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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현대소설

맨스필드 단편소설 『원유회(The Garden Party)』

by 언덕에서 2020. 5. 18.

 

 

맨스필드 단편소설 『원유회(The Garden Party)』

  

영국 소설가 캐더린 맨스필드(Katherine Mansfield.18881923)의 단편소설로 1922년 런던 콘스테이블 사에서 출간한 <가든파티>라는 소설집에서 수록되었다. 소설집 <가든파티>는 총 열다섯 편을 묶은 단편집으로 작가의 생애 마지막 작품집이기도 하다. 이 작품집은 작가 최고의 문학적 재능이 나타난 걸작으로 여기에는 표제명 단편소설 『원유회(=가든파티)』를 필두로 뉴질랜드를 배경으로 한 <()에서(At the Bay)> <항해(The Voyage)> <이방인(The Stranger)>과 상류 사회인의 좌절을 섬세하게 기록한 고전 <죽은 대령의 딸들(Daughters of the Late Colonel)>이 실려 있다.

  맨스필드는 연상과 상호 언급이라는 방식을 빌려 책 안의 여러 이야기를 공조하여 새로운 연관성이 담긴 이야기를 만들어내었다. 예를 들어 죽음을 앞 둔 주인공 이야기의 경우, 기괴한 이야기에서 시작하다가 다른 이야기로 장면이 바뀌고 이후 주인공이 목숨을 이어가는 식이다. 오늘 소개하는 단편소설 원유회는 밝은 양지에서 자란 소녀가 음지 속 죽음에 맞닥뜨려 겪게 되는 난처함을 조롱 섞인 애매한 구성으로 그려낸 작가의 대표작이기도 하다.

  맨스필드는 작품에서 일상의 경험을 발견하는 불투명한 감정이라는 유리를 과감하게 깨뜨린다. 여기에서 독자는 그 날카롭고 투명한 파편에 베이는 묘한 카타르시스를 경험하게 된다. 맨스필드는 서른넷의 젊은 나이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삶과 창작 활동 모두에서 실험적인 면모를 보였다. 뉴질랜드 웰링턴에서 태어나서 영국에서 활동한 그녀는 단편소설의 거장으로서 매우 시적이며 독특한 산문 문체를 발전시켰으며 영국에서 단편소설이 문학의 한 장르로 발전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심리적 갈등에 초점을 맞춘 맨스필드의 섬세한 단편소설들이 지닌 완곡한 서술과 날카로운 통찰력은 안톤 체호프의 영향을 받았다고 알려져 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가든파티를 여는 날 아침에 인부들이 천막을 치러왔다. 귀족 소녀 로라는 이제까지 인부들의 모습을 본 적이 없는지라 정원에서 만난 인부들의 멋진 모습을 보고는 가슴이 두근거린다. 로라는 인부들과 친하게 지내고 싶지만, 계급에 대한 차별 때문에 인부들이 자신과 친하게 지낼 수 없는 신분이라는 사실에 화가 난다. 인부들에게 할 일을 지시하고 집 안으로 들어간 로라는 다시 상류사회의 일원으로 돌아간다.

  파티에 사용할 슈크림을 가지고 온 제과점 점원은 로라 네 집 건너편에 있는 오두막에 사는 젊은 마부가 교통사고로 죽었다는 소식을 전한다. 죽은 마부가 사는 동네는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산다. 젊은 마부가 부인과 아이들 다섯 명을 남겨두고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로라는 가든파티를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바로 앞집에서 사람이 죽었는데 음악을 연주하면서 마음 편하게 가든파티를 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로라와 같은 생각을 한 가족은 아무도 없다. 엄마와 언니는 이미 초대한 손님이 있으므로 파티를 열어야 한다고 고집한다. 앞집에서 사람이 죽었다고 약속을 취소할 수 없다는 엄마의 말에 로라는 몹시 우울해한다.

  파티를 성공적으로 마치자 엄마는 로라에게 남은 음식과 꽃을 죽은 젊은 마부의 집에 가져다주라고 말한다. 이 말은 들은 로라는 엄마에게 그 방법은 좋은 방법이 아니라고 답한다. 하지만, 로라는 엄마의 말을 거역할 수가 없어서 남은 음식을 바구니에 담아서 오두막으로 향한다. 오두막에서 로라는 젊은 남자가 깊이 잠들어 있는 모습을 보고 슬픔에 울음을 터트린다. 어린 로라는 죽은 사람의 편안한 모습을 보고 인생이란 어떤 것인지 알 수 없어서 흐느끼지만, 그 하루 동안 로라는 훌쩍 커 버린다.

