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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소설

이기영 단편소설 『쥐불(서화. 鼠火)』

by 언덕에서 2021. 1. 12.

 

이기영 단편소설 『쥐불(서화. 鼠火)』

 

 

월북작가 이기영(李箕永. 1895~1984)의 대표적인 중편소설 중의 하나로 1933년 [조선일보]에 연재되었다. 가난한 소작 농민들이 사는 농촌을 배경으로 도박의 성행과 쥐불놀이(鼠火)의 쇠퇴라는 두 상징적 상황을 통해 농촌 현실의 황폐화를 보여 주는 작품이다. 3ㆍ1운동 직전 '반개울'이라는 농촌을 배경으로 한 중편소설로, '서화(鼠火)'는 곧 '쥐불놀이'인데, 농사에 해로운 쥐나 벌레를 없애기 위해 정초에 논둑이나 밭둑을 태우는 일이다. 동시에 '농민의 생기'를 상징하고 있어 의미심장한 배경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이 '쥐불'도 농촌의 피폐와 더불어 해마다 시들먹하다.

 이 소설은 돌쇠라는 젊은 농민이 노름판을 벌려 그날 응삼이가 소판 돈을 다 따 먹은 사건과 돌쇠와 면서기 김원준과 응삼 처 사이에 삼각관계가 이루어진 사건을 중심사건으로 설정하고 있다. 노름 모티프와 간통 모티프(motif)가 이 작품의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다. 마을 유지의 아들이며 동경 유학생 출신인 정광조가 출현하면서 이 사건들은 자연스럽게 해결되는 기회를 마련하게 된다. 돌쇠가 돈을 따오자 돌쇠 모친은 가난에 넌덜머리가 났던 차인지라 싫지 않다는 표정을 지었고 부친은 노름해서 번 돈은 도적질해서 번 것과 마찬가지라고 하였다. 원래 응삼의 처 이뿐이는 그 부모가 돈이 없어 응삼이네 민며느리로 팔아버린 존재로, 남편에게 정을 주지 않는 대신 유부남인 돌쇠를 은근히 좋아한다. 이와 같이 노름 모티프나 불륜 모티프는 당시의 여러 농민소설들이 잘 일러주고 있는 것처럼 척박한 농촌의 현실을 잘 비쳐 주는 기능을 행사한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반개울' 마을 앞에서는 도깨비불 같은 불길이 솟아나고 있다. 새빨간 불이 어둠 속에서 총총히 번지고 있다. 정초에 벌어지는 쥐불놀이였다. 돌쇠는 쥐불 싸움에 신나게 뛰어들었으나, 쥐불 싸움은 시시하게 끝나고 만다. 먹고사는 일이 힘들어 그것도 해마다 시들해진 것이다.

 돌쇠는 응삼이를 꾀어내어 노름판을 벌인다. 반쯤 바보인 응삼이는 소 판 돈을 모두 돌쇠에게 잃는다. 돌쇠는 그 돈으로 자기 가족의 양식을 마련한다. 그러나 돌쇠 아버지는 역정을 낸다.

 바보 남편에게 불만을 가진 응삼이의 처 이쁜이는 돌쇠의 남자다움에 이끌린다. 여기서 면 서기 원준이는 이쁜이에게 흑심을 품고 접근한다. 원준이는 돈을 잃은 응삼이를 동정하는 척하며 응삼이 집을 자주 출입한다. 그러나 목적은 이쁜이에게 있다. 돌쇠는 이쁜이를 남몰래 만나 응삼이와 노름한 것에 대해 사과하며, 노름이라도 하지 않으면 먹고살 수 없음을 실토한다.

 면 서기 원준이가 혼자 집을 보는 이쁜이에게 추근대며 협박까지 하지만, 이쁜이는 완강히 저항한다. 결국, 봉변을 당한 원준이가 구장(區長)을 부추겨 동네 집회를 열도록 한다. 원준이는 그 집회에서 도박과 가정 풍기를 거론하며 돌쇠를 궁지에 몰아넣는다. 이때 동경 유학생 정광조의 발언에 힘입어 돌쇠가 자기 처지를 밝힌다. 생계를 위해 불가피하게 노름한 이유와 이쁜이에게 욕심을 채우려 한 자가 바로 원준임을 폭로한다. 돌쇠는 이쁜이와 함께 집으로 오면서 유학생 정광조의 합리적인 사리 판단에 감격하며 그런 세상을 동경한다.

 

월북작가 이기영( 李箕永.  1895~1984)

 

 마름 정 주사 집 앞에 모인 마을 사람들로부터 돌쇠의 사과 요구를 들은 정광조는 이 마을에서 노름 안 한 사람 누가 있느냐, 또 결혼한 남자나 여자가 오입하는 것은 강제결혼과 조혼이 낳은 부작용이 아니냐고 되묻는다. 그리고 당사자의 의지에 따른 자유연애가 바람직하다는 주장을 한다. 이에 오히려 돌쇠가 오히려 잘못을 빌고 노름에서 손을 씻겠다는 약속을 하게 된다.

