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외국 현대소설

토머스 하디 단편소설 『환상을 좇는 여인, An Imaginative Woman』

by 언덕에서 2020. 5. 14.

 

토머스 하디 단편소설 『환상을 좇는 여인, An Imaginative Woman』 

 

영국 소설가 토머스 하디(Thomas Hardy. 18401928)1893년에 발표한 작품이다. 국내에서는 <상상 속의 여인><상상에 사로잡힌 여인><환상을 찾는 여인> 등의 제목으로도 발표되었다. 하디의 소설은 주어진 환경이나 운명에 의해 희생당하는 인물들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자연주의적이다. 그가 쓴 소설들은 대부분 전체적인 분위기가 침울하고 비관적이며 게다가 섬세한 자연 묘사는 어두운 소설의 분위기 형성에 큰 몫을 하고 있다. 토마스 하디가 살았던 당시는 빅토리아 조에서 20세기로 넘어가는 과도기였다. 그의 소설들은 대개 이런 혼란의 시대 속에서 충돌하게 되는 두 세력 간의 갈등을 다루고 있으나, 비극적인 결말을 통해 알 수 있듯이 미래지향적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지는 못한다는 평을 받았다.  하디는 비판주의적 정명론(定命論)1을 자신의 철학으로 신봉했는데 그 흔적은 이 작품 『환상을 좇는 여인』에도 엿보인다. 주인공인 엘라와 그 남편그리고 시인 트리위가 겪게 되는 불행은 개인의 능동적인 선택이라기보다는 그가 말한 내재의지(內在意志: immant will)'에 의해 결정된 변하지 않는 인간형을 바탕으로 설명되고 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엘라와 남편 마치밀은 서로 이해하고 배려하며 행복한 삶을 끝까지 살았을 만한 인물이다. 세상 사람들이 다 그렇듯, 어느 부부라도 서로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살아가는 사람은 없으므로 이들 부부의 성격 차이만으로 관계를 파국으로 몰고 가기엔 불충분하다. 이 부부가 성격이 서로 전혀 달랐어도 거의 충돌하는 일이 없었다는 점을 미루어보아도 짐작할 수 있다.

  엘라는 불우한 문인의 외동딸로 자신의 가슴속에 갇혀있던 감정들을 풀어내고자 했는데 출구로 찾아낸 것이 바로 시를 쓰는 일이었다. 그녀는 존 아이비라는 남성의 가명으로 신문사에 시를 투고하곤 했다.

  휴가를 즐기러 온 마치밀 가족은 그곳 휴양지의 한 집을 찾아 머물게 된다. 그 집에는 시인 트리위가 계속 사용하다가 친구를 만나기 위해 잠시 집을 비우게 되어 기간 동안 엘라 부부와 가족이 사용하게 된다. 엘라는 시인 트리위를 시를 통해 알고 있었다. 엘라는 트리위가 사용하던 방에서 묵으면서 그가 육필로 쓴 시를 보게 되고, 그를 만나고 싶어 한다. 이후 닿을 듯 말 듯,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기회가 몇 번 어긋나고 시인이 자살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엘라는 솔런트 시의 하숙집 주인 후퍼 부인에게 전보를 쳐 시인의 머리카락과 사진을 받는다.

  충격을 받은 엘라는 시름시름 앓다가 넷째 아이를 낳은 뒤 죽고 만다. 아내가 죽은 후 마치밀은 마음에 걸리는 게 있어 제 엄마의 죽음을 초래한 막내 아이를 무릎에 앉혔다. 그는 사진 속 시인의 얼굴과 아이의 이목구비를 꼼꼼히 비교해보았다. 엘라가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남자의 특징과 표정이 아이 얼굴에 고스란히 서려 있었다.

  남편은 뒤늦게 시인과 아내, 둘 사이를 의심하고 아이를 살펴보았다. 배 속에 생명을 품은 채 외간 남자를 사모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아이의 외모가 거짓말처럼 시인과 쏙 빼닮았다고 판단하면서 남편은 멀쩡한 자기 아이를 밀쳐내며 외친다.

  "저리 가. 넌 나와는 아무 상관 없는 놈이야!"

