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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소설

신경숙 단편소설 『풍금이 있던 자리』

by 언덕에서 2022. 8. 31.

 

신경숙 단편소설 『풍금이 있던 자리』

 

 

신경숙(申京淑. 1963~)의 단편소설로 1993년 발표되었다. 이 작품은 작중 주인공이자 여성 주인공 ‘나’가 이 년간 지속해 온 불륜의 사랑을 끝내기로 하기까지, 마음의 바닥에서 일어나는 끝없는 생각을 상대 남자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고백하는 작품이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눈먼 송아지’는 화자인 ‘ 나’를 포함한 연약한 운명을 상징한다. 뿐만아니라 '송아지'와 '나'는 더 큰사랑과 보살핌을 기다리는 인간 존재의 보편적 처지를 생각케 한다.

 눈먼 송아지에게 젖을 내어 주는 어미 소, 새끼 까치들에게 먹이를 물어다 주는 어미 까치의 모습은 「풍금이 있던 자리」의 아픈 사랑들이 마침내 도달해야 하는 궁극의 풍경일 듯하다. 그것은 작가가 문학에서 내세우려 한 원점의 풍경이기도 할 것이다.

 

<풍금이 있던 자리> 1992. TV 문학관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20대 여성인 주인공 ‘나’는 40대 유부남과 연애를 한다. 그는 가정을 버리고 ‘나’와 함께 외국으로 도망가자고 한다. 고향으로 돌아온 '나는' 갈등 끝에 애인에게 부치지 못하는 편지를 쓰기 시작한다.

 ‘나’가 어릴 적 아버지가 바람을 피워 한 여인이 집으로 들어와서 어머니는 집을 나가버렸다. 어린 ‘나’는 농촌에서는 볼 수 없던 그녀의 뽀얀 피부와 향기로운 냄새에 취한다. 그리고 그녀는 밥이며, 반찬이며 농촌에서 빈한하게 살던 집안엔 생각도 못 하던 다양한 음식들을 내보이며 가족들을 사로잡았다. 어린 ‘나’가 새엄마를 좋아했던 이유는 바로 자신의 존재를 인정해줬던 사실도 있다. 어린 ‘나’는 자신을 위해 마음 써주던 새엄마에게 호감을 느낀다.

 그러나 새엄마 때문에 진짜 엄마가 떠났다. 큰오빠는 새엄마가 들어온 날, 밥 먹기를 거부하고, 동생들에게도 단식을 강요한다. 그에 의하면 새로 들어온 아줌마는 악마다. 그녀 때문에 우리 엄마가 집을 나갔기 때문이다. 엄마가 집에 돌아오기 위해서는 새엄마가 집을 나가야 한다며 동생들을 조종해서 새엄마 가슴을 무던히도 괴롭힌다.

 새엄마는 들어온 지 열흘 만에 집을 나간다. 친어머니가 집으로 와서 갓 태어난 막내에게 젖을 먹이고, 단추를 잘못 잠근 ‘나’의 옷을 바르게 입혀주고 다시 나가는 모습을 본 이후였다. 새엄마는 자주 칫솔질을 했는데 그녀가 칫솔질하면서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봤던 ‘나’는 그녀가 집을 나가면서 자신의 칫솔을 두고 떠난 것을 알고, 그것을 주기 위해서 쫓아간다. 그녀의 치맛단을 잡자 돌아서는 새엄마는 눈물로 화장이 다 뭉개지고 있었다. 칫솔을 주는 주인공에게 손을 꼭 잡으며 ‘너는 나처럼 살지 마라’는 말을 남기고 떠나간다.

 마을의 점촌 할머니께서 돌아가셨다. 젊었을 적에 다가오는 자전거를 피하다가 굴러떨어져 2년을 앓는 사이에 남편이 웬 여자를 데려왔다. 2년 동안 누워있던 그녀는 한쪽 다리를 제대로 쓰지 못하고 살이 쪄서 뚱뚱해지고 말았다. 집에서 나와 마을 끝에 집 하나를 마련하고 살았는데 어머니랑 같이 그 집에 갈 때마다 그녀는 성치 않은 다리로 줄넘기를 하고 있었다. 살을 빼서 남편에게 예브게 보이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그녀가 죽을 때까지 남편이 찾지 않았다. ‘나’는 점촌 할머니의 인생은 추웠으나 따뜻한 날에 갔다고 넋두리하는 어머니의 얘길 듣는다. 어머니께선 왜 연배가 다른 점촌 할머니와 친하게 지냈을까? 그녀의 마음을 누구보다 공감했기 때문일 것이다.

