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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현대소설

마르그리트 중편소설 『연인(L'Amant)』

by 언덕에서 2022. 8. 24.

 

마르그리트 뒤라스 중편소설 『연인(L'Amant)

 

프랑스 소설가 마르그리트 뒤라스(Marguerite Duras, 1914~1996)의 [공쿠르상] 수상작으로 1984년 발표되었다. 베트남에서의 가난한 어린 시절, 중국인 남자와의 광기 어린 사랑을 섬세하고 생생한 묘사로 되살려낸 자전적 소설이다.

 자신이 태어났던 베트남을 배경으로 14세 프랑스 소녀와 중국인 부호 아들의 육체적 애정을 다룬 이 작품은 현재형을 주로 해서 일인칭, 삼인칭을 자유자재로 섞은 독특한 문체가 돋보인다. 한 소녀의 성 경험과 애정이 뒤엉켜진 가족관계의 극적인 상황, 그리고 소녀로부터 여인으로의 성장이 어떤 운명 속에서 이루어지는지를 이야기한다. 이 소설은 영역본이 148페이지에 불과한 데다가 기술이 간결하고 쉬워서 영어에 능숙한 사람이면 하룻밤에 통독할 정도다. 1992년에는 장 자크 아노 감독의 동명 영화로 제작되었다.

프랑스 소설가 마르그리트 뒤라스(Marguerite Duras ,  1914~1996)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1929년 프랑스령 베트남. 가족과 함께 방학을 보낸 15세 프랑스인 소녀 ‘나’는 기숙학교로 돌아가기 위해 나룻배를 타고 메콩강을 건넌다. ‘나’의 가족은 아버지의 발령에 따라 프랑스를 떠나 베트남을 삶의 터전으로 삼고 있다. ‘나’가 어릴 때 아버지는 세상을 뜨고 교사인 어머니는 발작과 신경증에 시달리며 주위에 폭언을 일삼고 다닌다. 어머니는 큰오빠만을 편애하지만, 큰오빠는 마약과 도박에 가산을 탕진하며 도둑질을 일삼는다. ‘나’와 작은오빠는 어머니와 큰오빠의 핍박에 시달리며 상처받는다.

 같은 배의 난간에 홀로 기대서서 강물을 바라보는 중국인 남자의 모습은 남성용 중절모와 생사 원피스, 굽 높은 구두 차림이다. 스물일곱 살의 중국 남자는 베트남의 부동산 백만장자인 아버지의 뜻에 따라 파리로 유학을 떠났지만, 타지의 삶에서 권태에 빠지고 결국 이룬 것 하나 없이 베트남에 들어와 방탕한 삶을 사는 이다. 그날, 둘은 배에서 우연히 만나 운명적인 사랑을 펼치게 된다. 소녀의 모습에서 풍기는 조숙하고 독특한 분위기는 같은 배에 타고 있던 부유한 중국인 청년의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그날 ‘나’는 그의 리무진을 얻어 탄 채로 귀가하고 만다.

 이후 소녀는 남자의 제안으로 그의 독신자 아파트로 안내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처음으로 남자와 경험하고 성에 관한 해방감을 느낀다. 식민지의 프랑스인이지만 편모 가정의 일원으로서 경제적으로 한참 몰려 있었던 '나'는 이 일을 계기로 자연스럽게 젊은 남자의 정부(情婦) 역할을 시작하게 된다. 비정상적인 가족에 대한 혐오가 더해 갈수록 ‘나’는 남자와의 관계에 더욱 몰입하고, 그 관계는 점점 광적인 욕망과 공허한 사랑으로 치닫는다. 모두의 가식과 묵인 속에 한동안 지속한 연인관계는 중국인 청년이 아버지의 명령에 따라 부유한 중국인 집안의 딸과 혼약을 치르게 되면서 종막으로 다다른다.

 열여덟 살이 된 ‘나’는 결국 프랑스로 돌아가는 배를 타게 되며 둘의 사랑은 이루어지지 못한다. '나'를 태운 채 떠나가는 배 앞에 서 있는 리무진 속의 서른두 살 남자를 바라보며 처음으로 그를 사랑했음을 깨닫고 눈물을 흘린다.

