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몬 드 보부아르 장편소설 『초대받은 여자(L'invitre)』
프랑스 소설가 보부아르(Simone de Beauvoir. 1908 ∼ 1986)의 장편소설로 1943년 발표되었다. 이 작품은 보부아르 자신이 사르트르와 계약 결혼했던 체험을 그리고 있다. 계약은 처음에는 2년간이었으나, 그 관계는 평생 지속하여 서로에게 좋은 반려자가 되었다. 작중 그자비엘은 보부아르의 여제자 올가 코사키에비치가 모델이다. 실제로 사르트르는 한때 올가와 연인이 되어 그들 사이가 삼각관계를 이루기도 했다.
보부아르는 2차 대전이 시작되면서 파리가 독일에 점령당하고 레지스탕스 운동이 한창인 1943년에 처녀작 『초대받은 여자』가 [갈리마르사]에서 출판되어 크게 성공을 거두자 오랜 교사 생활을 청산하고 본격적인 작가 생활로 들어갔다. 1945년에는 소설 <타인의 피>가 같은 출판사에서 출판되었다. 전쟁이 끝나서 사르트르는 메를로 퐁티, 레몽 아롱, 장 폴랑 등과 함께 [현대] 지를 창간했다. 보부아르는 사르트르의 한쪽 팔이 되어 실존주의 문학 운동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었다.
보부아르의 무신론적 실존주의는 대학 시절부터 친교를 맺어온 사르트르의 이론을 기본적으로 받아들인 결과물이다. 인간적인 모든 영위는 무로부터의 자유로운, 주체로서의 생성이라 믿었다. 다만 보부아르와 사르트르의 작품 경향은 매우 다른 양상을 보인다. 여러 장르에 걸친 보부아르의 대부분 작품은 타인에 대한 관계를 주제로 삼고 있고, 거기에는 생생한 체험과 고뇌 등이 그려져 있다. 그러나 사르트르의 작품은 대부분이 그의 철학이론을 증명하기 위한 창작 경향을 보여준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배경은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직전의 파리다. 여류극작가 프랑수아는 신인 배우 피에르를 사랑하면서도 "우리는 정말 한 몸이다"라는 믿음과 행복감으로 인하여 결혼은 하지 않고 동거 생활을 하고 있다. 그녀는 피에르에게서 자기 삶의 보람을 느끼고 있었다. 어느 날, 프랑수아는 그자비에르라는 시골 처녀를 알게 되어 그녀를 자기 집에 머물게 했다. 루앙에서 온 그녀는 날씬한 몸매에 아름다운 눈을 가졌지만, 어딘지 모르게 쓸쓸한 느낌을 주는 아가씨였다. 그런데 날이 갈수록 피에르는 그자비에르에게 흥미를 보이기 시작했고, 끝내는 마음속으로 좋아하게 되었다.
"저 아이 얼굴을 보고 난 뒤에는 차마 당신 얼굴을 볼 수가 없단 말이오." 마침내 피에르는 프랑수아에게 이런 말까지 하게 되었다. "저따위 시골뜨기가 참다운 사랑을 알 리 있어?" 프랑수아는 신경질적으로 대답했다. 그러자 피에르는 냉정하게 대답했다. "두고 봐야 알지, 안 그래?"
"우리는 역시 남남이었구나." 라고 생각하며 프랑수아는 갑자기 쓸쓸해지는 마음을 느꼈다. 두 사람이 하나라고 생각한 것은 역시 자기 자신의 착각에 지나지 않았단 말인가? 그러나 프랑수아는 이렇게도 생각했다. "피에르하고는 어차피 예전부터 자유와 독립을 조건으로 사랑하지 않았던가. 그가 다른 여자를 사랑한다고 해서 조금도 이상할 것은 없어." 그렇지만 여자로서의 질투심을 억제할 수는 없었다. 프랑수아는 미남 배우인 제르베르와 그자비에르를 만나게 해주면 일이 잘 풀릴 것으로 생각했다. 그 계획대로 그들은 쉽게 사랑에 빠져들었다. 그런데 문제는 제르베르를 향해 프랑수아 자신의 가슴이 설레기 시작한 것이다. 그 사실을 그자비에르도 눈치채게 되었다.
이제 진심으로 제르베르를 사랑하고 있는 그자비에르는 프랑수아에게 문제를 제기하며 대들었다. 프랑수아는 자신에게 물어보았다 "저 아가씨냐, 아니면 나 자신이냐?" 그리고 답은 자신이 제르베르를 차지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프랑수아는 주저하지 않고 제르베르와의 사랑을 향해 돌진해 들어갔다. 그러자 "선생님까지 나를 노리개로 삼으셨군요!" 하고 그자비에르는 그녀를 비난했다. "노리개가 아니지. 나는 나 자신을 소중히 여긴 것뿐이야." 프랑수아는 비로소 자기 자신을 분명하게 주장했다. 초대받은 여자, 그자비에르는 내일 아침 가스가 가득 차 있는 저 방에서 숨져 있을 것이다(자살할 것이다). 프랑수아는 비로소 자기를 찾았다고 생각했다.
