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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소설

김유정 단편소설 『봄 · 봄』

by 언덕에서 2019. 3. 12.

 

김유정 단편소설 『봄 · 봄』

 

 

김유정(金裕貞, 1908∼1937)의 단편소설로 1935[조광(朝光)]12월호에 발표하였다. 머슴으로 일하는 데릴사위와 장인 간의 희극적인 갈등을 매우 익살스럽게 그린 농촌소설이다.

 혼인을 핑계로 일만 시키는 교활한 장인과 그런 장인에게 반발하면서도 끝내 이용당하는 어리석은 머슴인 나의 갈등을 재미있게 그린 작품이다김유정은 이 작품에서 해학적 분위기와 개성적인 인물을 부각하는 데에 그의 독특한 문체를 이용한다. 김유정 소설의 장점은 토착적인 속어, 잘 다듬어지지 않은 듯한 말투로 작중 인물을 해학적으로 그리는 데 있다. 게다가 주인공의 심리 묘사를 친근감 있게 표현하는 1인칭 주인공 시점을 이용하여 의 우직하고 순박한 성품과 행동을 생생하게 드러낸다.

  여기에 대조적 인물로 등장하는 장인과의 갈등이 과장되어 작품 전반에 웃음이 넘치게 한다. 딸의 키를 핑계로 혼례를 미루고 일만 시키는 장인의 술수, 아버지의 행동에 반발하여 를 충동질하는 점순이의 당돌함, 장인의 술수에 대항하나 번번이 당하기만 하는 의 우직함 등이 한데 어우러지면서 희극적 상황은 확장된다. 결국 봄 봄로 대표되는 순박한 인물을 등장시켜 작품 전체의 분위기를 희극적으로 전개하고 있다. 또한, 이러한 점을 통해 순박한 시골 사람들의 단면을 해학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영화 -봄봄 Spring, Spring- , 1969 제작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내가 주인에게, 나이가 찼으니 성례를 시켜 달라고 뒤통수를 긁으면서 이야기하자, 그 장인는 점순이가 미처 자라지 않아서 성례를 시켜 줄 수 없다고 한다.

 어제 화전 밭을 갈 때 점순이가 밤낮 일만 할 것이냐고 했다. 나는 모를 붓다가 아프다고 핑계를 대고 논둑으로 올라갔다. 논 가운데서 이상한 눈초리로 노려보던 장인님은 화가 나서 논둑으로 오르더니 내 멱을 움켜잡고 뺨을 친다. 장인님은 내게 큰소리를 칠 계제가 못 되어 한 대 때려 놓고 어찌할 바를 모른다. 나는 장인을 구장 댁으로 끌고 갔다. 구장님은 당사자가 혼인하고 싶다는데 빨리 성례를 시켜주라고 한다. 장인은 점순이가 덜 컸다는 핑계를 또 한 번 내세운다. ''는 점순이가 자신을 '병신'이라고 나무라자 어떻게든지 결판을 내야겠다고 생각하고 일터로 나가려다 말고 바깥마당 멍석 위에 드러눕는다.

 대문간으로 나오던 장인은 징역을 보내겠다고 겁을 주나, 징역 가는 것이 '병신'이라는 말을 듣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한 ''는 말대꾸만 했다. 화가 난 장인은 지게막대기로 배를 찌르고 발길로 옆구리를 차고 볼기짝을 후려갈긴다. ''는 점순이가 보고 있음을 의식하고 벌떡 일어나서 수염을 잡아챘다. 바짝 약이 오른 장인님은 지게막대기로 나의 어깨를 내갈겼다. 내가 장인님을 발아래로 굴러 뜨러 올라오지 못하게 하자 장인님은 내 사타구니를 잡고 늘어진다. 할아버지까지 부르며 땅바닥에 쓰러져 거지는 까무러치자 장인님은 내 사타구니를 놓아주었다.

