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카지마 아스시 단편소설 『산월기(山月記)』
일본 소설가 나카지마 아쓰시(中島 敦, なかじま あつし, 1909~1942)의 단편소설로 1951년 발표되었다. 그해 처음 교과서에 실린 뒤로 단 한 번도 빠진 적이 없어 일본에서는 걸작으로 인정된다. 교만함과 타성에 젖어 자신을 짐승으로 전락시키는 주인공의 극적인 파멸의 이야기를 통해 독자들에게 유한한 인생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에 대해서 강렬하게 전달하고 있는 작품이다. 당나라 때의 작가 이경량의 <인호전>을 토대로 삼았다.
『산월기』는 호랑이가 되어버린 시인의 이야기를 통해 아무리 수재라도 절차탁마와 각고의 노력을 하지 않고 ‘소심한 자존심’과 ‘거만한 수치심’을 그대로 내버려 둘 때, 그 사람은 더는 사람이 아닌 존재가 된다는 주제를 담고 있다. 내 안의 호랑이를 키우면 그 내부의 악이 나를 지배하게 되어 인간이 아닌 짐승의 모습으로 짐승의 목소리를 내며 사람을 해치게 된다. 이 이야기는 오만함에 빠진 세상의 모든 이에게 들려주는 경각의 소리다.
나카지마는 일본 교과서에 실린 그들의 국민 소설 『산월기』의 작가로 이름이 알려졌지만, 한국의 독자들에게는 또 다른 의미가 있는 작가이기도 하다. 나카지마가 한문 교사인 부친을 따라 1920년 경성으로 건너와 중학 6년의 시절을 조선에서 보낸 경험이 있고 그 경험을 토대로 작품을 썼기 때문이다. 감수성이 가장 예민했던 시절을 경성에서 보낸 나카지마는 경성을 배경으로 세 편의 소설을 남겼다. 이 작품들에서 나카지마는 고뇌하는 지식인의 냉철한 시선으로 일본 제국주의의 모순을 짚어냄과 동시에 당시 비참했던 조선의 현실을 묘사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당나라 농서의 서생 이징은 젊은 나이에 과거시험에 합격할 정도의 수재였지만, 성격이 교만하고 자신의 능력을 매우 과신하는 성격으로서 일개 향리의 직에 만족하지 못하고 시인으로서 이름을 드높이려 애썼다.
관직에서 물러나고 시작(詩作)에만 전념했지만 마음먹은 대로 명성은 오르지 않고, 빈궁한 생활만 계속되었다. 이에 좌절한 그는 다시 굴욕적 하급 관리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러다 이징은 결국 미치게 되었고 산으로 들어가 행방불명이 되었다.
세월이 흘러, 감찰어사가 된 이징의 친구 원참은 여행지에서 식인 호랑이에게 습격을 당한다. 그런데 호랑이는 원참을 보자 풀숲으로 숨어 흐느껴 우는데 호랑이의 정체는 행방불명된 이징이었다. 이징은 원참에게 자신의 신세 이야기를 털어놓으며, 자존심과 수치심과 나태함이 자신을 짐승으로 만들었다고 하면서 통곡한다.
이징은 원참에게 자신이 호랑이로 변해버린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의 내면에는 ‘소심한 자존심’과 ‘거만한 수치심’이 자리하고 있다. 인간은 누구나 맹수를 키우는 사육사이며 그 맹수는 바로 각자의 성정이다. 나의 경우는 거만한 수치심이 맹수이며 호랑이였다. 이것이 나를 해치고 처자를 괴롭히며 친구에게 상처를 주고 결국에는 내 외모를 이렇게 속마음과 어울리게 바꾸어버렸다. 이어서 이징은 원참에게 마지막으로 두 가지 부탁을 한다.
첫 번째, 원래 시인으로서 이름을 떨칠 생각이었지만 뜻을 채 이루기도 전에 이런 운명이 되었다. 예전에 지은 시 수백 편이 아직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고, 호랑이가 된 지금도 암송하는 시가 수십 편 있다. 나를 위해 이것을 옮겨 적어 주었으면 한다. 내가 평생 집착한 것의 일부라도 후대에 전하지 못한다면 나는 죽어서도 끝내 눈을 감지 못할 것이다.
두 번째, 고향에 있는 처자는 아직도 내 운명을 몰라 애태우고 있을 테니 죽었다고 전해주고, 굶어 죽지 않도록 보살펴 달라. 그리고 실은, 처자에 대해 먼저 부탁했어야 했다. 내가 인간이었다면. 굶어 죽었을지도 모를 처자보다도 나의 보잘것없는 시 따위를 먼저 염려하는 남자이니 이런 짐승의 몸으로 전락한 것이다, 라고 자조적인 말투로 덧붙였다.
날이 밝아오자 이징은 이제 다시 호랑이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라며 작별 인사를 했다. 이때 원참은 한 마리의 호랑이가 달을 향해 포효한 후 사라지는 모습을 보았다.