작중 극작가 프랑수아와 배우 피에르는 일반적인 연인 사이도, 동거 관계도 아닌 상태로 살아간다. 둘은 서로를 존중하며 서로에게 협력자이지만 상대방의 자유를 구속하지 않는 것(계약 결혼)을 원칙으로 하고 있었다. 그런데 자신의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고 모든 노력이나 약속 등을 무시하며 살아가는 그자비엘르라는 처녀가 나타나면서 두 사람의 사이에는 미묘한 불화가 일기 시작한다. 이윽고 피에르는 셋이서 누구도 희생되지 않고 조화로운 삼위일체를 만들자고 했지만, 그자비엘의 독점욕은 그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갖은 수단을 이용하여 피에르가 자기만을 선택하도록 한다. 그러나 피에르가 프랑수아와 헤어질 의사가 전혀 없다는 의사가 확실해지면서 세 사람의 수평적 관계는 파탄을 맞게 된다.
한편, 그자비엘이 피에르에게 복수할 속셈으로 충동적으로 육체관계를 맺었던 제르베르는 프랑수아를 연모하고 있는데, 결국 두 사람은 결합하였다. 총동원령에 따라 피에르와 제르베르는 출정하고 파리에 남은 두 여인은 암울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어느 날, 프랑수아는 두 사람이 보낸 편지를 받게 되었다. 그런데 그자비엘이 편지를 읽게 되고, 피에르와 제르베르 둘 다 프랑수아만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에 절망하며 프랑수아에게, “질투 때문에 두 남자를 빼앗았다”라고 몰아세운다. 프랑수아는 자신에게 모든 책임을 돌리는 그자비엘의 의식이 자기와는 양립하기 힘들다는 것을 깨닫고 그 의식을 없애기 위해 가스를 틀어 그자비엘을 죽여 버린다.
♣
보부아르가 21살 때 철학교수 자격시험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만난 3살 연상의 장 폴 사르트르는 그녀의 일생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나보다 완전하고 나와 닮은 사람'을 찾던 보부아르는 사르트르에게서 이상형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해 교수자격 시험에서 사르트르가 1등, 보부아르가 2등을 차지하면서 눈길을 끈 두 사람은 이어 파격적인 '계약 결혼'으로 사람들을 다시 한번 놀라게 했다. 사르트르의 제안으로 2년 단기 계약으로 시작된 이들의 계약결혼은 평생 계약으로 발전했다. 결혼식도 하지 않고 자식을 낳지 않으며 서로에게 완벽한 자유를 허용한다는 계약결혼은 사르트르의 분방한 연애 행각으로 보부아르를 종종 고통스럽게 했지만, 보부아르에게 문학적 영감과 소재를 준 것도 사실이다. 그의 데뷔작인 <초대받은 여인>(1943)만 해도 두 사 람 사이에 끼어든 제3의 여자문제를 둘러싼 체험적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1945년 사르트르가 창간한 「레 땅 모데른(현대)」지 편집을 맡으면서 보부아르는 실존주의 문학운동의 선봉에 서서 많은 작품을 발표하며 사회참여 운동을 벌였다. 그는 자신의 인생은 자신이 선택한 것이고 절대적 책임을 져야 한다는 실존주의 사상을 늘 생활에 접목시키려 애썼다.
이 작품은 세계 최초로 계약 결혼을 한 보부아르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쓰였다. 형식상으로는 끝내 살인까지 하며 ‘자기 자신’을 내보이고 싶어 한 프랑수아가 주인공이다. 그러나 이 작품의 매력은 ‘초대받은 여자’, 그자비엘이다. 그녀는 말이나 논리, 이성을 거짓으로 행하지 않고 날카로운 감수성이 이끄는 대로 살아간다. 특정 가치관을 실현하기 위해 부지런히 노력하는 것을 경멸한다. 이를테면, 미래를 내다보지 않고 현재의 순간순간을 충실히 살아가는 인물로 자존심이 강하고 외골수인 데다가 쉽게 상처를 받는다. 게다가 끊임없이 자신을 혐오하고, 신경질적이며, 또한 달콤한 애정을 발작적으로 표시하기도 한다. 모든 사회적인 것을 거부하며, 자유를 상징하는 시골 처녀 그자비엘은 근대문화의 최첨단을 걷고 있는 파리 지식인들 사이에 침입한 야생마로, 전후 젊은이들의 일면을 상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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