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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현대소설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 단편소설 『바나나피시를 위한 완벽한 날(A Perpect Day for Bannanafish)』

by 언덕에서 2020. 3. 30.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 단편소설 『바나나피시를 위한 완벽한 날(A Perpect Day for Bannanafish)』

 

 

미국 소설가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Jerome David Salinger. 1919∼2010 )의 단편소설로 1953년 발표되었다. 국내에서는 <바나나 피쉬를 위한 완전한 하루>『바나나 피시를 위한 완벽한 날』 <바나나 피시 잡기에 좋은 날> 등의 제목으로 소개되었고 1996년 발간된 <이문열 세계명작산책>에서는 <바나나 어가 나오는 날>이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었다.

  샐린저는 1932년 맨해튼의 맥버니 고등학교에 입학했으나 1년 후 퇴학당했고, 1936년 발레포지 육군기초학교를 졸업하였다. 1940[스토리] 지에 단편 <젊은이들>을 처음 발표하였는데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군대에 지원해서 영국 방첩부대로 배속되어 노르망디상륙작전에 참가했고, 제대 후 주로 [뉴요커] 지에다 작품을 발표하였다. 그러다 1951<호밀밭의 파수꾼>으로 일약 주목을 받았다.

  그후 단편 『바나나 피시를 위한 완벽한 날』 <에즈미를 위하여> <웃기는 사나이> 등을 담은 '아홉 개의 단편>(1953)'을 끝으로 작품 활동을 중단했다가, 1955<프래니>를 발표하였다. <호밀밭의 파수꾼>이라는 단 하나의 장편소설로 화려한 명성을 구가하며 평단과 독자의 사랑을 동시에 받은 그는 그와 같은 일반의 관심을 못 견뎌 했다. 자신에게 쏟아지는 대중들의 끝없는 호기심을 피해 뉴햄프셔의 코니슈에서 높은 벽으로 둘러싸인 집에 살면서 탈속한 은둔자처럼 살다 세상을 떠났다고 알려져 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배경은 1950년대의 미국 플로리다의 바닷가 휴양지다. 주인공인 글래스가()의 한 인물인 시모어는 부인인 뮤리엘과 함께 한 호텔에서 휴가를 보내고 있다. 시모어는 언어의 천재이자 감수성 예민한 시인이지만 그의 아내 뮤리엘은 장모와의 전화 통화에서 그가 속물적인 이 세상으로부터 이해받지 못한다는 투로 푸념한다.

  한편, 시모어는 해변에서 알게 된 시빌이라는 여자아이와 바다에 들어가 바나나 피시라는 상상 속 물고기에 관해 이야기를 나눈다. 시모어가 지어낸 이야기에 장단을 맞추며 시빌은 방금 한 마리 봤어요.라고 말하고 시모어는 그럴 리가!라면서 깜짝 놀라는 시늉을 한다. 둘은 마치 어떤 공모자들처럼 혹은 천진난만한 아이들처럼 태연하게 바나나 피시가 실재하는 것처럼 알쏭달쏭한 이야기를 이어간다.

  시빌과 헤어진 시모어는 호텔 방으로 돌아온 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침대에서 자는 아내 옆에서, 그리고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권총을 꺼내 머리에다 대고 자살한다.

 

미국 소설가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 (Jerome David Salinger. 1919-2010 )

 

  (전략) 이 소설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전후 미국 사회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미국은 막대한 물량과 인력을 동원해 2차대전에 이겼지만, 그 와중에서 많은 젊은이가 상처를 입었다.

  주인공의 아내와 장모가 주고받은 통화내용에서 먼저 알 수 있는 것은 주인공이 삶을 진지하게 생각하고 시를 사랑하던 다정다감한 청년이었다는 점이다. 그것은 유복한 환경 속에 생각 없이 살아가는 아내를 ‘1948년 미스 정신적 갈보라고 부른다거나 아내가 알지도 못하는 독일어판 시집을 보내놓고 그걸 읽지 않았다고 나무라는 데서 읽어낼 수 있다.