 

 

  문학작품을 읽다 보면 말이 되지 않는 이야기가 막장 드라마와 같은 작품의 소재가 되는 경우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이 작품이 그러한데  소통하지 못한 결혼생활의 결과가 만들어낸 오해와 왜곡되어 버린 결과가 만든 비극이다.

 세 아이 엄마로 살면서도 소녀 같은 감수성을 지닌 엘라에게 애정 없는 남편과 삶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엘라는 여름휴가를 보내고자 빌린 휴양지의 집이 그 유명한 젊은 독신 시인의 집필 공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엘라의 가슴은 비로소 설레이기 시작한다. 시인에 비하면 남편은 천박한 장사꾼이라는 점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이후 엘라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남자에 대한 사모하는 마음을 남몰래 키워간다.

  닿을 듯 말 듯,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기회가 왔으나 결국 둘은 만나지 못하고 어느 날 시인이 자살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충격을 받은 엘라는 시름시름 앓다가 넷째 아이를 낳은 뒤 죽고 만다. 남편은 뒤늦게 시인과 아내, 둘 사이를 의심하고 아이를 살펴본다. 배 속에 생명을 품은 채 외간 남자를 오매불망 바랐기 때문일까. 아이의 외모는 거짓말처럼 시인과 쏙 빼닮았다. 남편은 멀쩡한 자기 아이를 밀쳐내며 외친다. "저리 가. 넌 나와는 아무 상관없는 놈이야!"

  뜬구름 같은 열정에 빠져 허우적거리다 죽음에 이른 엘라가 있는가 하면 마치밀은 상황을 정확하게 판단하지 못한다.  그 결과, 아이는 버림받는다. 이 작품 『환상을 좇는 여인』은 처지를 망각한 인간의 갈망이 어떻게 운명을 조롱하고 죄 없는 존재에게까지 불행을 가져다주는지를 잘 보여준다.

  


 

  건실한 생활인이지만 속물이라고 할 수 있는 남편, 그리고 한 번도 본 적이 없지만 둔감한 현실을 벗어난 존재로 여겨지는 시인 트리위가 등장하는데 주인공 엘라는 자신의 '환상' 속에서 시인 트리위를 향한 사랑을 키워간다. 하지만 불륜이 아닌 그 사랑은 아마 현실 속에서 더욱 부서지고 깨지기 쉬운 무엇이다. 소설의 끝부분에 태교(胎敎)를 다루기는 했으나 이 부분은 오히려 후일담에 속하며, 이루지 못하는 짝사랑에 몸부림치는 한 여인이 운명이라는 장난꾸러기의 희롱을 받는 모습이 주조를 이루고 있다. 토마스 하디가 촌부(村夫), 야인(野人), 그리고 여성의 심리묘사에 얼마나 뛰어났는가를 보여 주는 작품이다

  (전략) 사랑은 그 자체와 지극히 혼동하기 쉬운 두 개의 유사물을 가지고 있다. 육욕과 환상이 그러하다. 하지만 어쩌면 그것은 또한 사랑의 두 날개일지도 모른다. 인간의 사랑은 그 두 날개 중 어느 것이 없어도 온전하게 날지 못한다. (중략)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시인 트리위를 향한 엘라의 사랑은 어쩌면 남편과의 사랑이 달아주지 못한 환상의 날개를 갖추기 위한 엘라 나름의 절실한 노력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대상을 달리하다 보니 결국 두 사랑은 모두 불구가 될 수밖에 없었다. 오직 환상만으로 사랑을 꿈꾸다 절망한 트리위가 끝내 엘라의 사랑을 알아채지 못하고 자살하자 비극은 차례로 전염된다.

  먼저 비탄으로 쇠약해진 엘라가 아이를 낳다 죽고 육체 없는 사랑이었기에 오히려 과장되어 남겨진 그 사랑의 유물들은 남편까지 불행으로 몰아넣는다. 뒤늦은 배신감과 분노로 정신을 잃은 남편은 멀쩡한 제 자식을 죽은 아내의 부정(不貞)이 끌어들인 핏줄로 단정하는 지경에 이른다.  (<이문열 세계명작산책> 1권 185~6쪽에서 인용)

 

 

    

  1. 『철학』 모든 일은 미리 정하여진 필연적인 법칙에 따라 일어나므로 인간의 의지로는 바꿀 수 없다는 이론.=운명론.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