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외국 현대소설

알베르토 베빌라꽈 단편소설 『크리스마스에 걸려온 전화(Una telefonapa di napale)』

by 언덕에서 2020. 1. 6.

 

알베르토 베빌라꽈 단편소설 『크리스마스에 걸려온 전화(Una telefonapa di napale)』 

 

 

단편소설 『크리스마스에 걸려온 전화』는 20세기 이탈리아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문예 비평가·영화감독인 알베르토 베빌라꽈(Alberto Bevilacqu)의 작품으로 우리나라에서는 1996년 발간된 <이문열 세계문학산책> 8권에 한형곤 옮김으로 소개되었다. 작가에 관한 자료가 위의 책에서 소개된 것 외에는 우리나라에 전혀 없어 작가와 작품에 관한 설명은 해당 서적에서 서술된 편자(작가 이문열)의 해설을 주로 참고했음을 밝힌다.

 (편자에 의하면) 베빌라꽈 소설의 특징은 차원 높은 예술적 주제를 대중적인 언어로 쉽게 풀어 쓴다는 데 있다고 한다. 베빌라꽈는 처음 시로 문단에 나왔고 초기에는 시작에만 전념했다. 그러던 그가 소설가로 방향을 튼 것은 1964, 그러니까 첫 장편소설 <깔리파>를 발표하면서부터였고 이후에는 문예비평과 영화감독 쪽 일도 하고 있음을 google을 통해서 알 수 있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주인공 페데리코는 이탈리아 로마 시내에서 홀로 사는 노인으로 크리스마스 날 난생처음 혼자서 만찬을 들었다. 사랑하던 아내는 죽었고 자식들은 멀리 떠나버린 후 큼직한 아파트 한쪽 부분을 매각하느라 집 한가운데에 벽을 만들어서 이제 집의 방은 두 개로 줄어들어 궁색한 상태이다. 그날 식사를 끝낸 그는 서재로 가서 잠들었다. 그에게는 일의 능력이나 수완을 매개로 한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도 거의 끊어졌다. 당장 일거리는 하나 가지고 있지만, 그것도 과거에 바탕을 둔 예외적인 관계에서 주어진 단순한 일일 뿐이다. 일생 배인 습관과도 같은 한낮의 일상과 적막감 속의 밤이 그가 이어가는 삶의 내용이다.

  그날 밤, 잠이 든 페데리코에게, 자신이 전혀 알지 못하는 어느 늙은 여인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여인은 페데리코와 이웃에 살았던 연유로 그가 열다섯 살 때부터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의 신상과 성격과 그간 살았던 삶의 이력에 관해 세세하게 파악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 순간이 그가 잊어버리려 했던 것을 마지막으로 볼 수 있는 순간'이라고 말했고 그러다 전화는 끊겼다외로운 노인에게 걸려온 이상한 전화는 아득한 과거로부터 걸려온 연결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 사리에 맞지 않음 때문에 그는 그날 자신에게 일어난 모든 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더구나 발신자는 자신의 기억에는 전혀 남아 있지 않은 여인이었다그러자 그는 상대가 누군지 견딜 수 없으리만큼 궁금해졌다.

  그 의문으로 인해 안절부절 못한 채 며칠을 보낸 그에게 4일이 지난 밤에 또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여인은 페데리코가 자신의 삶 속에서 진실하게 존재했으므로 자신이 그의 '숨은 부인'일지도 모른다고 했다. 이어서 현재 그녀는 옆 건물에서 그의 모습을 내려다보고 있다고도 말했다. 많은 기억을 생생히 상기시키면서도 여인은 끝내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않았다.

  그로부터 며칠 후, 깊은 밤중에 전화벨이 매우 길게 울렸다. 똑같은 목소리가 거칠게 숨을 쉬며 가까스로 애쓰고 있는 것처럼 들렸고 간단하게 "페데리코…….“ 라고 말하더니 끊겼다.

  다음날 페데리코는 전화국에 가서 '전화 검사 청원서'에 서명하여 발신자 추적을 신청했다. 상대가 누구인지 궁금하기 짝이 없었던 그는 며칠 후 결과를 접했는데 드디어 발신자의 주소와 이름을 알 수 있었다.

