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인 단편소설 『김연실전(金姸實傳)』
김동인(金東仁.1900∼1951)의 단편소설로 1939년 3월 [문장] 지에 발표되었다. 같은 해 5월에는 <선구녀>, 1941년 2월에는 <진주름>이라는 제목으로 [문장] 지에 재차 발표되었다. 개화기 당시 일본 유학생들의 생활 단면과 (작가의 시선에 의하면) 허영에 놀아난다고 간주하는 일부 여자 유학생들의 방탕한 일면을 파헤친 작품이다. 김동인은 여류 시인 탄실 김명순(1896~ ?)을 작품의 모델로 설정했다는 설이 그간의 대세였다.
개화기 신여성의 전형으로 그려진 김연실은 구습을 타파하고 새로운 한국 여성의 선구자가 되기 위해 우선 자유연애의 실천자가 된다. 정조 관념이라든가 일부종사라든가 하는 따위의 묵은 생각을 일소하고 신여성의 선구자가 되기 위해 그녀는 용감하게 여러 남성을 겪어 나가지만, 그것이 불륜이라든가 방탕이라는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는다.
김동인의 자연주의는 <감자>와 <명문>에서 싹터서 1940년대에 '김연실’이라는 1920년대의 한 선구적인 여성의 행적을 그 제재로 한 <김연실전>이라는 작품에 도달하고 있다. 이 작품은 1939년 [문장] 지에 연재되었으나 지나친 섹스 묘사로 일제로부터 출판 불허가 처분을 받았다. '김연실’의 전기적 사실은 1920년대의 우리 여성을 대변했다기보다도 자연주의의 전형적인 한 인생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현실의 부정적 인간형을 해부 폭로함으로써 자연주의적인 기능을 충분히 발휘한 탓이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김연실은 평양 감영의 이속1이었던 김영찰과 그의 소실이었던 퇴기 사이에서 태어나 신식 학교인 진명여학교에 다녔다. 그러나 그 학교가 운영난으로 문을 닫게 되자 더 공부할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김연실은 동경 유학을 꿈꾸며 기생오라비인 측량 기사로부터 일본어를 배우다가 열다섯의 나이로 순결을 잃는다. 그러나 그녀는 남자와 여자는 으레 그렇게 하는 것이려니 정도로밖에 생각하지 않는다.
이후 그녀는 집에서 돈을 훔쳐 몰래 일본으로 건너간다. 선배인 최명애의 도움으로 여학교에 들어간 연실은 조선 여자 유학생 친목회에 참석하여 회장의 연설에 감동하게 되고, 연실이는 선각자가 되리라 결심한다. 우리 조선 여성을 노예의 처지에서 건져내고, 구습에 아직 눈뜨지 못하는 조선 여성을 새로운 세계로 끌어내리라고 다짐한다. 또한, 같은 방의 호천이라는 여학생의 영향으로 여류문학가가 될 꿈을 갖게 된다.
그녀는 문학을 연애요, 연애는 성교라는 생각하고 문학과 연애를 사모하고, 또한 연애 소설에서 본 대로 스스로 체험하기 위해 남성을 찾고 학교도 음악 학교로 옮긴다. 그녀는 무수한 남성에의 편력을 거친 다음 귀국하여 여류문학가로서 문학 지망생들 사이에서 여주인공으로 활약한다.
그녀는 친구의 애인을 빼앗고 빼앗기는 생활을 하다가 모든 남성에게 버림을 받을 즈음에 세계적인 공황이 밀려와 극도의 빈곤을 맛보게 된다. 그녀는 호텔에서 하숙으로 생활을 줄여나간다. 그러던 어느 날, 셋방을 얻으러 갔다가 복덕방에서 옛날 일본어 선생이었던 측량 기사를 만난다. 그리하여 그녀의 최초의 이성이었던 복덕방 주인과 다시 동거생활에 들어간다.
김동인은 『김연실전』을 통해 모든 신여성을 매춘부로 묘사해내고 있다. 신여성에 대한 이와 같은 김동인의 판단은 지나치게 악의적이지만 일면 부인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다. 신여성을 향한 이와 같은 편견은 김동인 한 사람만의 문제가 아니었을 것이다. 그들은 앞장서서 '평등'의 근대적 의식을 부르짖었지만 그 의식을 지식으로 받아들였을 뿐 마음으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소설 속 화자는 연실이의 부모와 연실이의 환경을 보여주면서 구시대의 사회적 폐습과 가족제도의 한 특징을 적절히 다루어 주는 연실이가 자라나는 과정을 서술해 간다. 신시대의 학교와 기생과의 관계, 적서의 문제, '쌍것'으로서의 피해 의식, 그에 따른 연실이의 반항 의식, 연실에 대한 적모의 학대, 연실이 아버지와 첩 사이에 벌어지는 성 유희, 일어 선생과의 정사 관계 등이 전 작품 11장 중에서 5장을 차지하고 있다. 작가는 구시대의 한 가정을 택하여 소설화했는데, 연실이를 통하여 빗나간 신시대의 인물상을 보이려 한다.
