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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소설

이청준 단편소설 『잔인한 도시』

by 언덕에서 2022. 11. 7.

 

이청준 단편소설 『잔인한 도시』

 

 

이청준(李淸俊. 1939∼2008)의 단편소설로 1978년 7월 「한국문학」 지에 발표되었다. 인간 구원의 문제를 다룬 작품으로 1978년 제2회 [동인문학상] 수상작이다. 이청준의 작품세계는 주로 생활과 예술, 혹은 이상과 현실 사이의 갈등과 고민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소설 형식은 흔히 격자소설을 방불케 한다. 관념적 작가라는 평을 듣기도 하나, 진실을 추적하는 솜씨가 집요한 작가로서 우리 문학사에서 독특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청준은 군 제대 후 볼펜 한 자루와 노트 한 권 달랑 챙겨 들고 친구들 자취방을 찾아 동가식서가숙하던 '부랑아' 시절에 그는 본격적으로 문학을 시작했다. '잃어버린' 자신을 복원하기 위함이었다. 이후 이청준은 고도의 관념적인 주제들을 붙들고 다양한 분야로 관심을 넓혀가며 집단과 개인의 관계를 치열하게 뚫었다. 동시에 지식인의 역할, 산업사회와 인간 소외 등 현대사회의 묵직한 주제들을 문학적으로 훌륭하게 형상화하였다. 등단작인 <퇴원>부터 <조율사>, <병신과 머저리>, <당신들의 천국>, <소문의 벽> 등은 이러한 계열의 대표작들이다.

 이 작품은 인간이 늘 일정하게 사는 따뜻한 고향으로 귀환하려는 한 노인 죄수의 방생 이야기를 통해 인간의 꿈과 그 구제의 가능성을 상징적인 수법으로 그려낸 소설이다. 또한, 작가가 지속해서 추구해 온 진실에 대한 탐구의 소산이기도 하다. 작중 등장하는 백동테 안경의 젊은이가 운영하는 방생의 집은 도시의 잔인함과 위선의 결정체이다. 원래 방생의 집은 새들의 자유를 통해 갇힌 이들의 자유를 기원하는, 오래전 감옥을 나온 한 노인의 따뜻한 마음씨에서 시작되었다. 하지만 순수한 의도가 상업적으로 변화되면서 방생으로 인해 새들은 더는 멀리 나갈 수 없도록 강제로 날개를 찢겨야만 하는 치명적인 위협에 처하게 된다.

 

소설가 이청준 ( 李淸俊 . 1939 ~2008)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날씨가 제법 쌀쌀해지기 시작한 어느 가을 저물녘, 어느 나이 많은 사내가 감옥에서 석방된다. 머리가 희끗희끗하고 초라한 행색의 노인은 교도소 길목을 빠져나오다 공원 입구에 있는 '방생의 집' 앞에서 걸음을 멈춘다.

 그곳에서는 새 장수가 방생을 외치면서 손님을 끌고 있었다. 방생하는 모습을 감동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던 노인은 다음날부터 공원에 떨어진 동전을 주워 모은 돈으로 옥중 동료들을 대신해 방생을 시작한다. 그리고 자신이 석방되는 날 면회 오도록 연락해 둔 아들을 만나기 위해 노인은 며칠을 공원 벤치에서 노숙한다.

 그러던 어느 날, 노인은 새 장수의 비정한 상술을 알게 된다. 새 장수는 새들의 날갯죽지 밑을 가위질해서 멀리 날지 못하게 한 후, 손님들이 그 새를 방생하면 한밤중에 몰래 플래시를 들고 다니며 근처 공원의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새들을 다시 잡아다가 조롱 속에 가두는 것을 보게 된 것이다. 노인은 새 장수의 비정한 상술에 분노를 느끼지만 새 장수는 그런 노인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사기 행각을 멈추지 않는다.

 어느 날 밤, 새 장수에게 쫓기던 새 한 마리가 노인의 품속으로 숨어들어온다. 그 새는 노인이 언젠가 방생한 새였다. 노인은 새가 자신을 기억하고 있다고 생각하여 행복을 느끼면서 옥중에 있는 죄수들을 위해 방생을 계속한다. 지키지 않아도 그만인 옥중 동료들과 언약을 기필코 실천하기 위해서다. 이후 노인은 자신을 따르는 그 새를 갖고 평화롭게 살 수 있는 남쪽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새를 방생함으로써 자신의 자유를 꿈꾸어 왔던 사내는 새 장수 젊은이의 사악한 상술을 알고 난 뒤에 분노하지만 아무런 대책도 세울 수가 없다. 자유를 갈망하던 자신의 의지가 또 한 번 꺾였는데도 사내는 자신이 가진 것 모두를 주고 날개가 찢긴 새를 다시 사들인 뒤 상처받은 자신의 영혼과 새를 위한 구원의 길을 찾아 떠난다.

 『잔인한 도시』는 심층적인 인간 소외 의식을 다양하고 복합적인 상징성을 통해 형상화하여 종래의 평면적인 사실주의에서 맛볼 수 없던 새롭고 깊은 감동의 공간을 창조해 낸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작가는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극복하여 거대한 위선과 억압에 꺾이지 않는 따뜻한 인간의 모습을 그려내었다. 작가는 새 장수의 이야기를 통해서, 조작된 해방과 구속의 반복을 헤어나지 못하는 인간의 절망적 삶을 현실감 있게 제시하고 있다. 죄수 노인의 이야기를 통해서는 악순환의 끈을 끊어 버리고 늘 머물 수 있는 따뜻한 고향으로 귀환하려는 인간의 꿈과 휴머니즘이 담긴 주제 의식을 보여 주고 있다.

 작품을 통해 작가는 어두운 현실과 밝은 이상을 설득력 있는 구상적 이미지로 모두 부각해 관념적인 주제에 박진감 있는 현실성을 부여하는 데 성공하고 있다. 따라서, 『잔인한 도시』는 1970~80년대 절대적 사회의 부정적인 국면을 드러내면서 인간 구원의 절대적 문제를 부각하는 데 성공했다.

 

 

 이 소설은 상황 설정이 독특하여 돋보이는 작품이다. 진기한 상황을 한갓 기이하지 않게 처리한 점은 작가 이청준의 미덕인 치열한 장인 정신과 차분하고 논리적인 문체에서 비롯된다. 소설의 첫머리에서 새의 비상은 노인이 동경해온 자유를 의미한다. 그러나 새의 비밀을 알아낸 종반부의 노인에게는 새가 더는 자유로움의 표상일 수 없다. 그것은 이미 사내의 손에서 벗어날 수 없게 운명 지어진 초라한 미물일 뿐이며, 출소한 이후에도 마땅히 갈 곳을 정하지 못한 노인의 모습과 같다.

 노인은 아들을 기다리고 있다고 했으나 아들은 오지 않는다. 그는 새와 함께 남쪽의 따뜻한 고향을 향해 내려간다. 그러나 그 고향이 진실로 존재하고 있는지, 그곳이 진실로 따뜻한 곳인지 등의 문제는 이미 중요치 않다. 불구의 새를 품고 있는 노인의 가슴이야말로 바로 그 따뜻한 곳(고향)의 근원이며, 그러므로 그가 머무는 곳이라면 어디나 따뜻할 것이기 때문이다. 작품의 끝에 나타나는 비애의 색조조차도 훈훈하게 느껴짐은 이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