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한국 현대소설

김원일 중편소설 『도요새에 관한 명상』

by 언덕에서 2022. 11. 9.

 

김원일 중편소설 『도요새에 관한 명상』

 

 

 

 

김원일(金源一, 1942~ )의 중편소설로 1976년 [한국문학] 지 6월호에 발표되었다. 제10회 [한국일보 창작문학상] 수상 작품이다. 운동권 출신인 김병국이 동진강의 오염된 환경과 싸우는 모습이 힘찬 형상으로 표현되어 있다. 현대 사회의 끊임없는 무한 욕망 논리가 어머니와 병식과의 구도 속에서 드러나고, 분단 문제에 대한 상처는 아버지의 시각으로서 드러내고 있는 등 사회의 여러 가지 욕망의 분출 과정과 충돌 과정을 표현한 작품이다.

 『도요새에 관한 명상』은 우리 시대의 어떤 삶의 유형을 대변하는 네 명의 가족이 살아가는 이야기이다. 이 작품은 분단문학이란 김원일 문학적 관점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동시에 현재 중요한 사회 현안으로 떠오른 생태 문제와도 접점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2022년에도 울림을 준다.

 이 작품은 낙동강 하구 도요새 도래지를 배경으로 한 생태소설로, 북에 가족과 약혼녀를 남겨둔 아버지와 그의 두 아들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경제개발로 인한 자연환경의 파괴를 당연히 여기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공장에서 흘러나오는 유독 물질의 비밀을 파헤치며 희귀종 보호를 위한 환경운동을 지속하는 형 ‘병국’과 대학 입시를 준비하면서 돈벌이 삼아 새를 포획하는 일을 쫓아다니는 동생 ‘병식’의 대립은 돈을 향한 인간의 욕망 아래에서 무엇이 희생되고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현실의 재현으로 등장하며 지금까지도 유효한 문제를 제기한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철새들 특히 도요새의 도래지로 유명한 동진강 하구를 배경으로 한 가족의 이야기가 서술된다. 북한에서 재력 있는 수산업자의 아들로 태어난 아버지는 6·25 때 인민군으로 참전하여 포로로 국군에 전향한 후 부상을 입고 대위로 예편한 사람이다. 그는 학교 서무과장을 지내면서 아내의 강요에 못 이겨 공금을 유용하다가 실직하게 된다.

51살의 실직자인 그는 북에 두고 온 애인에 대한 그리움을 버리지 못한 소극적인 인물이며 현실에 무관심한 인물이다. 그런데  그의 아내는 생활력이 강한 적극적인 인물로서 모든 일을 맡아서 처리하나 무식하고 직선적이다. 그들은 단지 자식들을 매개로 부부 관계를 유지할 뿐 각자 별개의 생활로 서로 무관심하다. 큰아들 병국은 서울의 일류 대학에 다니던 촉망받는 존재였으나, 시국 사건에 뛰어들어 퇴학을 당하고 낙향을 한다. 그는 환경 문제에 대한 새로운 도전으로 조류와 동진강의 오염에 젊음에 불태운다. 둘째 병식은 재수생으로 무기력하고 줏대 없는 행동의 소유자로서 용돈을 위해서 철새들을 박제하는 일에 협조하기도 한다.

 이렇게 구성된 가족들이 엮어내는 과거와 현재의 다양한 사건들은 아버지와 어머니의 만남, 새 떼를 집요하게 추적하면서 환경 문제를 조사해 나가는 병국이의 집념, 항상 두고 온 고향을 그리며 살아가는 실향민인 아버지의 내면세계 등으로 이어진다.

 한편 도요새를 노리는 밀렵꾼의 생태, 새들이 집단으로 죽어가는 원인과 동진강의 오염 상태 등을 추적하다가 군인들에게 붙잡혀 풀려난 병국은 새들의 죽음에 병식이가 관련되었다는 단서를 잡고 추궁한다. 그러나 동생 병식은 아무런 가책도 느끼지 못하면서 그런 문제에 열중하는 형을 경멸하고 무시해 버린다. 병국은 모든 공장이 동진강 오염의 주범이라는 인식을 확고히 하면서 언젠가는 자신의 힘으로 동진강을 예전처럼 철새의 낙원으로 살리리라고 결심한다.

 

 

 작품은 일인칭 화자의 시각을 아우로부터 형, 아버지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바꾸어가면서 자아 인식과 절망, 공해와 환경 문제, 학생운동, 실향민의 망향 등 여러 가지 주제를 모아서 창작된 작품이다. 작가는 일찍부터 공해와 환경 파괴에 대한 현실 문제에 관심이 있었다고 볼 수 있으나 공해와 환경 파괴에 대한 문제를 좀 더 전문적이며 밀도 있고 집중화해 다루고 있지 않다는 점이 아쉽게 느껴지는 작품이다.

 작가는 이 작품에서 분단 상황에 대한 문제의식을 서정적인 배경과 더불어, 가족 구성원 간의 갈등 형태로 더욱 심화하여 다양한 형태로 발전시키고 있다. 또한, 작가는 다른 작품에서와 마찬가지로 이 작품을 통해서도, 타락한 세계에 대한 개인의 또 다른 저항 양태를 보여준다. 이것은 곧 순결한 의식의 영역을 스스로 지켜나감으로써 이 타락의 세계에 거부하는 태도임을 뜻한다.

 

 

 이 소설의 가장 큰 특징은 가족들의 이야기를 제각각의 시점으로 서술하고 있다는 점이다. 처음에는 병식의 눈으로, 둘째는 병국이, 셋째는 아버지, 그리고 끝으로 작가가 직접 개입하여 서로 이질적인 인물들을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은 객관적인 시선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를 통하여 표면에 드러나지 않은 아버지의 정신적 상처를 통한 실향민들의 한, 병국이의 퇴학, 공해 문제에 대한 심각성 등 현대 사회의 문제와 지식인들의 갈등을 부각할 수 있었다.

 이는 내면성의 추구, 사건의 내면화를 최대한 살려낼 수 있게 하고, 사건의 전개 발전을 밀도 있게 다룰 수 있게 하고 있으며, 결말에 이르러서는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전환하여 독자들에게 문제를 제기하는 기법상의 효과를 노리는 소설적 장치인 듯하다. 이 작품은 소설 기법의 참신함, 소재의 특이성, 그리고 우리 사회의 전형적인 인물 유형의 설정 등을 통해서 참다운 삶의 진정성을 회복하려는 작가 의식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도요새'는 아버지와 병국 사이에 존재하는 정신적 유대감을 상징하는 기능을 한다. 아버지에게는 고향을, 병국에게는 정신적 자유를 상징하는 이 도요새는 이들의 정신적 상처를 치유해주는 역할을 한다. 그렇지만 이 상처는 민족 분단에서 비롯한 것이므로, 중편소설 『도요새에 관한 명상』은 곧 한국전쟁이라는 비극적 역사에 대한 성찰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