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발리에 장편소설 『진주 귀고리 소녀(Girl with a Pearl Earring)』
미국 소설가 트레이시 슈발리에(Tracy Chevalier, 1962 ~ )의 장편소설로 1999년에 발표되었다. 영화로도 상영되어 잘 알려진 명화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는 네덜란드 화가 베르메르를 세인들에게 북구의 위대한 화가로 재조명시킨 그림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이 작품을 두고 ‘북구의 모나리자’란 칭송을 아끼지 않는다.
이 작품은 네덜란드 정부가 세계적인 화가인 렘브란트의 작품보다도 더 아낀다는 베르메르의 명화 '진주 귀고리 소녀'를 작품화한 것이다. '북구의 모나리자'라 불리는 명화 '진주 귀고리 소녀'를 토대로 베르메르의 삶과 예술을 조명하고 있는데, 정확한 미술사적 지식과 17세기 네덜란드 도시 '델프트'의 일상이 손에 잡힐 듯 꼼꼼하게 복원되어 있음은 물론, 작품 속 소녀를 햇살 아래 불러내는 작가적 상상력과 수완 또한 돋보인다. 2003년 피터 웨버에 의해 영화로 제작되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열여섯 살 난 타일 도장공의 딸 그리트는 폭발 사고로 아버지가 두 눈과 직업을 한꺼번에 잃자 가족의 생계를 위해 부유한 구교도 화가이자 길드 대표로 있는 베르메르 집의 하녀로 들어가 일하게 된다. 그리트가 할 일은 물건을 들어내고 청소를 하되 하나도 움직이지 않은 것처럼 완벽하게 제자리로 돌려놓으면서 화실을 청소하는 것이다.
그리트는 영특하면서도 하녀인 자신의 신분에 넘어서지 않는 처신을 구교도 집에서 일하게 되면서 하나씩 배우게 된다. 불과 얼마전까지만 하더라도 유복한 가정에서 불편 없이 지내던 그리트는 가장의 몰락으로 인해, 생활비를 벌기 위해 베르메르네 집안 살림을 도맡아서 하게 된다.
다섯 명이나 되는 아이들 때문에 쉴 새 없이 쏟아져 나오는 빨래에, 시장에 장 보러 가는 것은 물론이고, 주인장의 화실 청소까지 도맡아서 하게 된다. 베르메르의 주 고객으로 거절할 수 없는 상대로 등장하는 반 라위번은 이미 그전에 자기 집에서 일하던 하녀를 임신시킨 전과가 있는데, 그의 집요한 시선은 그리트의 뒤를 쫓는다. 베르메르 집안의 실질적인 권력자인 큰 마님 마리아 틴스(베르메르의 장모), 작은 마님 카타리나, 그녀의 말썽꾸러기 딸 코넬리아 그리고 선임 하녀 타네커에 이르기까지 온통 시기와 질투로 대변되는 여성들 간의 알력과 쟁투의 중심에 어느 날 갑자기 내던져지게 된 그리트의 삶은 신산하기만 하다.
능숙하게 하녀의 업무를 해내는 그리트에게는 한편 그림에 대한 재능과 빛의 세계를 향한 강렬한 열망이 숨겨져 있다. 이를 발견한 베르메르는 서서히 그녀를 자신의 세계로 끌어들이기 시작하고, 그들은 위태롭고 어려운 관계를 향해 나아간다. 어느 날 그녀가 베르메르의 작업을 비밀리에 돕게 되면서, 갈등은 증폭되기 시작한다. 누구도 잘못을 저지르거나 혹은 감정의 위험 수위를 넘은 건 아니지만 아슬아슬한 줄타기 같은 불안하기 짝이 없는 시간들이 지나간다. ‘북구의 모나리자’로 불리는 <진주 귀고리 소녀>의 모티프가 될 만한 순간을 포착한 베르메르는 거침없이, 그리트와 공모해서 필생의 역작을 위한 작업에 들어가게 된다.
산고 끝에 그리트의 귀에 진주 귀고리가 걸리고 베르메르가 그녀의 그림을 완성하는 순간, 명화 ‘진주 귀고리 소녀’는 찬연한 빛을 뿌리며 빛난다.
작가 슈발리에는 17세기 네덜란드 델프트에 대한 치밀한 복원과 정확한 미술사적 지식을 바탕으로 이러한 질문들에 답하면서, 그림 속 소녀를 세상의 햇살 아래 불러내는 놀라운 소설적 상상력을 선보인다. 물감의 제작, 빛의 사용, 카메라 옵스큐라의 활용, 인물과 배경의 배치 등 한 편의 그림이 탄생하기까지의 정밀한 보고서이기도 한 이 소설은 델프트의 운하와 골목골목, 시장과 길드, 집 안의 세세한 풍경이며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과 풍속을 손에 잡힐 듯 그려 보인다.
작가는 이 세밀한 풍속화를 바탕으로 주인과 하녀, 화가의 모델, 스승과 제자, 그리고 남자와 여자로 마주 선 베르메르와 소녀 두 사람이 예술과 삶 사이에서 벌이는 아슬아슬하고도 열정 어린 드라마를 빚어나간다. 색채가 뿜어내는 눈 부신 빛의 세계에 사로잡히지만, 화가가 차가운 욕망에 부딪혀 끝내 자신의 세상으로 돌아오는 한 소녀의 내밀한 초상은, 베르메르의 그림만큼이나 좀체 시선을 떼기 어려운 매력을 선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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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이시 슈발리에는 분명 수년간의 걸친 조사 작업을 통해, 17세기 근대화에 선두에 서 있던 해양 국가 네덜란드의 시대상을 절묘하게 그리고 있다. 상공업이 서유럽의 그 어느 나라에 비해 발전해 있던 네덜란드의 소도시 델프트와 교역을 통해 부를 이룬 부르주아 계층들의 예술적 기호를 충족시키기 위한 화가들의 작업과 거래를 책의 곳곳에서 찾아볼 수가 있다.
아울러 치열한 독립전쟁을 통해 마침내 종교의 자유를 쟁취한 신교국가 네덜란드에서의 구교도 가톨릭과의 미묘한 갈등 역시 표현해내고 있다. 원래 신교도였지만 구교도로 개종한 베르메르 가정에, 하녀로 들어간 주인공 그리트는 신교도로서 그들과 절대 융화되지 않은 모습을 보인다. 소설의 전개에 있어서 큰 갈등 요인은 아니지만, 부차적으로 해묵은 종교 갈등의 모습을 표현해내었다.
트레이시 슈발리에가 표현한, 화가 베르메르의 그림 속 인물들은 비밀스러운 세계에 거주하는 듯 보이며, 그 이면에는 우리가 잘 파악할 수 없는 무수한 일들이 흐르고 있는 듯한 인상을 준다. 소설가는 '진주 귀고리 소녀'의 그림자 진 듯 어두운 배경에서 두 인물의 운명을 감지해내고, 그들이 만나는 순간을 밀도 있게 포착해냈다. 그리고 그 밑바닥에는 하녀의 삶, 여성의 일상, 반 라위번으로 대표되는 신흥 부르주아 계층과 예술(가)의 윤리, 반종교 개혁기 구교와 신교의 대립 등의 서사가 층층이 쌓여 있다. 소설의 배경인 1664~1666년과 10년 뒤인 1676년, 총 4년이라는 짧은 시기 속에 베르메르의 전 생애와 작품 세계, 나아가 17세기 델프트와 예술의 전모가 집약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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