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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소설

김말봉 장편소설 『찔레꽃』

by 언덕에서 2019. 5. 31.

 

김말봉 장편소설 『찔레꽃』 

 

 

김말봉(金末峰. 1901~1961)이 지은 장편소설로 1937331일부터 그해 103일까지 [조선일보]에 연재되었으며, 1955년 [문연사(文硏社)]에서 단행본으로 간행하였다. 이보다 1년 앞서 발표된 <밀림(密林)>과 더불어 출세작이자 대중적 작가로서 김말봉의 명성을 확고히 해준 통속소설이다. 이 작품에는 1930년대 젊은이들의 자유연애와 결혼관, 자본주의적 빈부 갈등이 드러나 있어 당대 시대상황이 적나라하게 반영되고 있다. 특히 ‘돈’과 ‘욕망’에 의해 좌우되는 사회풍토를 다양한 인물상과 화려한 부유층의 삶을 통해 감각적으로 묘사해나간다. 작가 특유의 섬세하고 낭만적인 문체로 남녀의 심리를 리얼하게 묘사해 소설의 몰입도를 높이고 있다. 이러한 면에서 작품의 가치는 상당하다고 판단되는데, 문학성이나 대중성에 비추어 봤을 때 오늘날의 대중소설, 연애소설에 결코 뒤처지지 않는다.

 통속적 주제와 감상주의, 개연성 없는 스토리 전개 등은 전형적인 대중소설의 약점을 그대로 노출하고 있으나, 오늘날의 재벌가 드라마와 같은 비현실적인 이야기를 일반 대중의 눈높이에서 유지하게 하려는 도덕적 건강성을 지니고 있어, 이후 대중소설의 교과서가 되었다고 평가 받기도 한다.

 

소설가 김말봉( 金末峰.&nbsp; 1901~1961)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밀양이 고향인 이민수는 안정순의 애인이다. 안정순은 아르바이트로 모 은행장인 조만호씨 댁에 가정교사로 들어간다. 중년의 사내 조만호는 아내가 오랫동안 병석에 누운 관계로 여러 여자와 관계를 갖는다. 그러다가 정순에게 사랑을 느끼고 접근하려 한다.

 한편, 조만호의 아들 조경구도 안정순을 사랑하게 된다. 이와 함께 우연한 사건으로 이민수가 조만호의 집에 몇 번 다녀간 후 그의 딸 조경애는 이민수를 사모하게 된다. 점차 안정순과 이민수의 사이가 멀어지자 안정순은 불안을 느끼지만, 주변의 사람들이 이민수와 조경애, 안정순과 조경구가 맺어지길 바라고 있다.

 조만호는 처가 죽자 침모를 통해 안정순을 후처로 맞으려고 애쓴다. 그러나 침모는 엉뚱하게도 안정순 대신 자기 딸을 조만호에게 시집보내고자 각본을 꾸민다. 그 첫 번째 계획은 성공하여 침모는 많은 대가를 받는다. 그런데 조만호에게는 한때 가까이 지내던 옥란이란 기생이 있었다.

 조만호는 그녀에게 아내가 죽으면 꼭 후처로 맞겠다는 언약을 한 사이였다. 이때 옥란은 자신이 배반당한 것을 알고 조만호의 방에서 밤중까지 기다리고 있다가, 조만호가 침모의 딸 영자와 정사를 치르는 순간 칼로 영자를 찌른 후 자수한다. 민수는 정순과 만호가 동침했다는 소문을 듣고 정순을 증오하며 경애와 약혼한다. 영자의 죽음으로 정순에 대한 모든 오해가 풀린다. 민수는 경애와 파혼하겠다며 정순에게 잘못을 빌지만, 정순은 그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누명을 썼던 안정순은 사실이 밝혀지자 조용히 그 집을 나와 버린다.

 

 

영화 {찔레꽃(1957)]

  

 작가는 대중소설에 대한 이해가 없던 때에 자유결혼을 주장하는 이 애정소설을 썼다. 찔레꽃처럼 희고 순결한 정순을 중심에 두고 진흙탕처럼 엉클어진 관계는 살인이라는 극단적 사건으로 치달으면서 마침내 종지부를 찍는다. 그 시대 독자들은 번개 치듯 속도감 있게 전개되는 사랑이라는 화살표가 마지막으로 향하는 곳이 궁금해 끝까지 몰입했을 것이다. 찔레꽃은 가난하지만 아름다운 여성 안정순이 은행장 조만호의 집에 가정교사로 들어가면서 겪는 일을 그리고 있다. 등장인물들은 아주 복잡한 애정 관계에 이중삼중으로 얽힌다. 가령, 정순은 조만호 부자의 구애를 동시에 받고, 정순의 약혼자 민수는 조만호의 딸 경애의 애정 공세를 받는 식이다. 아침에 방송하는, 재벌가가 등장하는 요즘의 막장 드라마를 연상시킨다.

 1937년 [조선일보]에 연재한 이 소설은 대중소설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여류작가로서 작가가 살았던 시대를 효과적으로 표현하고 있는데 당시의 시대사조와 아울러 특유의 작가정신을 엿볼 수 있다자유연애여성해방운동성 개방신구세대의 가치관 대립 등의 문제는 시대를 거슬러 지금도 유효한 문제이다대중소설과 순수소설의 정체성이 이론적으로 정립되어 있지 않던 1937년에 이 소설이 신문 연재를 통해 대대적으로 알려졌고독자들의 선풍적인 인기를 독차지했다.

 

♣ 

 

 좌, 우 정권을 막론하고 장관청문회마다 알게 되는 사회지도층의 부덕함과 이중성, 기업 경영진의 갑질’은 상류층의 민낯을 드러낸다. 그들 때문에 일반 대중은 적대적인 감정을 '여론'이라는 이름으로 표현하곤 한다. 사회지도층은 윤리적 모범을 보임으로써 사회의 구성원이자 소비자인 대중과 함께 공생할 수 있다.

 이 소설이 복잡한 애정 관계를 통해 독자들에게 드러낸 것은 상류층으로 행세하는 조만호 일가의 민낯이 아닌가 한다. 본처에 기생첩까지 거느리고 미모의 가정교사까지 삼키려 하는 조만호의 뻔뻔한 탐욕은 고금을 통해 보아온 가진 자의 모습이다. 책상물림으로 자라나 사회운동을 하겠답시고 떠들지만 실제로는 아버지 말 한마디에 꼼짝하지 못하는 아들 조경구의 유약함, 유학까지 마치고 온 잘난 여자처럼 보이는 조경애의 경박함 역시 지식인 청년 정순과 민수의 시선으로 낱낱이 폭로된다.

 오늘날, 과거와 같은 신분 질서는 폐지됐다그러나 자본주의 질서 아래 대중은금수저와 흙수저로 상징되는 새로운 신분 사회로 진입했다. 또한 대중은 문화적 투쟁을 통해 기득권 체제에 문제를 제기하는 동시에 전자와 후자로 대별되는 자기 상을 정립해 나가는 듯하다. 노블리스오블리제(noblesse oblige)가 부재한  오늘날 상류층의 부도덕은 기득권층의 존재 자체에 계속해서 문제를 제기한다90년 전에 쓰인 이 소설은 그때와 지금이 뭐가 다른지를 묻고 있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