오랜 세월이 지나고 프랑스에서 작가로 명성을 얻은 '나'에게 전화가 걸려온다. 그는 전화로 말한다. 그의 사랑은 예전과 같으며, 아직도 그녀를 사랑하고 있으며, 영원히 그녀를 사랑할 수밖에 없으며, 죽는 순간까지 그녀를 사랑할 것이라고 말한다.

 

영화 The Lover , 1992 제작

 

 이 소설은 여러 시공간을 넘나드는 짤막한 문단들로 이루어져 있다. 작가의 베트남에서 자란 어린 시절이, 프랑스로 귀국해 문단과 학계의 저명인사들과 교류하던 시절이, 노년에 이른 현재의 시간이 뒤섞여 있다.

 학교의 여자기숙사에서 지내던 주인공은 열 살 이상 많은 남자가 계속 학교 앞으로 찾아오자 학교에서 창녀로 소문나게 된다. 어머니와 오빠 역시 주인공이 중국인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고 있다고 질책하고 집안에는 폭력과 폭언이 난무하게 된다. 그런데도 주인공은 매일 밤 남자와 함께 ‘독신남의 방’이라고 불리는 남자의 집에서 사랑을 나누고 잠을 잔다. 괴로움으로 점철된 각자의 삶을 뒤로하고 온전히 사랑에만 집중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기에, 이루어질 수 없는 관계라는 것을 늘 인식하면서도 둘은 서로에게 의지하며 같이 시간을 보낸다.

 작가는 흩어진 기억의 조각들을 하나하나 맞추어 내면서 '인생'이라는 큰 그림을 완성하기를 바란 듯하다. 그녀에게 인생은 '사랑에 대한 갈망' 그 자체였으며, 글쓰기를 통해 과거와 현재, 허구와 실재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그 갈망을 실현하고자 했을 것이다.

 

 

 뒤라스는 <태평양을 막는 방파제 ; Un barrage contre le Pacifique>(1950), <모데라토 칸타빌레 ; Moderato Cantabile>(1958), <부영사 Le Vice-consul>(1965) 등 50여 년에 걸쳐 70편에 달하는 작품을 발표하며 20세기 프랑스 문단을 대표하는 작가로 부상했다. 특히 1984년 공쿠르 상을 받은 『연인 ; L'Amant』은 프랑스를 비롯한 세계 각국에서 수백만 부가 팔렸고(35개 국어로 번역) 장 자크 아노 감독의 영화로도 제작되어 세계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1950년대에 쓴 독특한 작품들로, <누보로망> 계열의 작가로 평가받기도 하였지만, 뒤라스 자신은 어떤 문학 그룹에도 속하기를 거부하고, 자유로운 글쓰기를 통해 계속 독자적인 문학의 길을 모색해 나갔다. 2차 세계 대전 중에는 프랑수아 미테랑 전 대통령과 함께 레지스탕스 활동을 벌이기도 하였으며 이후 전쟁 포로들과 강제 수용자들의 정보를 다루는 신문 [리브로]를 발행하는 등 문학 외부에서도 왕성한 활동을 보였다. 1955년의 알제리 전쟁 반대 운동에 이어 드골 정권에 맞서서 투쟁하며 여러 주간지와 평론지에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장 콕토 상], [공쿠르상]과 [파리-헤밍웨이상] 등을 수상했다.

 1980년부터 그녀는 안드레아스 스타이너란 남성 작가와 동거하기 시작했다. 그는 38세나 연하였지만, 그녀의 비서 겸 보호자 역할을 했으며 그녀의 전기를 썼다. 안드레아스의 권고로 여러 차례 병원에 입원해서 치료를 받았지만, 술버릇은 고쳐지지 않았다. 1982년 10월 그녀는 파리에 있는 아메리카 병원에 입원했다. 퇴원하여 집에 오면서 그녀는 자기 아파트에 수상한 사람들이 잔뜩 있다고 주장했다. 알코올 중독으로 인한 망상 때문이었다. 안드레아스는 그렇지 않다고 설득했다. 설득이 먹혀들지 않자 안드레아스는 아파트 방문을 여닫기를 반복하면서 가상의 침입자들을 쫓아내는 시늉을 했다. 뒤라스는 안드레아스와 동거생활을 계속하다가 1993년 파리에서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