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古典을 읽다

고대소설 『숙영낭자전(淑英娘子傳)』

by 언덕에서 2020. 1. 16.

 

고대소설 『숙영낭자전(淑英娘子傳)』 

 

 

  

조선 후기 작자 미상의 염정소설로 조선 숙종에서 정조 사이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한문본으로 <재생연(再生緣)>이라는 작품이 있으나, 내용은 같으며, 이본으로 <역련동기(玉蓮洞記)>가 있다. 11책으로 국문본이며 수경낭자전수경옥낭자전숙항낭자전낭자전이라고도 한다. 목판본ㆍ필사본ㆍ활자본이 있는데 제목이 다르게 된 것은 모두 필사본이다. 한문본인 <재생연>을 번역, 증보한 것으로 짐작될 뿐이다.

  이 소설은 이 작품은 여주인공이 자결이라는 수단으로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고, 남주인공은 사랑으로 죽은 배우자를 다시 살려낸다는 내용을 담았다. 사랑이라는 주제를 재생이라는 초월주의적 사고로 둘러싸고 있는 점이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도선 사상이 깃들어 있는 결연설화와 재생설화를 중심으로 하여 끝을 맺는 애정 소설이다. 현세에서 사랑을 다 이루지 못한 남녀가 죽은 뒤에 재생하여 행복을 누린다는 이야기이다.

  필사본인 <재생연(再生緣)>이 이 작품의 한문본이라고 알려져 있으나 등장인물의 이름이 다르며, 자료가 현전하지 않아 동일작품 여부나 그 선후 관계를 정확히 알 수 없다. <재생연>은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었으나 유실되었으며, 규장각도서인 <재생연전(再生緣傳)>과는 별개의 작품이다.

  목판본은 모두 경판본으로서 16장본ㆍ18장본ㆍ20장본ㆍ28장본이 있으며, 주로 철자 및 수식 정도에 차이가 있을 뿐 대체적인 내용은 같다. 필사본은 수십 종이 있으며 내용상의 차이가 다양하다.

  활자본은 1915년 한성 서관ㆍ신구서림에서 출판되기 시작하여 수많은 출판사에 의하여 계속 출판되는데, 경판 16 장본을 대본으로 하였으며, 활자본 사이에는 내용상의 차이가 별로 없다. 6회의 장회체(章回體)로 된 것이 목판본ㆍ필사본과 구별되는 뚜렷한 특징이다. 개화기 이전에 나온 것으로 절대연대가 명시되어 있는 것은 파리 동양어학교 소장 경판 28장본뿐이며, 그 연대는 1860(철종 11)이다.

  한 말에는 판소리로 불리기도 하였으며, 이름만 전하는 <백상군가(白尙君歌)><백선군가(白仙君歌)>는 각색된 판소리 사설이나 대본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안동민의 <숙영낭자전>(1961)은 고전소설을 현대적으로 개작한 것이다. 내용은 목판본계(활자본 포함)와 필사본계로 뚜렷이 구분된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선비 백상군과 부인 정 씨는 명산대찰에 빌어 낳은 외아들 선군이 장성하자 혼처를 구하자, 천상에서 죄를 짓고 선경 옥련동에 귀양 와 있던 적강 선녀 숙영 낭자는 선군의 꿈에 나타나 자신과의 천상인연을 알려주고 하늘이 정한 기한이 3년 남았으니, 그때까지만 기다리라고 했다. 선군은 낭자를 그리워하다가 병이 나고 말았다. 상곤 부부가 백약으로 치료를 해도 효과가 없어 눈물로 세월을 보냈으나 선군은 사실을 실토하지 않았다. 낭자도 여러 번 꿈에 나타나 선물을 보냈으나 선군은 사실을 실토하지 않았다. 낭자도 여러 번 선물을 가져다주고 선군집 시녀 매월을 시첩으로 삼게 했으나 여전히 차도가 없었다.

  낭자는 선군의 목숨을 염려하여 다시 꿈에 나타나 만나려면 옥련동으로 오라고 했다. 선군은 유람을 핑계로 부모를 속이고 옥련동에 가서 3년만 참아달라는 낭자의 간청을 거절하고 혼인하여 함께 귀가하였다. 그 뒤 부모를 모시고 8년간의 행복을 누렸다. 선군은 숙영의 말을 듣지 않고 기어이 혼인을 강요하여, 남매를 낳고 금슬의 낙을 누렸다. 선군은 아내와 헤어지기 싫어, 과거를 보라는 아버지의 명을 거역하다가 아내의 권유로 과거 길을 떠났다.