  또한, 그는 전쟁터의 충격으로 정신병을 얻어 육군 병원에 입원했다가 퇴원하여 제대한 경력이 있다. 그러나 표면상으로는 정상을 회복한 듯해도 아직 그의 정신은 병든 채로다. 피아노를 치거나 장거리 운전을 탈 없이 해냈지만, 장모가 한 말 중에는 아직도 정신병적 증상을 드러내는 일이 수두룩하다.

  하지만 미친 그가 상상해낸 바나나 어()란 물고기는 승전과 전후의 풍요에 취해 있는 미국의 정신적 위기를 그 어떤 비유보다 잘 상정하고 있다. 좁은 망으로 들어간 바나나 어가 너무 많은 바나나를 먹어 그 망을 빠져나올 수 없듯 물질적인 풍요에 취한 미국인의 정신을 기다리는 비극이 그의 병든 정신에 끊임없이 암시의 빛을 던지고 있었음에 틀림이 없다.

  소녀와의 우정은 아직 물질주의에 때 묻지 않은 정신에 대한 그의 기대를 암시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바나나 어를 정말로 보았다는 소녀의 악의 없는 거짓말은 그에게 한 충격이 되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의 자살이 반드시 그런 정연한 논리의 과정을 거칠 필요는 없다. 그가 논리적 설명이 전혀 불가능한 착란 속에서 자신의 머리에 권총을 쏘았다 해도 작품에는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 이 병든 조개는 바나나 어란 진주를 빚은 것으로 충분히 그 몫을 다했다. (<이문열 세계명작산책> 9141~2쪽에서 인용)  

  비평가들은 오랫동안 시모어 글래스가 자는 아내 옆에서 권총으로 자살한 이유가 무엇인가 토론했다. 일본 작가 이누이 로쿠로는 이에 대한 나름의 대답을 제시한다. '현실임을 시험해 보고 싶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곳이 꿈이 아님을 알기 위해서 현실을 떠난다는 역설이다.

  다른 이의 마음을 알 수 없다는 한계, 혹은 그를 알고 싶다는 욕망은 결국 이 세계가 한 인간의 의식 속에 건설된 환영이어서 소통할 수 있는 타인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두려움에서 나온다. 한편으로 우리가 의식으로 세계를 건설할 수 있다는 생각은 안도감도 준다. 사랑하는 이를 기억하는 한 그를 이 세계에서 영원히 잃지 않고, 육체가 없어진 후에도 의식은 남아 있기 때문이다.

 

 

  후대의 수많은 작가와 대중예술가, 심지어 테러리스트와 암살범에게까지 영향을 미친 20세기 미국의 대표적 소설가인 샐린저의 대표작은 무엇일까? 그를 유명하게 만든 <호밀밭의 파수꾼>이 아니라 장편 <목수들아, 대들보를 높이 올려라>’와 단편집 <아홉 가지 이야기>이다. 수수께끼 같은 삶을 산, 그는 역시 수수께끼 같은 <아홉 가지 이야기>라는 한 권의 단편집으로 미국 현대 문학에서 가장 매혹적인 단편을 쓴 작가로 손꼽히게 되었다.

  <아홉 가지 이야기>에 수록된 바나나 피시를 위한 완벽한 날은 여름 한낮의 햇살만큼이나 강렬한 단편이다. ‘글래스 가() 연작소설의 첫 작품이기도 한 『바나나 피시를 위한 완벽한 날』은 선불교와 에피파니(epiphany), 초월과 신비, 순수와 환멸이라는 샐린저의 중심개념들을 가장 핵심적으로 밝힌 작품이기도 하다. 샐린저가 만들어낸 순수 상징인 바나나 피시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독자들과 학자들 사이에 많은 의견이 오가고 있다.

  시모어가 자살한 이유를 두고 많은 해석이 가능한데 시모어가 등장하는 샐린저의 다른 소설들을 통해 어느 정도 추정이 가능하지만  바나나 피시를 위한 완벽한 날이라는 제목처럼 끝내 알 수 없는 것일 수도 있다샐린저는 수수께끼 같은 이 짧은 소설을 통해 단편소설의 어떤 정수를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