그때 이미 그(김동인)에게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이상도 꿈도 취미도 아무것도 그에게는 있는 것이 없고, 간신히 그에게 약간의 자극을 주는 것은 '음란'과 '상말'뿐이었다. 이것만이 간신히 그에게 자극을 남긴 것은 그만치 그가 완전히 따라지에 이르렀기 때문이었다. (김동리 저 <문학과 인간> 10면)
♣
작가는 연실의 불행한 한 생애를 보여주면서 한국의 근대화에 나섰던 여러 선각자 중에는 연실이와 같은 빗나간 예도 있었다는 비판을 시도했음이 틀림 없다. 화자는 여러 군데서 연실이를 '부끄러움'을 모르는 아이로 그리고 있다. 그러다가 동경에 와서 최명애와 같은 단정치 못한 학생과 사귀고 결국 바로 잡힌 삶의 길을 발견하지 못한 채, '갈 길을 몰라서 헤매는 일천만의 조선 여성에게 광명을 보여주기로 단단히 결심하였습니다.'와 같이 웃음거리로서 선각자가 된 모습을 독자들에게 보여주며 야유한다. 이 작품의 전체적인 의미는 바로 웃음거리가 된 근대화의 과정의 한 측면을 연실이로 하여 실연하는 내용이다. 이러한 세계에 투영된 작가의 야유적 태도를 미처 못 느꼈을 때 김동리와 같은 빈정거림이 동반된 비판이 나왔을 것이다.
이 작품은 당시 남성 작가들의 작품에서 자유연애라는 근대적 사랑의 제도가 남녀에게 매우 차별적으로 적용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실례이다. 당대 여성혐오의 타겟이 되었던 신여성과 여류 작가를 염상섭,전영택,김기진, 방정환 등 많은 남성 작가들이 2차가해와 매장에 합세하였다. 『김연실전』은 그 자체로 당 시대의 지독한 여성혐오와 당시 남성 작가들의 이기적인 면모를 드러낸다.
그러나 김동인의 작품 집필 의도와는 달리 거의 100년이 지난 현재의 관점에서는 소설 속 김연실은 어떤가? '남자의 여자'로서의 여인상을 거부하고 주체적인 여성의 삶을 보여주고 있다. 남성중심의 봉건적 윤리사회에서 태어난 김연실이라는 이름의 개화기 때 여성이 성의 자유를 부르짖으며 앞뒤도 재지 않고 천방지축으로 남성편력을 해대는 것이 오히려 인간의 진실된 본 모습을 느끼게도 만든다.
☞탄실 김명순(1896 ~ ?) : 여류시인ㆍ소설가. 필명은 탄실(彈實) 또는 망양초(望洋草). 평안남도 평양 출신. 평양 갑부 김가산 소실의 딸이다. 서울 진명여학교를 졸업한 뒤, 1917년 잡지 [청춘]의 현상소설에 응모한 단편소설 <의심의 소녀>가 당선되어 등단하였다. 1919년 동경유학시절에 전영택의 소개로 [창조] 동인으로 참가하면서 본격적인 문필활동을 전개하였으며, 매일신보의 신문기자(1927)를 역임한 바 있고, 한때 영화에도 관여하여 안종화감독의 <꽃장사> <노래하는 시절> 등에 주연으로 출연하기도 했다. 1939년 이후 일본 동경으로 건너가 그곳에서 작품도 발표하지 못하고 생활고에 시달리다가 정신병에 걸려 동경 아오야마뇌병원(靑山腦病院)에 수용 중 죽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신문학 최초의 여류문인으로서 여성해방을 부르짖은 선구자적 구실을 하였으며, 여자주인공의 내면심리를 치밀하게 묘사한 소설들을 많이 남겼다. 개인적인 생활의 고뇌와 사랑의 실패 등으로 인하여 불우한 삶을 살았다.
- (吏屬)「명사」 『역사』 고려ㆍ조선 시대에, 각 관아에 둔 구실아치.≒속리, 이배. [본문으로]
'한국 현대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황석영 단편소설 『몰개월의 새』 (0) | 2020.12.11 |
---|---|
김말봉 장편소설 『찔레꽃』 (0) | 2019.05.31 |
하근찬 단편소설 『수난이대(受難二代)』 (0) | 2019.04.16 |
김유정 단편소설 『봄 · 봄』 (0) | 2019.03.12 |
김동리 단편소설 『까치 소리』 (0) | 2019.02.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