  그러나 선군은 숙영을 연연한 나머지, 그 먼 길을 되돌아 두 번이나 밤중에 집으로 몰래 숨어들어 아내와 함께 자고 갔다. 백상군이 선군을 외간 남자로 오인한 틈을 타, 시비 매월이 숙영을 음해하여 누명을 씌운다.

  숙영이 분함을 못 이겨 자결했는데, 시체가 움직이지 않아 장례를 치를 수 없었다. 백 공은 선군이 숙영의 죽음 때문에 상심할 것이 두려워 임 진사의 딸과 약혼해 두었다. 과거에 급제한 선군이 꿈을 통해 숙영의 소식을 알고 돌아와, 사건을 밝히고 매월을 죽여 그 원수를 갚는다. 숙영 낭자는 며칠 뒤 옥황상제의 은덕으로 재생하여 선군과의 연분을 다시 잇게 된다.

  선군은 숙영의 권유로 자신과의 약혼 때문에 정절을 지키고 있는 임 소저를 둘째 부인으로 취했다. 주상은 낭자와 임 소저에게 각각 정렬부인, 숙렬부인인 직첩을 내려 주었다. 세 사람은 부귀영화를 누리다가 같은 날 함께 하늘로 같은 날 승천하였다.

 

극단 세이레의 '숙영낭자전을 읽다'. 출처 :  제주일보(http://www.jejunews.com)

 

 

  필사본계는 주변 인물의 이름이나 신분이 다른 점, 선군이 낭자를 찾아갈 때 부모에게 사유를 알린 점, 낭자의 비통한 장례가 거행되는 점, 선경의 못 속에서 낭자가 재생해 나오는 점, 상소 사건이 없다는 점 등에서 목판본계의 내용과 구별된다후반부에는 구체적인 차이가 더욱 심하다. 필사본 중에는 재생한 낭자가 부모와 별거하는 것으로 되어 있거나 아예 장례사건을 결말로 삼은 이본도 있다. 필사본 중에도 목판본계의 내용과 같은 내용을 지닌 것이 없지는 않으나 그런 경우는 아주 드물다.

 이 소설은 남녀 주인공의 열정적인 사랑과 여주인공의 비극적인 죽음을 중심으로 가정의 갈등을 형상화해 비극적인 성격이 강하다숙영 낭자는 선군과 천생연분이었지만 정식으로 맞아들인 며느리가 아니었기에 마침내 외간남자와 통정했다는 누명을 쓰고 자결한다이는 당시 조선 시대 후기의 세계관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대목이기도 하다고전소설에서 특이하게 나타나는 이러한 비극성은 역설적으로 봉건적 신분 관계나 사회적 관습과 이념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사랑하고 싶었던 당대인의 열정을 표방한다.

 

 

  『숙영낭자전』은 청춘남녀의 사랑을 환상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이 환상성에는 당대인들의 질곡과 바람이 은은히 배어 있다. 이 작품은 조선시대의 유교적 이념과 신분차별 등을 극복하기 위해, 또 그것이 바람직하지 않음을 드러내기 위해 환상적인 기법을 활용했다. 여기에는 초월적이거나 운명론적인 세계관이 깃들어 있는데, 이는 고달픈 현실에서 인간다운 삶과 가치를 실현하고자 한 당대인들의 가녀린 몸부림의 산물이다. 그래서 소설 속 환상성은 뒤집어 말하면 곧 현실성이기도 하다.

 효는 유교 도덕에 바탕을 둔 봉건적ㆍ전통적 가치관이고 애정의 추구는 인간의 본능적 욕구를 긍정하는 새로운 가치관이기에 양자의 갈등은 시대적인 중요성을 지닌다. 더욱이 후자가 전자를 극복하는 방향으로 사건이 진행되었다는 것은 조선 후기 사회에 실제로 있었던 가치관의 변모를 여실히 보여준다.

  이러한 의미에서 이 작품은 높은 문학적 가치를 지닐 뿐 아니라, 이와 같은 문제를 이 작품만큼 선명하고도 깊이 있게 형성한 작품이 없으므로 문학적 가치와 문학사적 의의가 더욱 증대된다. 종래에는 소재가 비현실적이고 구성과 주제가 통속적이라는 이유 아래 과소평가 되어 왔으나 근래에 새로이 주목되어 재평가를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