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토브리앙 단편소설 『르네(Rene)』
프랑스 작가 F.A.R.샤토브리앙(Chateaubriand, 1768~1848)의 단편소설로 1802년 작품이다. 이 소설은 애초 <그리스도교의 정수> 제2부에 편입된 에피소드였으나 1805년에 분리, 그의 출세작인 <아탈라(Atala)>의 자매 편으로 출간하였다.
프랑스 혁명에서 비롯되어 나폴레옹의 몰락에 이르기까지 사회의 격심한 변동은 붕괴하는 구세대에게는 환멸과 비애를 초래하고 진로를 모색하는 신세대에게는 불안과 초조감을 불러일으켰다. 이를 세기병이라 하는데, 샤토브리앙의 작품은 세기병의 표현이다. 이 소설은 프랑스의 낭만주의 문학에 깊은 영향을 끼치고 그 선구가 된 작품이다.
이 작품은 누이인 아멜리의 치명적인 고백에 프랑스를 떠났던 르네가 북미 대륙에 도착하게 되면서 시작된다. 당시 북아메리카는 식민지를 개척하던 영국과 프랑스, 스페인의 각축장이었다. 누이인 아멜리와의 불행한 사랑 때문에 세상과 단절하고 조국 프랑스를 떠나 낯선 땅 북아메리카의 인디언 타운에서 고독하게 방랑하던 르네는 미시시피 강가의 나체즈 족 인디언들을 만나면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된다. 군중 속에서도 고독을 느끼는 르네. 그가 인디언 친구 우투가미즈와 자신의 아내 셀루타와의 관계에서 보여주는 헌신적인 우정과 사랑, 그리고 고통은 자신의 정체성을 추구하며 영혼의 동반자를 갈망한다.
이 작품은 우리나라에서는 1996년 발간한 <이문열 세계명작산책> 1권에서 첫 번째 작품으로 소개되었는데 옮긴 이는 진형준으로 표기되었다. 이후 2017년 [계몽사]가 E-BOOK으로 발행되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유복한 프랑스인 청년인 르네는 혁명의 소용돌이에 있는 고국 프랑스를 떠나 루이지애나 광야에 박혀서 지낸다. 그는 미국 원주민 나체즈족과 함께 살게 되는데 늙은 인디언 샥터스와 선교사 스에르에게 자기의 신상 이야기를 한다. 그의 양아버지인 샥타스와 수엘 신부는 그가 어쩌다가 이곳에 와서 지내게 됐는지 궁금해한다. 르네는 그 이야기를 들려준다.
르네가 본래 프랑스의 벽촌 브로타뉴 지방에서 태어났을 때부터 부모님은 돌아가시고 어린 시절 누나와 행복한 한 시절을 보냈다. 르네는 자유분방하고 몽상적인 청소년 시절을 보냈지만, 까닭 모를 우울증에 빠져 각지를 편력한다.
르네는 그리스, 로마 등으로 여행을 떠난다. 여행을 다니다 고독 속에서 우울증은 심해져 자살을 기도하기까지 한다. 누이 아멜리는 그런 르네를 타일렀으나, 둘 사이에 야릇한 애정이 싹터 두려움이 생긴 누이는 수도원으로 떠난다.
르네는 누이를 다시 만나 회복되는 느낌을 받지만, 그녀와 이별하면서 모든 것에 절망한 채로 아메리카로 떠나고 그곳에서 누이의 부음을 듣는다.
"(전략) 잘난 이론가들은 이 작품에서 근친상간의 모티브를 끌어내 원형분석을 시도할지도 모르고 남매콤플렉스를 들먹이며 심리학적 분석을 하려들 수도 있겠으나 그런 것은 내 이해 밖이다.
젊은 날 이 작품이 내게 감동을 주었던 것은 그 사랑의 철저한 관념성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그들의 삶에 베푸는 엄청한 효용이 아니었던가 싶다. 이들 불행한 연인들에게는 육신을 가진 인간의 삶이 없다. 오늘날의 관점으로 보아서는 사랑이라는 이름을 붙이기조차 어려울 만큼 육체와 성(性)은 철저히 분리되어 있다.
사랑을 표현하는 행위로서는 가벼운 살갖의 스침조차 없는 사랑도 사랑일 수 있는가. 그런데도 그들은 그 사랑으로 우리 존재가 직면하고 있는 거대한 고독의 심연을 헤쳐가는 유일한 수단으로 삼고, 그 사랑과 삶의 나머지 부분을 기꺼이 바꾼다. 그리고 궁극으로는 그 사랑을 통해 초월의 길목으로 접어든다. 아멜리가 죽은 뒤 르네의 삶은 냉정하게 보면 방기(放棄)이고 일탈이지만 젊은 내게는 그것조차도 초월의 한 양상으로 이해되었다.(☜ <이문열 세계명작산책> 1권 60쪽에서 인용)
♣
프랑수아 르네 드 샤토브리앙(1768~1848)은 프랑스 서해안 생말로의 전통 깊은 구귀족 가문의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소년 시절은 명상에 잠겨 해변과 삼림을 소요하는 우수에 잠겼고, 낙이라면 자기처럼 고독해 하고 우울한 막냇누이 쥐실르와 더불어 자기들이 갖는 우울을 서로 나누는 것이었다. 그러는 사이 이들 남매를 묶는 ‘정신적 결합’은 고백할 수 없는 사랑 비슷한 감정으로까지 발전하였다. 『르네』는 바로 이 ‘정신적 고독감’에 사로잡힌 남매간의 사랑을 주제로 한 내용이다.
이 작품에서 작가는 미국으로 건너간 프랑스 젊은이 르네의 메울 수 없는 권태로움을 통해 작가 자신이 콩부르에서 보냈던 열정적인 소년 시절을 그렸다. 신대륙을 소개함으로써 낭만주의의 특징 중 하나인 이국 취향을 표현했다. 이 작품은 세기병의 원형으로 프랑스 낭만주의 문학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쳤다.
르네는 휘몰아치는 폭풍에 머리를 흩날리며,
“빨리 불어 다오. 르네를 새로운 세계로 옮겨다 주는 대망의 폭풍우여!”
라고 외친다. 르네는 채워지지 않는 욕구 속에서 고독하고 우울한 나날을 보내는 청년이며, 대혁명 후에는 부르주아 사회에서 있을 곳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청년의 전형이다. 누이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극복하지 못한 연유 때문일 것이다. 르네는 그의 정열이 발동하는 대로 행복을 동경하지만, 결국 발견한 것은 불안과 권태뿐이었다. 작품 전체에 넘치고 있는 비애와 우수의 감정은 시적인 명문과 더불어 그 후의 낭만파의 선구자가 되고 크게 영향을 미쳤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은 낭만주의 시대의 세기병적 페시미즘을 낳게 한 원천이라고 할 수 있다. 자존심 강하고 고독하며 숙명적인 소설의 주인공들은 모두 이 르네에게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젊은이의 고독과 권태로움을 묘사했다는 점에서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Die Leiden des jungen Werthers〉과 같은 계보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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