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 드 퀸시 장편소설 『어느 영국인 아편쟁이의 고백(Confessions of an English Opium-Eater)』
영국 소설가·수필가 토마스 드 퀸시(Thomas De Quincey.1785 ∼1859)의 장편소설로 1821년 [런던 매거진]에 발표되었다. 이 작품은 퀸시의 출세작으로 아편중독자인 자신의 경험을 엮어 아편이 주는 몽환의 쾌락과 매력, 그 남용에 따른 고통과 꿈의 공포를 이야기하였다. 그 후에 퀸스는 여러 잡지에 본격적인 기고를 계속하는 한편, 독일의 소설을 번역하거나 스스로 소설을 쓰기도 하였으며 수필가로도 많은 저작을 남겼다. 당시 그의 웅장하고 미려한 문체가 널리 인기를 모았으나, 후에는 반론이 심하여 ‘톱밥 같은 토머스’라고 비웃는 사람도 있었다.
이 문제적 에세이풍 소설은 낭만주의 문화와 포스트낭만주의 문화의 양면가치를 이해하는 강력한 도구이자 19세기 영국의 미학, 철학, 문화, 사회상 등을 살펴볼 수 있는 도구라고 할 수 있다. 장 콕토,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같은 현대문학의 대가들에게도 영향을 줄 정도로 현대까지 그 위력을 떨치는 작품이다.
1818년 첫 팸플릿인 〈멋대로 날뛰는 말에 대한 엄격한 논평(Close Comments Upon a Straggling Speech)〉을 내는 한편, 〈웨스트몰랜드 가제트〉의 편집주간을 맡아 이듬해까지 일했다. 1822년에는 그 전 해 가을에 <런던 매거진>에 발표했던 『어느 영국인 아편쟁이의 고백』을 출간했다. 이 책은 동시대 예술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어느 영국인 아편쟁이의 고백』으로 큰 성공을 거둔 그는 런던과 에든버러의 주요 잡지에 문학, 철학, 역사, 경제 등 다양한 주제에 관해 기고하며 수필가 겸 비평가로서 입지를 굳히게 된다. 이 작품 뿐만 아니라 그의 주요 작품들은 자전적 성격에 정교한 시적 산문 스타일을 특징으로 하고 있는데, 이것은 〈영국의 우편마차(The English Mail-Coach)〉(1849)에서 정점을 이루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내용은은 크게 2부로 이루어져 있다. 1부는 ‘독자들에게’, ‘『어느 영국인 아편쟁이의 고백』 이전에 읽어야 할 이야기’의 두 장으로, 2부는 ‘아편 복용의 즐거움’, ‘아편의 고통이 시작되다’, ‘아편의 고통’의 세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2부의 서론 격으로, 특히 ‘『고백』 이전에 읽어야 할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아편을 복용하기 전까지 유년 시절과 청년 시절 이야기를 고백문학 특유의 어조로 생생하게 전달한다. 이후 ‘아편 복용자의 꿈에 나타났던 멋진 장면들’, 예를 들면, 버림받아 타락한 소녀, 죄 없는 부랑아, 거대한 행진과 울려 퍼지는 찬송의 환상들을 이해하게 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뿐만 아니라 드 퀸시가 접했던 여러 시의 구절들, 역사적 일화들, 주변의 시각적 인상들과 낯선 이들과의 우연한 만남들이 모두 ‘내적 심상들’의 토대가 되어 이후 2부에서 묘사될 생생한 꿈 이야기를 구성하게 된다.
2부 ‘아편 복용의 즐거움’에서는 아편 복용을 통한 정신과 마음의 평화를 이야기한다. 아편에 중독되어 고통에 빠지기 전의 일시적 현상으로 “마음의 짐에서 벗어난 휴식의 평화, 노동에서 벗어난 안식, 천국같이 지치지 않는 지성의 활동”을 즐기는 자신의 모습을 묘사한다. 1804년부터 1812년까지 8년간 아편을 복용하면서 서서히 아편 중독의 문제가 드리워지는 모습이 ‘아편의 고통이 시작되다’ 장에서 묘사된다. '아편의 고통’ 장에서는 아편 중독으로 인한 지적 마비 상태를 설명한다.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없는 거의 수면과도 같은 상태. 그리고 거대한 환영의 행렬과 끔찍하고도 생생한 악몽들이 이어진다. ‘로마 집정관’의 환영, 피라네시의 그림과도 같은 장대한 건축학적 꿈들, 호수와 파도가 물결치는 바다, 인도와 이집트의 신들, 미라와 스핑크스와 영원불멸의 피라미드의 꿈, 공포스럽도록 추한 새, 뱀, 악어의 꿈, 17년 전 헤어진, 이미 죽은 것으로 생각되는 매춘부 앤과 부활절 일요일 아침에 만나 다시 17년 전 그 거리를 거니는 꿈, 그리고 영원한 죽음의 꿈 등이다.