 이 소설은 이뿐이와 돌쇠가 입을 모아 정광조를 칭찬하는 것으로 끝나고 있다. 이 소설은 1920년대와 1930년대에 농촌을 소재로 한 소설이 흔히 풍속, 가난, 노름, 간통, 계몽 등을 다루고 있듯이 이러한 경향의 한 가운데 있다. 이기영의 작품은 식민지 자본주의로 돈을 벌어 새로 득세하는 계층과 그들에게 토지를 빼앗겨 더욱 가난해진 농민과의 갈등을 기본 구조로 한다. 여기에 등장하는 '돌쇠'는 가난한 농민의 대표적 인물이다. '돌쇠'는 농사만으로는 도저히 살 수 없어 노름으로 돈을 따서 식량을 마련한다. 또, 가정을 가진 '돌쇠'는 '응삼'이의 처 '이쁜이'와 눈이 맞아 정을 통한다.

 그러나 '돌쇠'와 '이쁜이'가 만나지 않을 수 없었던 사랑의 과정보다는 조혼과 강제 결혼의 폐해가 더 크게 드러난다. 결국, 조혼과 강제 결혼도 어려운 경제적 여건을 벗어나려는 방편이라는 데에 이 소설은 촛점을 맞춘다. 도박과 간통도 경제적 동기로 합리화되며, 경제 논리가 도덕적 규범보다 위에 있음을 말하고 있다.

 이기영의 초기 작품보다 도식적 계급의식과 목적의식을 벗어나 사실주의에 충실한 작품으로 내용 속에서 '쥐불(鼠火)'이 중요한 위치에 있다. 그러나 빈농으로 전락한 '돌쇠'와 부농으로 부상한 '원준'이라는, '있는 자'와 '없는 자'의 갈등이 기본 구도를 이룬다. 또 하나, 작가는 동경 유학생 정광조를 등장시켜 역사의식의 확장을 시도한다. 그러나 그의 기능은 소설 후반부에서 '돌쇠'에게 지적 자극을 줄 정도로 미미할 뿐이다. 이후, 이기영 소설 속 새로운 시대의 인간형은 장편소설 <고향(blog.daum.net/yoont3/11299791)>의 주인공 김희준에 와서야 선명히 드러난다.

 

 

 이기영은 1934년 2월호 [형상]에 <돌쇠(乭釗)>라는 작품을 발표하면서 이 소설이 「서화」의 속편이라고 적었다. 제목은 ‘돌쇠’라고 되어 있지만 서화에서보다는 정광조의 역할이 더욱 커진 것으로 판단된다.  이 소설에서 정광조는 더욱 적극적으로 돌쇠에게 도움을 주면서 자연스럽게 그를 계몽하는데 힘쓴다. 서화가 농민을 주인공으로 한 농촌소설이라면 <돌쇠>는 지식인을 주인공으로 한 농촌소설이 된다. 서화는 <돌쇠>와 전후편의 관계를 맺음으로써 장편소설 <고향>과 더욱 비슷해지는 결과를 보이게 되었다.

 [조선일보]에서 1933년 6월 30일까지 23회 연재되고, 7월 1일에 ‘조만간 <돌쇠>로 재개하겠다’는 내용의 연재 종료 중단 공지가 나왔다. 동광당서점에서 발행된 작품집 <서화>에서 이 작품이 자신의 첫 중편으로서의 시험이라고 밝혔다. 장편 <고향>을 이 작품의 속편으로 하고 싶었으나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인해 그러지 못했다고도 서술했다. 속편에 해당하는 <돌쇠>는 [형상]지에 일부가 실렸으나 잡지의 폐간으로 그 원고까지 유실되었다고 한다. 주인공 돌쇠는 노름을 하여 동료의 돈을 빼앗고 그 처와 간통하는 인물로, 일반적인 농촌 리얼리즘 소설의 주인공과는 거리가 먼 유형이다. 돌쇠는 이뿐이와 간통하면서도 원준이 이뿐이에게 욕심을 채우려 한다고 비난하는 내로남불의 인물이다. 이러한 성격이 오히려 리얼리즘적 진정성을 갖추었다며 임화와 같은 당대 비평가들에게 호평받기도 했고, 이에 대해 김남천이 비판하는 등 논쟁의 단초를 마련했다.

 

 


이기영(李箕永. 1895~1984) : 소설가. 호 민촌(民村). 충남 아산 출생. 일본 도쿄(東京)에 있는 세이소쿠(正則)영어학교를 중퇴하였다. 단편소설 <오빠의 비밀편지>가 [개벽(開闢)]에 당선되면서 문단에 등단했다. 1925년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카프)에 가담한 이후, 줄곧 경향문학의 대표적 작가로서 독보적 위치를 차지하였으며, 31년과 34년의 카프검거사건 당시 2년간 옥고를 치르는 등 조직과 창작 양면에 걸쳐 맹활약하였다. 8ㆍ15광복 이후에는 카프의 결성에 주도적 역할을 하였고, 일찍이 월북하여 북조선 문학예술총동맹을 이끌면서 북한 문예계의 중심인물로 활동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55년 노력훈장, 1958ᄔᅧᆫ 국기훈장 제1급, 1970년 소련 노력적기훈장을 수여받았으며, 묘는 애국열사릉에 안치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