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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소설

하근찬 단편소설 『수난이대(受難二代)』

by 언덕에서 2019. 4. 16.

 

 

하근찬 단편소설 수난이대(受難二代)

 

 

  

소설가 하근찬이 쓴 단편소설로 1957[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이다. 이 작품은 한 조그마한 시골의 읍에서 일어난 일을 다루고 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이라는 역사적 배경이 깔려 있다하근찬의 작품에 나타나는 시대상황은 일본의 침략전쟁이 기승을 부렸던 때와 해방 이후 6.25 동란이 물고 왔던 전쟁의 비극이 크게 드러난다. 그의 데뷔작이며 대표적인 단편인 『수난이대』는 그러한 본보기인 작품이다.

 일제시대에 징용에 끌려간 아버지가 6.25 동란으로 군대에 갔다가 한쪽 다리를 잃고 상이군인이 되어 돌아오는 아들을 맞아 비탄에 빠진다. 그러면서도 아들을 업고 외나무다리를 건너는 마지막 장면은 너무나 처절하고도 가슴아픈 묘사가 아닐 수 없다. 그는 이 작품에서 전쟁의 비극성과 함께 일제침략이 약하고 무지한 농촌 사람들에게 안겨준 뼈아픈 상처를 가장 상징적으로 그려 놓았다.

 이 작품에서 외나무다리가 두 번 묘사된다. 우리 민족이 겪어야 했던 불행과 고난의 역사적 현장을 상징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볼 때, 이 상징적인 의미의 외나무다리는 주제를 추출할 수 있는 중요한 배경이며, 사건의 구성과 전개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핵심적 이미지이다. 일제 징용과 한국전쟁이라는 역사적 현실에 불구가 된 아버지와 아들의 대비를 통해 현실 극복 의지와 함께 화해를 모색하기 때문이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박만도'는 삼대독자인 아들 '진수'가 돌아온다는 국가의 통지를 받고 마음이 들떠서 일찌감치 정거장으로 나간다. 그런데 그는 불안한 마음을 떨쳐 버리지 못한다. 병원에서 퇴원하는 길이라 하니 많이 다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서다. 그는 팔이 없어서 늘 주머니에 한쪽 소맷자락을 꽂고 다닌다. 아들의 귀향 생각에 휩싸여 시간이 빨리 가기를 기다린다. 외나무다리를 건너면서, 언젠가 술에 취해 물에 빠져 옷을 널어 말리면서 사람들이 지나가면 물속으로 들어가 얼굴만 내놓던 일을 생각한다. 정거장 가는 길에 '진수'에게 주려고 고등어 두 마리를 산다.

 정거장에서 기다리는 동안 '박만도'는 과거의 일을 회상한다. 일제 강제노역 때문에 남양 군도의 어떤 섬에 끌려갔었다. 비행장을 닦는 일에 동원되었는데, 굴을 파려고 산허리에 다이너마이트를 장치하여 불을 댕기고 나서려는 순간 연합군의 공습이 시작되었다. 당황한 그는 다이너마이트를 장치했던 굴로 들어가 엎드렸다가 팔을 잃었다.

 기차가 도착하고 사람들이 내리기 시작하는데도 아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박만도'는 초조해진다. "아부지" 하고 부르는 소리에 뒤로 돌아선 '박만도'는 다리를 하나 잃은 채 목발을 짚고 서 있는 아들을 보고 눈앞이 아찔해진다. '박만도'는 분노를 씹으며 뒤도 안 돌아보고 걸어가다가 주막에 이르러 어찌할 수 없는 부정을 나타낸다. 술기운이 돈 '박만도''진수'에게 자초지종을 묻는다. 수류탄에 그렇게 된 것을 알게 되고, 이런 모습으로 어떻게 살겠냐는 아들의 하소연에 아들을 위로한다.

 외나무다리에 이르러 '박만도'는 머뭇거리는 '진수'에게 등에 업히라고 한다. '진수'는 지팡이와 고등어를 각각 한 손에 들고 아버지의 등에 슬그머니 업힌다. '박만도'는 용케 몸을 가누며 조심조심 걸어간다. 눈앞에 우뚝 솟은 '용머리재'가 이 광경을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다

 

  

 징용에 끌려갔던 박만도라는 인물이 주인공으로 어디로 끌려갔는지 상술되어 있지 않지만 아마도 그는 남태평양 사이판의 티니안 섬으로 끌려갔던 것으로 보인다. 박만도는 그곳에서 굴을 파는 공사에 동원되었다가 한쪽 팔을 잃는다. 당시 티니안 섬에는 일본군이 남양군도 최대의 공항을 건설했다고 한다. 이후 일본과 미국의 가장 큰 전투가 사이판과 티니안에서 벌어졌는데, 이때 많은 조선인 징용 노동자들도 희생되었다. 1975년 발견된 '조선인지묘'라는 비석 주위에 무려 5000여 구의 유골이 있었다고 하니 그 희생이 얼마나 컸을지 짐작할 수 있다.

 이 작품은 우리 현대사 속 질곡을 고스란히 겪는 부자의 모습을 그렸다. 아버지 박만도는 일제 때 강제징용으로 끌려가 팔 하나를 잃은 사람이다. 그런데 한국전쟁에 나간 삼대독자 진수가 한쪽 다리를 잃은 채 정거장에 나타난다. 그러나 만도는 탄식하는 아들에게 “앉아서 하는 일은 네가 하고, 나다니며 하는 일은 내가 하면 된다”고 위로한다. 외나무다리에 이르자 아버지는 머뭇거리는 아들을 등에 업고 건너간다

 

 

『수난 이대』는 일제 강점기 때 강제 징용에 끌려갔다가 한쪽 팔을 잃은 만도와 한국 전쟁 때 전쟁터에서 한쪽 다리를 잃고 돌아온 진수, 두 부자에게 일어난 이야기다. 하지만 『수난 이대』는 이들 두 부자에게 일어난 이야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작가는 이 이야기를 통해, 우리 근대사에서 양대 비극이라 할 수 있는 일제 강점기와 한국 전쟁을 거치면서 겪었던 우리 민족의 아픔과 상처를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작가는 이러한 역사적 비극을 치유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는데 외나무다리 장면은 민족의 수난을 극복하고 새로운 삶을 향하여 걸어가려는 인간의 의지를 보여 주고 있다. 이는 견디기 어려운 현실일지라도 서로 의지하여 살아간다면 이를 극복해 낼 수 있을 것이라는 주제를 드러낸다고 할 수 있다. 이 이야기는 상처와 비극에 초점을 두기보다는 그것을 극복해 가는 희망에 초점을 맞춘다. 살아가면서 누구나, 그 무게는 다르다 하더라도 아픔과 상처를 겪게 된다. 그러면서 절망하기도 하고, 누군가를 탓하기도 하고,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 순간 희망을 바라보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