짜장면에 대해 가졌던 감정이 혐오라면, 영이가 순이의 짜장면에 대해 갖는 감정은 연민이라 할 수 있다.

 이 작품은 언니를 비난하던 순이가 언니와 똑같은 길을 걷게 되는 아이러니로 결말이 난다. 특히 ‘너도 별수 없었던 모양이로구나’라며 눈물을 흘리는 영이에게서 그 시대의 비극을 느낄 수가 있다. 갈등 관계에 있던 두 자매가 같은 길을 가게 되는 모습, 건넌방에서 벌어지는 딸들의 매춘 행위에 무감각한 부모의 모습 속에서 윤리나 이념보다 생존 그 자체가 중요하게 드러나고 있다.

 

 

 식민지 시대를 배경으로 한 이 작품은 어려운 가계를 돕기 위해 카페 여급으로 나가는 언니와 이를 부끄럽게 여기는 동생의 갈등을 그리고 있다. 카페 여급이라는 직업의 작중 인물은 박태원의 다른 작품은 물론, 친구인 이상(李箱)의 작품에서도 많이 등장하는 인물이다. 또한, 이 작품의 중심소재는 식민지 시대 한국 문학 작품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빈곤이다.

 이 소설의 시술 방식은 전지적 작가 시점을 택하고 있으면서도 독특한 면을 지닌다. 도입부에서는 언니인 영이가 '너도 별수 없었던 모양이로구나'라며 비웃는 장면으로 시작하지만, 그 후부터는 작가가 순이와 영이의 입장에 교대로 서서 두 자매의 갈등을 엮어 간다. 전지적 작가 시점이라고 볼 수 있으면서도 서술자의 직접 개입은 최대한 억제하여 대화에 담긴 뜻과 독백을 통해 두 자매의 갈등을 선명하게 파악할 수 있게 하였다.

 이 소설은 언니를 비난하던 순이가 영이와 똑같은 길을 걷게 되는 아이러니로 결말이 나고 있다.  '너도 별수 없었던 모양이로구나' 하며 눈물을 흘리고 마는 영이에게서 이 작품의 비극을 엿볼 수 있다. 이 비극의 원인은 물론 가난이다. 갈등 관계에 있던 두 자매가 같은 길을 가게 되는 모습, 건넌방에서 벌어지는 딸들의 매춘 행위에 무감각한 부모의 모습들은 윤리 의식보다 더 중요한 생존의 문제를 부각하려는 작가의 의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