  '세실리아…….'

  주소를 확인한 그가 자신이 기거하는 아파트 옆 건물에 있는 상대를 찾아갔을 때 그녀는 이미 죽은 뒤였다. 여자의 집 창에는 그의 방이 내려다 보였으며 선반 위의 액자에 들어 있는 페데리코의 젊은 모습만이 자신도 모르게 피었다가 스러져간 서글픈 사랑을 증명해주고 있을 뿐이었다.

 

 

 

 

 (전략) 세월은 사랑했던 사람은 물론 기억과 경험을 공유했던 세대를 떠나가게 만든다. 늙는다는 것은 그들이 떠나버린 뒤의 외롭고 적막한 삶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 페데리코는 그런 노년을 쓰라리게 보내는 사람이다. 아내와는 사별했고 자식들은 멀리 떠났다. 그런 그에게 어느 낯선 여인에게서 전화가 온다.  여인은 페데리코의 성격은 물론, 유년시절부터 결혼생활과 자녀들까지 속속들이 알고 있었다. 그녀는 페데리코에게 '당신은 당신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믿으려 하지 않았고 당신의 좋은 점만 원했던 사람들을 믿고 싶어하지 않았다'며 나무라기도 했고, 자신이 '어쩌면 당신의 부인인 셈'이라고도 말했다. 그녀가 전화에서 상기시킨 모든 것은 사실 그대로였다. 그러자 그는 진심으로 상대가 궁금해졌다. 자신도 모르게 받은 사랑이 세월을 뛰어넘어 찾아왔다는 감격도 있었을 것이다. (<이문열 세계명작산책> 7권 177쪽에서 인용)

 많은 기억을 생생히 상기시키면서도 여인은 끝내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않았다. 그러나 '발신자 추적'을 통해서 겨우 상대를 알고 찾아간 아파트의 문지기는 말했다.

  "부인은 돌아가셨소. 엊저녁 병원으로 가는 도중에 엠뷸런스에서 죽었지요."

 그녀는 죽어가는 순간에 마지막으로 또다시 페데리코에게 전화를 건 것이었다. 그녀의 방으로 들어가니 하녀가  "무슨 일이죠? 누구시죠?" 라고 물었다. 

 침대 옆 선반 위 액자에는 스무 살 때 찍은 페데리코의 사진이 보였고 웃음 띄운 그의 젊은 얼굴 주위에 은으로 된 액자의 테가 둘러져 있었다. 분명히 갑자기 찍은 스냅 사진이었다.  - 본문에서

 

 

 (전략모르는 사이에 피었다가 스러져간 사랑……늙음의 내용이 바로 그러하다이 작품이 감동을 주는 것은 애틋한 이야기의 진행뿐만 아니다오히려 아파트 건물을 나왔을 때 다시 눈이 오기 시작했다눈이 페데리코를 둘러싸며 지상으로 떨어져 소리 없이 떨어지는 바람 속에서 응고되고 있었다.’라는 마지막 행을 읽은 뒤에야 묘한 가슴 저림을 끌어내는 여운이다. “이제 이 늙은이를 어떻게 해…….”하는 속절없는 한탄이다. (<이문열 세계명작산책> 7권 178쪽에서 인용)

 첫 작품에서부터 자신의 문학적 특성을 선명하게 표방한 베빌라꽈는 2년 뒤인 1966년 두 번째 장편소설 <이런 종류의 사랑>을 발표해 소설가로서의 이름을 확고히 다졌다. 그의 대표작인 <이런 종류의 사랑>에서 그는, 몰락해가는 현대문명 속에 사람들은 오로지 비인간화되고 기계화되며 끝내는 환락만을 추구하는 감각적인 놀이에 몰두한다고 이야기했다. 1971년 발표한 <이런 종류의 사랑>(2)에서도 그는 감정에의 유혹에 관한 깊은 통찰력을 발휘해 시선을 끌었다. 베빌라꽈는 아직 많은 양의 작품을 발표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광범위한 문화 활동과 줄기찬 작품 발표 덕택에 이탈리아에서는 매우 비중 있는 작가로 평가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