이 작품은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존재론적 문제를 다루고 있다. 만주사변과 태평양전쟁 등에서 각성하게 된 일본 지식인의 역사의식에서 나온 실존적 부조리가 그것이다. 또한, 군국주의라는 체제의 광기 때문에 비극적 주인공인 이징이 창조되었다고 작가는 은유하기 때문이다. 비극으로 끝나는 작품에는 대체로 결말 부분에서 주인공의 자기발견이 따른다. 이 작품의 대단원은 주인공이 호랑이로의 변신한 부분이다. 이징은 친구에게 자신의 변신 과정을 설명하면서, 과연 인간과 짐승이 원래부터 다른 존재냐는 본질적인 질문을 자신과 독자에게 던진다.
이징을 인간 내면에 숨겨진 야수성의 보편적 상징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이징이 인간의 최종적 완성을 방해하는 육체적 게으름뿐만 아니라 영혼의 사악함에 완벽하게 들어맞는 인물로 그려지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그러나 자존심과 수치심 사이에서 호랑이를 키운 것은 이징 자신이었다.
(전략) 호랑이는 병든 시심(詩心)이 빚어낸 끔찍하지만 절묘한 진주이다. 그것이 비유나 상징에 머물지 않고 실제 시인을 호랑이로 변용시켰다고 해서 그 있을 법하지 않은 허구를 너무 구박하지 말라. 세상에는 그 같은 호랑이가 얼마나 많은가.
스승을 찾아가지도 않고 친구들과 어울려 절차탁마에 힘쓰려고 하지도 않으면서도 세상이 자기를 알아주지 않는 것에 분개해 으르렁대는 이들, 그 '겁 많은 자존심'과 '존대한 수치심'의 시인들은 이미 호랑이의 길을 가고 있다. 그들은 시의 길 밖에서 얻은 억센 이빨과 날카로운 발톱으로 세상을 물어뜯을 채비를 갖춘다. 이 이빨과 발톱은 검증없이 감정으로만 선택한 이념일 수도 있고 욕구불만에 내몰리며 황급히 외운 양인(洋人)의 이론일 수도 있다.
어디 시인뿐이겠는가. 사실은 자신의 부족한 재능이 드러날지 모른다는 비겁한 두려움과 고심을 싫어하는 게으름으로 삶을 허비해놓고, 재능이 부족하더라도 오로지 그것을 갈고 닦는데 전념한 결과 당당한 성취를 이룬 이들을 시기하는 모든 예술가들은 바로 그 호랑이의 길을 가고 있는 이들이다. 그러다가 슬쩍 창작의 길을 벗어나 수입이론 대리점 같은 강단에서 익힌 서푼어치 지식을 이빨과 발톱으로 삼고 닥치는 대로 예술가를 물어뜯는 삼류 평론가는 이미 호랑이가 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비록 사람의 형용을 하고 사람의 옷을 걸치고 있어도 비뚤어진 분노와 증오로 사람을 물어뜯고 있다면 그는 추악한 호랑이다. 리얼리티는 가죽과 털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안에 담겨 있는 본질이 진정한 리얼리즘의 더 큰 관심사다. (<이문열 세계명작산책> 9권 159!160쪽에서 인용)
♣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내가 가진 약간의 재능을 다 허비해버렸던 셈이다. 인생이란 아무것도 이루지 않기에는 너무나 길지만 무언가 이루기에는 너무나 짧다는 둥 입에 발린 경구를 지껄이면서도, 사실은 부족한 재능이 폭로될지도 모른다는 비겁한 두려움과 각고의 노력을 꺼린 나태함이 나의 모든 것이었다. 나보다 훨씬 재능이 부족한데도 오로지 그것을 열심히 갈고닦아서 이제는 당당한 시인이 된 자가 얼마든지 있지 않은가. 호랑이가 되어버린 지금에야 나는 겨우 그것을 깨달았다. 그런 생각을 하면 나는 지금도 가슴이 타는 듯한 후회를 느낀다. -본문에서
당나라 지방 관리 이징은 자신이 뛰어나다고 판단했기에 미관말직에 머물며 상관 비위나 맞추느니, 시인으로 이름을 남기겠다며 사직했다. 그러나 시는 뜻대로 지어지지 않았고 생계를 위해 다시 지방 관리가 된다. 그런데 자기만 못하다고 여긴 동기들은 승진하여 자신의 상관이 되었고, 우둔하다고 여긴 자들이 자신보다 잘나가는 모습을 보자 이징의 자존심은 크게 상처받았다. 자존심의 상처 사이로 수치심은 고름처럼 배어 나오고, 결국 이징은 미쳐서 사람을 잡아먹는 호랑이가 된다. 자존심과 수치심 사이에서 호랑이를 키운 것은 이징 자신이었다.
나카지마 아쓰시는 1909년 도쿄에서 출생했는데 1920년에 용산 중학 한문 교사로 부임한 부친을 따라 경성으로 건너와 용산소학교를 거쳐 경성 중학에 입학하여 4학년 수료 후 1926년 도쿄 제일고등학교에 입학하며 경성을 떠났다. 1933년 도쿄제국대학 국문과를 졸업하고 요코하마 고등여학교의 교사를 거쳐 일본 식민지 팔라우 남양청에서 서기로 교과서 편찬 작업을 했다. 1942년 귀국하여 작품을 발표하기 시작했으나 지병인 기관지천식으로 33세로 요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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