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까사와 시찌로 단편소설 『나라야마부시고(楢山節考)』
일본 소설가 후까사와 시찌로(深沢七郎, 1914~1987)의 단편소설로 1956년 발표되었다. 국내에는 1996년 소설가 이문열이 편찬한 <이문열 세계명작산책> 2권(죽음의 미학)에 실렸는데 이호철 번역으로 표시되어 있다. 이후 1999년 영화 시나리오를 번역한 책이 소개되었다. 제목을 우리말로 직역하면 '졸참나무산에서 노래구절을 생각함' 정도가 될 듯하다 . 이 소설은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이마무라 쇼헤이(今村昌平) 감독이 1982년 원작을 영화로 만들면서, 후까사와 시찌로의 다른 소설 한 편을 혼합해서 두 소설의 내용이 섞힌 시나리오를 만들었다. 따라서 국내에 소개된 번역 책자는 오리지널 소설 번역본과 영화 시나리오 번역본이 각각 존재하는데 여기서는 원작소설 번역본을 소개하고자 한다.
작품의 배경은 19세기쯤 일본 관동지방인 나가노현(長野縣)의 한 산간마을으로 식량이 부족해 항상 기아에 시달리는 곳이다. 경작지가 협소한 산촌마을이라 한정된 양식으로 근근히 살아가야 하는 형편이어서 신생아도 예외가 될 수 없는 상황이니 일흔 된 노인네는 당연히 알아서 목숨을 끊어야만 하는 절대빈곤 상태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주인공의 가족으로는 45세의 홀아비 가장 닷뻬이, 69세의 노모 오린, 닷뻬이 슬하에 아들 게사요시와 남동생, 세 살된 딸 등 다섯 명이다. 가장 닷뻬이는 노모에 대해 효성이 지극한 아들인데 일흔을 바라보는 노모 오린은 아직도 정정하여 치아도 모두 남아 있다. 오린의 큰 며느리가 얼마 전 산속에서 낙상하여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사실상 이 집안의 안주인 역할을 한다. 주인공의 큰 아들 게사오시는 결혼적령기로 철딱서니 없는 인물이지만 나름 약은 면도 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홀아비가 된 닷뻬이에게 새로운 며느리를 소개하겠다고 파발꾼이 노모 오린을 찾아온다. 어느 집이나 양식이 부족하므로 필요 없는 입은 없애야 하는 상황임에도 불과 이틀 전에 과부가 된 이웃 마을 여자를 데리고 온 것이다. 그런데 철없는 아들 게사요시는 자기와 살을 섞은 같은 마을의 마쓰라는 여자애를 집으로 들인다. 제한된 식량에 갑자기 두 사람 입이 늘자 노모 오린은 산으로 가야할 입장이 되고 만다. 이웃한 마따 집안은 동네에서 식량을 훔치다 발각되어 오래전부터 내려온 마을의 관습대로 온 식구가 집단린치를 당하여 생매장된다.
이 마을에 아기가 태어날 경우 남아는 입을 줄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산에 버리고 여아의 경우엔 소금 장수에게 소금을 받고 판다. 나이 일흔이 되면 남녀를 불문하고 나라야마라고 하는 험하고 높은 산에 버리게 된다. 이것이 이 산간마을의 오래된 전통이다. 이 전통을 어기는 것은 비겁한 행위로 여겨지는데 사실 먹을 식량이 없으니 어쩔 수 없어 생긴 악습이다. 이 과정에서 죽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는 노인이 생기고 또 오린과 같이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도 나온다.
노모를 지게에 지고 졸참나무 산 중턱까지 오르는 길주변은 버려져서 죽은 노인들의 시체와 그것을 먹으려는 까마귀떼가 즐비하다. 닷뻬이가 어머니 오린을 나라야마 산속에 버리고 내려올 때 눈이 내린다.
닷뻬이가 산에서 노모를 버리던 순간, 집에서는 둘째 놈이 할머니의 부재를 물으며 칭얼거리는 막내에게 아래와 같은 노래를 불러주며 어르고 있었다.
할매를 버릴까, 뒷산에다가
뒷산이면 게(蟹)인들 기어올텐디
기어서 온대도 문안으로 안 들일 걸
게는 밤에 우는 새는 아니야
이 마을에서 옛날에는 늙은이를 가까운 뒷산에 갖다 버렸는데, 언젠가 노파 하나가 기어서 돌아온 적이 있다. 그 집 식구들은 "기어 왔다. 기어 왔다, 마치 게 같다" 하고 떠들면서 문을 단단히 잠그고 집안으로 들이지 않았다. 방안에 있던 어린애들은 진짜로 게가 기어온 것으로 알고 있었다. 노파는 밤새 문 밖에서 울고 있었다. 그 울음소리를 듣고 한 아이가 "게가 울고 있다" 하고 말했다. 그 집 어른 누군가가 "게가 아니다. 게는 밤에 울지 않는다. 저건 새가 우는 소리다" 하고 아이들에게 진짜 사정을 털어놓은들 알 리가 없기 때문에 이런 말로 때웠던 것이다. 게 노래는 바로 그런 사연이 깔려있는 노래였다.
소설은 주인공이 노모를 관습대로 산에 버리던 날 눈이 내려서 할머니 오린이 천당에 갈 것이라고 확신하며 복 받은 일이라고 게사요시가 술에 취해 말하는데서 끝을 맺는다. 그러나 현실은 눈이 오든 안 오든 산에 버려진 노인들은 결국 굶어 죽거나 얼어 죽을 수밖에 없다. 눈이 왔다고 그 죽음이 감춰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산에 늙은 부모를 버리는 관습은 옛날엔 많은 나라에 있었던 듯하다. 이런 관습을 '기로(棄老) 전설'이라 하고 인도의 기로국에 내려오는 전설에 기인하고 있다는데 중국이나 일본에서도 행해졌던 관습으로 보인다.
♣
(전략) 우리는 이런 소설의 출현을 위해 50년을 기다려 왔다.’ 후까사와가 『나라야마부시고(楢山節考)』를 발표했을 때 일본문단은 그와 같은 찬사를 서슴치 않았다. 짐작으로는 최인훈의 <광장>이나 윤흥길의 <장마>가 우리 문단에 준 충격보다 더했던 듯싶다. (중략) 문명과 물질적인 풍요로부터 격리된 이국의 오지와 결핍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들이 정착시킨 기이한 행태 및 제도는 어떤 신비함까지 자아냈을 것이다. 특히 우리에게도 고려장이란 전설로 남아있는 기로(棄老)의 습속 같은 것들은 이국적 나라야마부시의 애절한 가락과 더불어 젊은 내게 전율과도 같은 감동을 주었음에 틀림이 없다.(<이문열 세계명작산책> 2권 365쪽에서 인용)
이 소설은 1956년 후까사와 시찌로에 의해 발표된 단편소설로 설화와 소설적 스토리텔링이 합쳐진 이야기의 극치라는 평을 받는다. 1958년 키노시타 케이스케에 의해 처음 영화로 제작되었고 1982년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에 의해 다시 제작되어 제 32회 [칸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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