 ‘나’의 불륜 애인이 고향에 찾아온다. 외국으로 가자고 한다. 갈 수 없다고 ‘나’는 말한다. 며칠까지 시간을 정하며, 그 때까지 도시로 오라고 말하며 애인은 떠난다. ‘나’는 그날 도시로 가지 않는다. ‘나’는 한 달이 지나 그의 집으로 전화를 걸어본다. 수화기를 통해 그의 아내 목소리가 들린다. “은선아, 아빠 전화 왔다고 말씀드려라.” 딸의 이름은 은선이었고, 그 가정은 평화로웠다.

 ‘나’는 전화를 끊는다. 고향에서 눈이 멀게 태어난 수송아지를 키우면서, 까치가 낳은 새끼들이 날갯짓할 때즘이면 은선이란 이름에 가슴이 무너지지 않으리라는 희망을 나는 품는다.

 

<풍금이 있던 자리> 1992. TV 문학관

 

 유부남인 상대방은 외부적 환경의 굴레를 벗어버리고 자신들만의 사랑을 위한 도피를 '나'에게 제안해온다. ‘나’는 승낙을 보류한 채 고향으로 간다. 고향에 돌아온 '나'는 자신이 어린 시절 만났던 한 여인을 회고한다. 그녀는 자신의 아버지가 데려온 여자, 즉 아버지의 애인이었고 그로 인해 자신의 어머니는 지켜오던 가정을 잠시 떠나야만 한다. 어머니가 없는 집에서 아버지가 데려온 그 여자의 새로움에 이끌리었던 어린 시절을 '나'는 돌이켜 본다. 어머니와는 다른 새로운 여자의 모습이 좋아 보였던 어린 '나'는 그 여자와 같은 여자가 되리라는 철없는 꿈을 꾼 적이 있다. 순간, ‘나’는 그녀의 모습을 닮은 사랑을 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이른바 불륜남인 ‘당신’은 같이 떠나자며 출국 날짜를 알려주고 떠났지만, ‘나’는 나의 어린 시절 고향 집에서 벌어진 사건을 떠올리며 ‘당신’과 떠나지 않기로 한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불륜녀였던 그 여인이 떠나주지 않았다면 자신의 가족이 없었을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이후 약속한 시각이 지나고 나는 ‘당신’의 집에 전화를 걸어 당신이 떠나지 않았다는 사실과 가정을 건사하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당신 딸의 이름을 알게 된다. ‘나’는 시간이 지나기를 바라며 편지를 끝맺는다.

 

 

  이 작품은 서간문 형식의 장편소설이다. 1993년에 발표된 작가의 대표작으로서 발표 당시 대단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 작품은 유부남과 미혼녀 '나'의 불륜적 사랑을 그리는데 식상할 듯한 이야기는 화자인 '나'가 유부남인 상대방을 향해 보내는 편지글이란 형식을 취함으로써 독자들의 흥미를 끌고 있다. 마치 남의 비밀스러운 편지를 엿보는 느낌으로 독자는 숨을 죽이고 그들의 사랑의 자취와 '나'의 어린 시절의 남다른 기억을 따라가게 된다.

 '풍금이 있던 자리’ 이 작품에는 정작 풍금이 등장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풍금이라는 소재가 갖고 있는 상징성을 추측해 볼 수 있다. 우선 ‘풍금’은 피아노라는 고급악기가 등장하기 이전에 학교 음악시간에 사용하던 악기로, 가정형편이 부유하다면 가정에도 풍금이 있을 수 있지만 당시 그런 집은 아주 드물었다. 학교에서 풍금을 사용하던 시기는 대략 한국전쟁을 전후해서부터 1980년대 이전이었다. 도시의 학교들은 좀 더 일찍 풍금이 있던 자리에 피아노가 들어섰을 테고 산간 오지의 학교들은 1980년대 후반까지도 풍금을 사용했다. 대략 1980년대 이전에 초등학교를 다닌 사람들은 누구나 풍금에 대한 아련한 추억이 있기 마련이다. 결국 소설에서 상징하는 ‘풍금이 있던 자리’는 화자가 과거의 추억을 끄집어내기 위한 하나의 장치이다.

 작가는 서정적인 문체, 치밀한 구성, 꼼꼼한 관찰력으로 삶의 풍속도를 무리없이 그려냄으로써 인간에 대한 모습이라는 전통적이고도 진부한 주제를 성공적으로 그려내었다. 특히 시적 통찰력이 돋보이는 여성적인 언어는 독자에게 상당한 감흥을 준다.

 작가의 대표작인 「풍금이 있던 자리」는 유부남과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라는 흔한 주제를 편지글 형식으로 다루었다. 이 작품은 사랑에 빠진 여성의 심리를 서정적이고 섬세하게 묘사한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후 작품들 역시 쉽게 읽히는 서정적 문체와 섬세한 묘사를 통해 주로 타자의 주변을 서성거리는 인물들을 그리고 있다. 작가의 작품 속 주인공들은 거의 타자의 세계나 자신의 세계를 현실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상처를 받거나 상처를 주는 인물들로 묘사되는 경향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