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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현대소설

알베르 카뮈 장편소설 『전락(轉落.La Chute)』

by 언덕에서 2022. 12. 21.

 

알베르 카뮈 장편소설 『전락(轉落.La Chute)』

 

 

프랑스 실존주의 작가 알베르 카뮈(Camus,Albert.1913∼1960)의 장편소설로 1956년 발표되었다. 이 작품은 카뮈가 [노벨문학상] 수상 전해인 1956년 발표한 가장 원숙기의 소설이다. 스웨덴의 한림원은 1957년 카뮈에게 [노벨문학상]을 수여하며 ‘우리 시대의 인간 양심의 문제를 다룬 작가’라고 평가했다.

 이 소설은 네덜란드의 수도 암스테르담의 술집에서 전직 변호사 클라망스가 술집에서 만난 또 다른 변호사인 상대방에게 자신의 과거 삶을 회상하며 이야기해주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클라망스는 과거 한 여자가 쎈 강에서 투신자살하는 것을 보고 방관한 적이 있다. 이후 그동안의 명성과 덕행이 얼마나 기만적이었나를 깨닫고, 세상에서 진정한 정의와 양심으로 평가받았던 행위들이 모두 위선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의 부조리를 직시하고 원죄 의식을 통한 실존철학을 보여주는 카뮈의 대표소설이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운하와 회색빛의 도시 네덜란드의 수도 암스테르담의 한 술집을 배경으로 파리의 전직 변호사였던 클라망스가 끝없이 늘어놓는 ‘계산된 고백’을 따라 진행된다. 그의 고백에 따르면 그는 파리에서 명성을 날리던 변호사, 특히 가난하고 힘없는 자들을 위해 싸우는 덕망 있는 변호사였다. 하지만 그는 많은 사람의 환호와 박수갈채 속에서 항상 정상에 올랐다는 느낌을 지닌 채, 마치 초인이라도 된 것처럼 다른 사람들 위에 군림하고 또 그들과의 관계에서 우월감을 느끼며 살아왔다. 요컨대 파리에서 변호사로서 ‘양심상의 평화’를 만끽하며 만족스러운 삶을 영위해왔다.

 하지만 클라망스가 파리에서 누렸던 우월감을 바탕으로 한 이와 같은 만족스러웠던 삶과 ‘양심상의 평화’는 센 강의 퐁데자르를 건너던 중 듣게 된 정체 모를 웃음소리로 인해 급변한다. 그에 따르면 이 웃음소리를 들었던 순간에 “모든 것이 시작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 웃음소리는 그가 파리에서 직접 겪었던 한 사건에 대한 기억과 깊이 연루되어 있다.

 실제로 그는 문제의 웃음소리를 듣기 2~3년 전에 센 강의 퐁루아얄 위에서 이 다리의 난간에 기대어 강물을 굽어보고 있던 한 젊은 여자를 본 적이 있었다. 그때 그는 이 젊은 여자를 외면하고 가던 길을 계속 걸었지만, 곧 이 여자가 강으로 뛰어든 소리와 이 여자의 비명이 잦아드는 소리를 듣게 된다. 그는 달려가서 그녀를 구하고 싶었지만 결국 “너무 늦었다, 너무 멀다”라고 판단하고 길을 계속 갔던 적이 있었다. 이 사건은 후일 변호사 클라망스의 명성을 더럽히는 얼룩이자 오점이 되고 만다.

 그는 이 사건으로 인해 다른 사람들로부터 죽어가는 사람을 구하지 않았다는 비난 어린 심판을 받게 될까 봐 마음속으로 두려워하고 있었다. 실제로 그가 퐁데자르 위에서 들었던 정체 모를 웃음소리는 바로 그들에게서 오는 비난 어린 심판일 뿐이다. 요컨대 그는 ‘정상’에서 ‘지옥’으로 ‘추락(chute)’을 점차 경험하게 된다.

 자신의 ‘원죄’를 의식한 클라망스는 파리를 떠나 낮고 어두운 도시 암스테르담으로 숨어들어 ‘속죄 판사’가 된다. 참회자이자 재판관인 ‘속죄 판사’는 자기 자신부터 신랄한 비판을 가한 다음, 타인을 심판한다. 클라망스는 부조리한 세상에 맞서 좌절하거나 물러서지 않고, ‘속죄 판사’라는 일을 통해 제 나름의 방식으로 세상을 향해 한다. 그는 마침내 진정한 자유를 찾아 죽음마저도 의연히 받아들인다.