작자는 그의 소년시절에 있었던 일들과 맨체스터 그래머 스쿨에서 탈출 후 웨일스, 런던 등지에서의 방랑생활을 흥미롭게 서술한다. 이후 옥스퍼드대학 재학 중에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덜기 위하여 아편을 복용하기 시작, 그 복용량이 점점 늘어서 드디어는 하루 8,000적(滴)이란 다량의 아편을 복용하게 된 경위를 적었다. 그 뒤 8년 동안, 아편중독에서 오는 부작용, 특히 무서운 환상과 심한 불안감, 헤어날 수 없는 우울증 등을 적었다.
그리고 마침내는 죽음의 공포 속에서, 고통을 참아가며 아편 사용량을 줄이기 시작하였고, 드디어는 아편복용을 끊어, 그 악습에서 벗어나는 과정을 뛰어난 문체로 서술하였다. 그는 “이 이야기의 진짜 주인공은 아편중독자가 아니라, 아편 그 자체이다”라고 서술하였다.
잉글랜드의 랭커셔 맨체스터에서 직물 상인의 아들로 태어난 퀸시는 어려서 아버지를 여읜 후 맨체스터 그래머스쿨로 보내졌으나, 1802년 학교를 나와 북웨일스와 런던을 방랑했다. 가족과 다시 만나 화해한 후 1803년 옥스퍼드의 우스터 칼리지에 들어갔고, 이 시기에 새뮤얼 콜리지, 윌리엄 워즈워스, 윌리엄의 여동생 도로시 워즈워스와 친교를 맺는다. 1804년부터는 치통 때문에 아편을 복용하기 시작했는데, 그 이후 약(아편)에 의지하기 시작했고 남은 인생의 절반을 중독자로 보내게 된다. 1808년에는 학위를 받지 못한 채 옥스퍼드를 나와 워즈워스가 살던 집인 그래스미어의 도브 코티지로 이사한다.
작가 자신의 아편 체험을 자서전풍으로 쓴 이 작품은 학생 시절의 일화, 아편을 시작하게 된 경위, 아편의 쾌락과 고통, 아편의 남용에 따르는 무서운 환상, 아편을 줄이려는 노력 등을 솔직하고 깊이 있게 적어 나간다. 드 퀸시가 살았던 19세기의 영국은 아편이 알코올보다도 더 싸고 구하기 쉽던 시절이었다. 그는 삶의 신산한 고통을 잊기 위한 치료의 목적으로 시작한 아편 복용이 결과적으로는 10여 년 동안 한 인간을 아편쟁이로 살게 했다. 그러한 경험에 관한 이야기다.
당시 영국의 보편적인 아편 섭취는 요즈음의 음주와 같은 것이다. 그러한 사회적 분위기는 더 많은 아편 수요를 불러왔고 결국은 제국주의의 아시아 침탈인 아편전쟁을 불러왔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토머스 드 퀸시의 대표작인 이 자전적 소설은 학생 시절의 일화, 아편을 시작하게 된 경위, 아편의 쾌락과 고통, 아편의 남용에 따르는 무서운 환상, 아편을 줄이려는 노력 등을 솔직하고 깊이 있는 내용과 유려한 문체로 표현하였다.
오, 공정하고, 교묘하고, 강력한 아편이여! 가난한 자와 부유한 자의 마음에도,
결코 치유되지 않을 상처에도, “정신을 반역으로 유도하는 고통”에도 위안을 가져다주는 아편이여.
[…] 그대는 낙원으로 들어가는 열쇠를 가지고 있다.
오, 공정하고, 교묘하고, 강력한 아편이여! - 본문 중에서
♣
1821년, 영국의 약물법 제정 이전, <런던 매거진>에 익명으로 처음 연재된 이 문제적 에세이풍 소설은 정교한 시적 산문 스타일과 아편 경험에 관한 거침없는 고백으로 에드거 앨런 포, 샤를 보들레르, 니콜라이 고골, 피츠 휴 러들로 등 동시대 문인들에게 깊은 영향을 미쳤다. 특히 보들레르는 『고백』과 〈심연으로부터의 탄식(Suspiria de Profundis)〉(1845)에 상세한 주석을 달아 프랑스어로 번역했으며, 이 책들에서 영감을 얻어 『인공낙원』(1860)을 쓰기도 했다. 문학계뿐만이 아니다. 실연한 젊은 예술가가 아편에 취해 무서운 환상을 본다는 베를리오즈의 〈환상교향곡〉(1830)도 부분적으로 『어느 영국인 아편쟁이의 고백』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셜록 홈즈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코넌 도일의 단편 〈입술 삐뚤어진 사나이〉에도 드 퀸시와 이 작품이 언급된다.
토머스 드 퀸시의 『어느 영국인 아편쟁이의 고백』은 영국인 낭만주의자가 아편과 함께 살아온 인생의 이야기다. 오히려 낭만주의자를 집어삼킨 아편의 이야기라고 불려도 할 듯하다. 이 소설에는 아편의 환상과 고통, 중독에서 빠져나오기 위한 노력 등이 표현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편이 없었다면 쓰이지 못할 이야기라는 이유 때문에 불편하기 짝이 없다. 아편 때문에 망가지는 인생들을 목도하는 현대의 우리가 이 책의 존재가치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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