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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소설

이청준 단편소설 『선학동 나그네』

by 언덕에서 2022. 11. 1.

이청준 단편소설 『선학동 나그네』

 

 

이청준(李淸俊. 1939∼2008)의 단편소설로 1979년 발표되었다. ‘서편제’ 등 남도창을 제재로 삼고 있는 이청준의 연작 소설인 이 작품은 소리를 다루는 작가의 세계를 잘 보여 준다. 등장인물들은 비정상적 삶을 살아가는 인물들로서, 오직 소리 하나에 신명을 바치며 떠돌이로 일생을 살아온 아버지와 시각장애인 딸,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누이를 찾아 헤매는 오라비 등 한스러운 삶의 모습들을 엮어 놓았다. 영화감독 임권택의 100번째 작품 <천년학>의 원작소설이기도 하다.

 이청준은 고도의 관념적인 주제들을 붙들고 다양한 분야로 관심을 넓혀가며 집단과 개인의 관계를 치열하게 뚫는 한편, 지식인의 역할, 산업사회와 인간 소외 등 현대사회의 묵직한 주제들을 문학적으로 훌륭하게 형상화하였다. 등단작인 <퇴원>부터 <조율사>, <병신과 머저리>, <당신들의 천국>, <소문의 벽> 등은 이러한 계열의 대표작들이다.

 또한, 1976년 이후에는 <서편제>를 필두로 한 ‘남도 사람’ 연작을 발표하며 토속적인 정한을 담은 문제작들을 연달아 생산해 내었다. 임권택 감독에 의해 영화화된 <서편제>는 잊혀 갔던 '우리 것'의 가치를 전 국민적 차원에서 새롭게 조망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1996년에 다시 임권택 감독과 손잡고 영화제작과 동시에 그 밑그림으로 써낸 <축제>는 이청준 문학의 주요한 자양분이었던 어머니의 죽음과 장례식 과정을 소설화해 낸 것으로 문학적으로도, 대중적으로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120여 편의 중단편과 11편의 장편소설, 그리고 수 편의 '판소리 동화'에 이르기까지 이청준의 문학세계는 그 자체가 '서구 소설 장르의 한국적 갱신의 과정'이라는 평을 들을 정도로 높이 평가됐다.

 

영화 [천년학 (Beyond The Years)] , 2007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어느 날 해 질 무렵, 남도 땅 장흥에서는 한참 들어간 회진이라 곳에서, 나이가 쉰 살 정도 된 한 사내가 버스에서 내려 선학동으로 향했다. 사내는 비상학(飛上鶴)이 자태를 짓는 선학동을 보고자 하나 포구는 들판으로 변하여 학의 모습을 볼 수 없게 되어 있었다.

 묵을 곳을 찾아 주막으로 간 사내는 술을 마시면서 비상학 이야기를 꺼내고 그러자 주인 사내가 몇 년 전에 한 여인이 다녀간 뒤로 학이 다시 날게 되었다는 기이한 주장을 한다.

 밤늦게 돌아온 주인 사내는 여자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한다. 30년 전 어떤 소리꾼 부녀가 찾아와 아비가 딸의 소리에 뒷산 관음봉이 포구의 밀물에 비상학으로 떠오르는 선학동 포구의 풍정을 심어주고는 이 마을을 곧 떠났다. 몇 년 전 그 여자가 그동안 숨을 거둔 아비의 유골을 묻기 위해 이곳을 다시 찾아왔는데, 그동안 마을 사람들의 인심이 각박해져 묻을 곳을 찾지 못했다.

 그러나 여자는 서두르지 않고 소리를 하며 날을 보내면서 소리로써 사람들을 감동하게 하고, 어느 날 유난히 공들여 소리를 하고는 주막집 사내의 도움으로 아버지를 묻고 마을을 떠났다는 이야기였다. 여자는 여전히 포구에 물이 들어오는 소리와 그 물에 비쳐 선학(仙鶴)이 나는 것을 듣고, 보고 있었으며, 주인 사내 역시 그녀의 소리를 들으면서 비상학의 환상을 보게 된다. 여자가 떠난 뒤에도 주인 사내는 여자가 선학동의 학이 되어 언제나 그 고운 하늘을 떠돈다고 믿는다.

 주인의 이야기가 끝나자 사내는 자신이 여자의 오라비임을 암시하고 이를 확신한 주인 사내는 여자가 어 이상 자신을 찾지 말라는 마지막 부탁을 남겼다고 일러준다.

 다음 날 아침, 주인의 배웅을 받으면서 길을 떠나는 사내는 누이의 부탁에 따라 한을 가슴에 묻어두고 더는 종적을 찾아다니지 않으리라 다짐하고 떠나가고, 주인 사내는 여인의 노랫가락 같기도 하고 나그네의 목청 같기도 한 소리를 내내 듣고 있었던 환각에 빠진다. 사내가 사라진 고갯마루 위로 언제부터인가 백학 한 마리가 떠돌고 있었다.

 

영화 [천년학 (Beyond The Years)] , 2007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비정상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다. 오직 소리 하나에 신명을 바치며 떠돌이로 일생을 살아온 아버지, 앞을 보지 못하는 딸, 또 그들을 버리고 떠났으면서도 미련을 버리지 못한 채 계속 누이를 찾아 헤매는 오라비 등 모두 가슴에 서린 한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이들이 품은 한의 예술적 승화를 표현하기 위해 '비상학'이라는 상징적 형상을 동원하고 있다.

 특히 이 작품의 마지막 장면은, 이 땅 위에서의 인간의 한과 그 한이 자연을 통해 수용되는, 현대한국소설에서는 드물게 보는 자연과 인간의 교통이 아름답게 그려지고 있어, 이청준 소설의 높이를 한 단계 더 높여주는 비상학이 되고 있다. 이청준의 연작 소설에서 그려지고 있는 소리는 도덕적, 인습적, 정치적 한의 표출이며 그 승화이다.

 

 

 이 작품은 삶의 한(恨)을 소리라는 예(藝)의 세계로 승화시킨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마음의 세계'를 다룬 비현실적인 이야기이지만, 그렇게만 치부해 버릴 수 없는 묘한 감동을 던져 준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한결같이 비정상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예를 추구하며 떠돌이로 일생을 산 소리꾼 부녀나 그들을 잊지 못해 회한에 젖어 사는 나그네는 가슴에 한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그 한이 애간장을 끊을 듯한 판소리로 승화되어 나타난다. 한 마디로 이 작품은 한 서린 삶의 예술적 승화를 이야기로 들려주고 있다. 특히 여자의 소리에 의해 비상학이 재현되는 대목에서 삶의 예술의 절묘한 어우러짐을 목격하게 된다.

 게다가 이 작품은 다분히 신비적인 특성을 보인다. 그런 특성을 살리기 위해 작가는 인물의 명명법에까지 신경을 썼다. '사내, 손, 주인, 여자, 노인…. ' 등, 인물들은 모두 구체적인 이름이 없는 상태에서 등장하고 있다. '홍길동'이니 하는 식으로 구체적인 명명이 되어 있는 상태라면 어떠했을까? 아마도 이 작품에서 추구하고자 하는 '한의 예술적 승화'를 제대로 구현해 내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대개의 신비적인 이야기들이 현실의 삶과 유리된 것과는 달리, 이 작품은 지난날 고달프게 살았던 우리 서민들의 삶과 정서를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 돋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