 

프랑스 실존주의 작가 알베르 카뮈 (Camus,Albert.1913-1960)

 

 네덜란드의 수도 암스테르담의 술집에서 전직 변호사 클레망스라는 사나이의 회상으로 시작된다. 화자(話者)인 클라망스는 과거 한 여인이 센강에서 투신자살하는 것을 보고도 방관한 이후 자신의 명성과 덕행이 모두 위선이며 속임수였나를 깨닫고, 세상에서 진정한 결백ㆍ정의 등은 모두 위선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을 정신적 범죄자라고 말하는 클라망스는 상대방의 위선을 상대방의 기만성을 들추어내고 유죄성을 깨닫게 하여 죄인으로서의 연대감을 불러일으킨다.

 이전의 소설들이 부조리에 대한 반항이라는 긍정적인 언급이었음에 반해 이 작품은 부조리에 직면하여 무기력한 한 남자의 자책과 원죄 의식을 통해 숙명적인 인간 조건, 즉 실존(實存)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인간의 부조리를 직시, 원죄 의식을 통한 실존의 철학을 보여주는 카뮈의 대표작이다.

 카뮈는 <이방인>에서 뫼르소를 통해 “인간이란 어느 정도 잘못을 저지를 수밖에 없다”라고 쓰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인간이 잘못을 저지르고 난 뒤에 보이는 반응과 태도이다. 자신의 잘못을 먼저 인정하고 참회하고 난 후에야 다른 사람의 잘못을 심판하고 단죄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이와 같은 잘못이 20세기를 살았던 모든 이들이 의무적으로 떠안아야 할 몫이라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 이것이 바로 카뮈가 『전락』을 통해서 우리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이다. 실제로 카뮈는 『전락』에 “우리 시대의 영웅(Un heros de notre temps)”이라는 제목을 붙이려고 했다고 한다. 이 작품에서 ‘참회자’의 자격으로 자신을 먼저 심판대에 올려 심판하고 참회하는 클라망스, 그리고 ‘재판관’의 자격으로 그와 동시대를 살았던 자들을 심판하고 단죄하면서 그들에게 ‘초상화-거울’을 내밀면서 반성을 단호하게 촉구하는 클라망스는 심판과 참회의 아이러니를 가장 극적인 방식으로 보여주고 있는 ‘우리 시대의 영웅’이라 불려 마땅하다.

 

 

 

 카뮈의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는 ‘부조리’와 ‘반항’이다. ‘부조리’는 삶의 의미와 자신의 존재 이유를 알고자 하는 인간의 외침과 세계의 불합리한 침묵에서 비롯된다. 카뮈는 영원과 순간, 불멸과 필멸, 무한과 유한, 이러한 이율배반적인 모순에 맞서 인간이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길은 무기력한 자살이나 종교로 도피하는 것이 아니라 이에 맞서야 한다고, ‘반항’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반항’은 부조리한 세계와 인간 조건에 대한 자각과 성찰에서부터 비롯되며, 이를 통해 진정한 자유인으로 거듭날 수 있게 해준다.

 이 작품은 선량한 한 변호사가 과거 한 여인의 투신자살을 목격했을 때 방관하고 구원하지 못한 것에서 오는 회오의 자책 때문에 독선적ㆍ위선적인 선보다 차라리 악을 택하게 되는, 자기 상실의 함정에 빠져버리는 줄거리로 되었는데, 기성 도덕이나 신보다도 부조리의 자살을 구원할 수 있는 종교를 발견하려 하였다. 카뮈의 관심은 부조리의 해결에 있지 않다. 그의 관심은 오직 부조리에 대한 각성과 이에 맞서려는 반항 의지를 다지는 것뿐이다. 카뮈의 선택은 시시포스처럼 부질없는 짓인 줄 알면서도 굴러떨어지는 돌덩이를 끊임없이 들어 올리는 것이다. 어떤 운명에도 굴하지 않고 싸워나가는 것, 여기에 그가 갈망하는 자유와 삶의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