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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소설

김동리 단편소설 『등신불(等身佛)』

by 언덕에서 2022. 12. 8.

 

김동리 단편소설 『등신불(等身佛)』

 

 

김동리(金東里. 1913∼1995)의 단편소설로 1961년 11월 [사상계]에 발표되었다. 태평양전쟁에 학병으로 끌려나간 주인공 '나'가 학병에서 탈출하여 불교에 귀의한 사건이 작품 구성의 골격을 이루고 있지만, 주제와 관련된 무게 중심은 작품 중간에 삽입된 '등신불'에 얽힌 만적의 불교 설화에 실려 있다.

 이 작품은 <무녀도>와 마찬가지로 토속적이고 종교적 색채가 배어 있는 전통적 서정주의 세계를 보여 준 김동리의 후기 작품 세계를 대표한다. 인간의 운명은 추구하는 서정성과 순수 문학의 옹호라는 김동리의 문학관이 이 작품 속에서 인간의 고뇌와 슬픔을 만적의 소신공양을 통해 종교적으로 승화되어 있다. 『등신불』은 그의 단편소설의 특징 가운데 하나인 액자 소설형식으로 생생하게 담아내고 있다.

 

소설가 김동리 ( 金東里 . 1913- 1995)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나'는 일제 말기 학병으로 끌려가 남경에 주둔해 있다가, 대학 선배인 진기수의 도움으로 탈출, 정원사란 절에 의탁한다. 그곳에서 금불각의 등신불을 보게 되는데, 그 불상은 옛날 소신공양으로 성불한 '만적'이란 스님의 타다 굳어진 몸에 금을 씌운 것이다. '나'는 원혜 대사를 통하여 신비로운 성불의 역사를 듣게 된다. '만적'은 당나라 때의 인물로, 자기를 위하여 이복형제를 독살하려는 어머니로 말미암아 큰 갈등을 겪는다. 집을 나간 이복형제 '신'을 찾아 집을 나와 불가에 몸을 맡긴다. 10년 후 어느 날, 자기가 찾던 '신'이 문둥이라는 천형에 고통받고 있음을 알고 충격을 받는다.

 그리하여 인간사의 번뇌를 소신공양으로 극복할 것을 결심한다. 그가 1년 동안의 준비 끝에 소신공양하던 날 여러 가지 이적이 일어나게 된다. 이때부터 새전이 쏟아지기 시작하여, 그 새전으로 '만적'의 타다 굳어진 몸에 금을 씌우고 금불각을 짓게 되었다. 이런 이야기를 들은 '나'는 그 불상에 인간적인 고뇌의 슬픔이 서려 있음을 이해하게 된다. 그런데 이야기를 마친 원혜 대사는 '나'에게, 남경에서 진기수 씨에게 혈서를 바치느라 입으로 살을 물었던 오른손 식지를 들어보라고 한다. 왜 그 손가락을 들어보라고 했는지, 이 손가락과 '만적'의 소신공양과 무슨 관계가 있다는 것인지 대사는 아무런 말이 없다. 북소리와 목어(木魚) 소리만 들려온다.

 

중국 안휘성 구화산 육신보전 내 지장보살탑. 사진 왼쪽 김교각 스님, 소설 <등신불>의 모티브로 알려져 있다. 사진 출처 : 불교신문(http://www.ibulgyo.com)

 

 

 자신의 의지나 품성과 관계없이 거대한 힘으로 밀려오는 숙명적인 고통과 번뇌는 인간이 감내하기 힘든, 그러나 해결해야 할 영원한 과제다. 그 번민에서 벗어나기 위해 인간은 절대자를 갈망하게 되고, 초월적인 세계를 꿈꾸게 된다. 그런 점에서, 등신불은 불성과 인성을 지닌 특이한 부처가 아닐 수 없다. 만적의 소신공양은 자기 구원과 타인 구제의 양면적인 의미가 있다. 즉, 만적의 소신공양에는 자신의 존재 자체가 이복 형제에게 고통을 가져오게 된 근원적인 죄라는 인식, 그리고 그 죄의식이 가져온 번뇌로부터 자기를 구원하면서 모든 인간이 가진 숙명적인 고통에 대한 절대자의 자비를 구한다는 의미가 남겨 있다.

 만적의 불교 설화는 주인공 '나'가 손가락을 깨물어 쓴 혈서의 행위와 연관됨으로써 현 실적인 의미를 갖게 된다. 주인공이 전쟁이라는 학살의 소용돌이를 벗어나기 위해 자기 살을 물어뜯는 행위는 소극적이나마 죄악의 현실에서 벗어나려는 자기희생이라는 점에서 만적의 소신공양과 유사한 의미가 있다. 전체 구조로 보아 내부 이야기에 작품의 무게가 실려 있지만, 전후의 '나'의 행위와 깨달음에도 상당한 의미를 주고 있다. 외부 이야기는 '나'의 생활과 금불각에 대한 생각과 느낌을 일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그렸고, 내부 이야기는 이 작품의 핵심 사건인 주인공 만적이 어떠한 과정을 거쳐서 소신공양하게 되고 등신불이 되었는가 하는 것을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서술하고 있다.

 

 

 만적선사는 이복형제인 ‘사신’을 독살하려는 어머니의 사악함에 환멸을 느껴 스님이 되었다. 그 후 금릉 방면에서 우연히 ‘신’을 만나게 되었는데, ‘신’은 불행하게도 문둥병이 들어 있었다. 만적은 그의 목에 염주를 걸어주고 절로 돌아와 소신공양을 결심하게 된다. ‘사신’이 문둥병에 걸렸다는 것은 인간 운명의 한 궁경(窮境)을 보여준다. 착하고 어질던 ‘신’이 복을 받기는커녕 그 계모로부터 위해를 당하고 급기야는 천형을 받았다는 이야기 속에는 인간이 처할 수 있는 숙명적 비극성에 대한 인식이 자리 잡고 있다.

 인간이 고뇌와 고통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는 것 자체가 고통이며, 그것은 인생의 허무감을 일깨우는 것이다. 만적 선사는 이러한 인간의 숙명성을 극복하고 자신을 포함한 모든 인간을 구제하기 위하여 소신공양을 결심했다고 볼 수 있다. ‘나’가 식지(食指)를 깨물어 혈서를 쓴 것과 만적 선사의 소신공양은 개인과 중생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모두 구원의 의미, 즉 운명을 극복해 보려는 인간의 몸부림이라는 공통된 의미가 있다. 등신불의 표정에 나타난 고뇌와 비원은 인간 고뇌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만적 선사의 간절한 염원의 표상이며, 인간 구원의 메시지를 담고 있는 표정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