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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현대소설

서머싯 몸 단편소설 『레드(Red)』

by 언덕에서 2020. 2. 10.

 

서머싯 몸 단편소설 『레드(Red)』 

 

 

영국 소설가·극작가 서머싯 몸(William Somerset Maugham : 18741965)의 단편소설로 1919년에 발표되었으며 국내에는 <돌아온 레드>, <돌아온 연인>, <환애> 등 다양한 제명으로 소개되었다.

 몸의 인품은 선천적인 말더듬이였던 탓에 병적일 정도로 내향적이었으나, 사물을 보는 눈은 냉소적이고 신랄하였다. 반면에, 타인에 대해 상냥한 배려를 할 줄 알았으며, <인간의 굴레>에 등장하는 샐리와 같은 여인을 특히 좋아하였다. 그러나 자신이 상류계급에 속함을 지나치게 의식하는 여성은 싫어했다고 한다. 1919년에 발표한 <달과 6펜스> 외에 많은 명작을 발표했으나 일반인들의 기호에 영합하는 장인 기질로 인해 비평가들로부터는 호평을 받지 못했다.

 서머싯 몸은 1874년에 태어나서 1965년까지 살면서 일생 동안 많은 여행을 했다. 1916년에는 하와이로부터 시작해 사모아제도를 돌고 타히티섬까지 찾았다. 이 여행으로 몸은 <달과 6펜스>, 「레드」, (Rain)등 남태평양 여러 섬을 무대로 한 작품을 썼다. 몸은 이야기 전개에는 비약적인 상상력을 보여주곤 하지만 자신이 작품 속에 무대로 삼은 곳의 기후풍토나 자연환경 묘사할 때는 실제로 그곳에 가서 본 그대로를 생생하게 표현했다. 단편소설 레드도 그런 평가를 받는 사실감 넘치는 작품 중의 하나이다

 

프랑스 화가 고갱은 주로 남태평양의 여인을 그림의 모델로 삼았다. 소설 속의 주인공 샐리도 이런 모습이었으리라.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남태평양의 어느 섬에 도착한 빨강머리 젊은 선원 레드는 탈영한 해군 병사다. 아폴로 상을 닮은 수려한 용모를 한 선원 레드는 아름다운 원주민 처녀 샐리를 만나 사랑에 빠져 동거 생활에 돌입하고야 만다. 어느 날 선원 레드는 멀리서 온 배를 충동적으로 타고 떠나갔다. 젊음은 좁은 섬에서 한 여인과의 사랑만으로는 만족하기 어려웠는지 아니면 잠시 다녀오려고 했을지도 모른다. 남자가 오래도록 돌아오지 않자 여인은 어쩔 수 없이 다른 남자와 결혼했지만 돌아오지 않는 남자 레드를 못 잊는다.

  원주민 여인 샐리의 남편 닐슨은 스웨덴의 지식인으로 25년 전 폐결핵에 걸려 앞으로 살날이 1년 정도 남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남태평양 한 모퉁이의 섬에 요양차 왔다. 그리고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뛰어난 미모의 원주민 여인 샐리를 발견하고 사랑을 하며 기적적으로 건강을 회복한다. 그러나 그 여인에게서 진실한 사랑을 끝내 얻지 못했다. 반세기나 같이 생활했건만 그리스 신화 속의 아폴로 신을 닮았다는 여인의 옛 애인을 일상의 상념 속에서 한없이 선망하며 살았기 때문이다.

  몇십 년이 지난 어느 날이었다. 대머리에 배가 튀어나와 아주 천하고 추하게 생긴 거구의 선장이 작은 화물선을 타고 섬으로 들어왔는데 닐슨 부부의 집에 왔다. 닐슨은 이 선장과 만나 대화를 하던 도중 뚱뚱하고 천박한 선장 그가 바로 아내의 옛 애인인 레드라는 것을 눈치챈다. 이런 자에게도 젊은 시절이 있었을까 궁금할 정도로 무지하고 혐오스러운 그자가 레드다. 펑퍼짐하고 심드렁한 중년의 아낙네가 돼 버린 샐리와 레드는 서로를 알아보지 못한다.

  이야기가 첫머리의 것으로 이 이야기의 결말이 반전 속에 공허하게 내려진다. 닐슨은 그 여인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낭비, 웬 낭비! 하고 마음속으로 외친다.

 

 

 

 (전략) 주인공 레드는 수려한 용모에도 불구하고 마음은 순수하지 않았는지 모른다그렇지만 원주민 처녀 샐리와의 사랑만은 순수했다고 믿을 수밖에 없다샐리의 아름다움과 순수함은 의심할 구석이 거의 없어 보인다젊은 닐슨의 사랑도 아름다움이나 순수함에서 결코 두 사람에게 뒤지지는 않을 듯하다.

 그런데 30년의 세월은 이들에게 무슨 짓을 했던가, 전설의 미남이요 사랑의 화신이었던 레드는 보잘것없는 배의 술에 전 배불뚝이 선장으로 돌아와 거칠고 상스러운 삶을 연상케 하는 언행으로 딴전을 피운다. 두 사람의 백인 사내를 그토록 눈부시게 했던 샐리는 검붉고 살찐 원주민 노파로 변해 무의미한 반복과도 같은 삶을 이어가고 있다. 일찍이 학문에 만만찮은 야심을 품었을 만큼 지적이었던 닐슨도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에 그 젊음과 지성을 탕진하고 비뚤어진 늙은이가 되어 일생의 연적에게 은밀한 복수나 꾀한다. (<이문열 세계명작산책> 8212쪽에서 인용함)

 

 

  몸은 평소에 주장해왔다. 그의 신조대로 그는 사람들이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 재미가 있어 사람들이 귀를 기울이게 만드는 이야기를 일평생 써왔기 때문에 그를 흔히 통속작가라고 비하하는 문예비평가들이 있다. 인생을 꿰뚫어 보는 날카로운 눈, 그리고 반어적(反語的)인 눈을 지닌 몸은 인생 자체를 무의미하고 어떤 목적도 없는 것으로 보았기에 그러한 비평가들의 평가에 구애받지 않았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실감 나게 쓰기 위해 세계 각지를 돌면서 취재를 하고 극명하게 메모를 해서 그 재료를 작품 속에 그대로 투입했다  『레드는 닳아버릴 대로 닳아 버려 회상하기도 싫은 너절한 옛사랑의 그림자라고 해야 할 듯하다. 허무하다 못해 추한 결말에 너무나 실망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다. 본문 중의 한 구절을 인용해본다.

  “사랑의 비극은 죽음이나 이별이 아닙니다그 두 사람 중에서 한 사람의 마음이 변하는 데 얼마나 걸린다고 생각하십니까과거에는 잠시도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진심으로 사랑했지만이제는 다시 보지 못하게 되어도 괜찮아진 여인을 바라보는 일은 끔찍하게 괴롭습니다사랑의 비극은 관심이 사라지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