    

 

  영국에서 시작된 가든파티는 손님을 초대해서 함께 식사하고 음악을 듣고 춤을 추면서 시간을 보내는 모임을 의미한다. 지금도 영국 왕실에서는 여왕의 생일 때면 성대한 생일파티를 연다. 한때는 귀족들만의 잔치라는 비아냥거림을 듣기도 했지만, 모양과 성질이 조금씩 바뀌면서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다.

  이 작품은 신분과 지위가 높은 집안에서 자란 소녀가 가든파티를 열면서 자신과 지위가 다른 하층민들과 접촉하면서 그간 가졌던 편견과 계급 차별을 깨닫고 인생에 대해 고민하는 모습을 담은 작품이다.

  작가가 작품 활동을 하던 때는 빅토리아 시대부터 20세기 세계대전에 이르는, 영국 사회가 급변하던 때로 시민의식의 성장, 계급구조의 변화와 더불어 산업 문명이 급성장하여 대중 소비사회로 재편되는 시기였다. 단편집 <가든 파티>에 수록된 작품들는 그러한 영국 사회 변화상을 반영하여 계급 갈등, 인종 억압, 여성 문제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한 작가의 통찰을 담은 내용이어서  당시 영국사회과 영국 문학의 흐름을 꿰뚫어 볼 수 있게 한다. 단편소설 『원유회』 에서는 가난한 이웃의 죽음을 목격하고 나서 열리는 파티와 어린 소녀의 감성 변화를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다.

  여류작가 캐서린 맨스필드는 10여 년 정도밖에 안 되는 작가 생활을 통해서 단편소설의 신경지를 개척다. 그녀는 얼마간의  시와 평론을 남긴 후  젊고 아름다운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젊어서 죽은 한 여류작가 맨스필드는 영국 단편소설의 제1인자로 추앙받고 있으며 종종 자주 러시아 체호프나 프랑스 작가 모파상과 비교된다.

 

 

  밝은 햇살이 쏟아지는 화려한 정원의 가든파티와 더럽고 어두운 빈민가가 공존하는 동네가 있다. 맛있는 음식과 사람들의 웃음이 넘쳐나는 파티장과 애도하는 곡소리와 슬픈 표정들이 끊이지 않는 죽음이 극명하게 대비되면서 이야기는 진행된다

 (전략) 그런데 파티 준비가 다 되어갈 무렵 우연히 엿듣게 된 불행한 소식이 로라의 관심을 그녀가 알지 못하는 세계로 이끌었다. 길 아래편 가난한 이들이 사는 마을의 한 마부가 사고로 죽은 일이 그랬다. 그 마부는 아직 젊은 데다 한 집안의 가장이었는데 특히 로라를 가슴 아프게 한 것은 그가 남긴 미망인과 다섯이나 되는 아이들이었다.

  하지만 다른 가족들에게는 그 사건이 별것 아니거나 거의 무의미했다. 가까운 곳에서 사람이 죽었으니 파티를 연기하자는 로라의 제의는 한 마디로 거부되고 피티는 예정대로 진행된다.그러다가 파티가 끝나고 손도 안댄 음식이 남게 되자, 버리기 아까운 여분이 생겨서야 이는 가진 자의 자선심이랄까, 다른 가족들도 비로소 이웃의 불행을 떠올린다.

  로라는 그들 나름의 자선심이 담긴 음식바구니를 죽은 마부의 집에 전달하는 역할을 맡는데 거기서 자신이 익숙해 있는 세계와는 전혀 다른 세계를 보게 된다. 우아함, 교양, 예의같이 자신들이 소중하게 여기는 가치나 삶의 양식은 아무런 의미를 가지지 못하는 삶이 있고 파티에 남은 케이크 따위로는 전혀 위로가 될 수 없는 불행이 거기 있었다.

  그런 낯선 세계와의 접촉은 로라에게 충격을 주고 삶을 새로운 눈으로 보게 만든다. 아직 어려 세계와 인생의 전모를 다 볼 수는 없지만 적어도 밝게만 보아온 그뒤에는 자신이 모르고 있었던 어두운 진상이 감춰져 있다는 자각 정도는 얻은 듯하다. 머지않아 그녀는 못다 맺은 마지막 말 - "인생이란......"의 뒤를 마저 채우게 될 것이다. (<이문열 세계문학산책> 5권 111~2쪽에서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