 그러나 이번엔 ''가 엉금엉금 기어가서 장인님의 사타구니를 잡고 늘어진다. 장인님이 ''를 할아버지라고 부르다가 급기야 점순이를 부른다. 점순이는 내게 달려들어 귀를 잡아당기며 악을 쓰며 운다. 나는 점순이의 알 수 없는 태도에 넋을 잃는다.

 

영화 -봄봄 Spring, Spring- , 1969 제작

 

 김유정의 대표작 『봄·봄』에서는 왜 봄이 두 번 쓰였을까? 가운뎃점의 의미는 무엇일까? '김유정문학촌' 촌장이자 자타 공인 김유정 전문가인 소설가 전상국은 다음과 같이 썼다.

 ‘봄·봄’. 얼마나 기발한 제목인가. 김유정은 ‘봄과 봄’ 사이에 가운뎃점(·)을 찍으면서 독자들이 이것을 어떤 의미로 해석할까, 그 생각을 하며 혼자 낄낄 웃었을 것이다. 문학 작품의 모든 문자나 기호는 독자들이 나름의 의미를 줌으로써 살아나 존재하는 것이니까. 김유정 소설을 연구하는 어떤 학자는 그 가운뎃점을 하늘 땅 사람(· ㅡ ㅣ)의 하늘, 즉 우주 섭리로 보아 ‘봄은 다시 온다’는 뜻으로, 어떤 대학생은 소설 내용으로 보아 두 남녀 사랑이 팽팽하다고, 그 점을 ‘사랑의 대등점’이라고 보았다. 중학생 하나는 ‘봄·봄’의 가운뎃점을 ‘점순이 점’이라고 했다. 얼굴에 점이 있으니까 이름을 점순이라고 붙였다는 것. 아하! 읽는 사람마다 달라질 그 가운뎃점의 의미 찾기, 김유정의 소설을 읽는 또 다른 재미가 될 터이다. 

 주인공이나 장인만이 아니라 이 작품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의 모습이 또한 해학적이다. 점잖은 척하며 제비 꼬랑지 같은 수염을 쓰다듬는 버릇에, 이야기를 들으면서 코를 후벼 퉁기는 모습 등은 얼마나 우스운가. 게다가 이랬다저랬다 영 줏대가 없다. 점순이도 이 작품에 재미를 더해 주는 인물이다. 앙큼하기도 하고, 귀엽기도 하다, 점순이의 속살거림이 없었다면, 장인과 나의 갈등도 그냥 속으로 끝나거나 투덕투덕 다투는 정도로 끝났을 것이다. 그러나 주인공은 점순이의 말에 용기를 얻어 장인 바짓가랑이를 잡고 늘어졌던 게 아닌가.

 이 작품은 구성 또한 재미있다. 맨 마지막에 결말 부분이 나오는 게 아니라 장인과 나의 다툼이 극적인 상황에 달했을 때 결말 부분을 미리 이야기해 준다.

 

   

 

 출처를 밝히지는 않겠지만 어느 책에서인가 이 소설에 관한 다음과 같은 해설을 읽은 적이 있다.

 이 작품의 갈등 요인은 점순이며, ‘장인과 의 관계는 일면 일제와 망국인’ 또는 착취와 피착취’ 계급 사이의 대립과 투쟁을 상징적으로 그린 것이라고도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이런 해석이 가능하다면, ‘점순은 본질적인 소망이며주제는 광복을 향한 정신적 저항이다.

 실소를 금할 수 없다. 그런 해괴한 논리를 누군가가 맞다고 우긴다면 할 말은 없지만 타당한 논리로 보기에는 굉장히 어색한 해설이다. 저 세상에서 작가 김유정이 포복절도할 듯하다. 분명한 사실은 위와 같은 해설은 입시용 소설 읽기가 가져온 폐단이 아닐까 한다.

 이 소설은 얼찐 성례를 시켜 줘야지유.”라는 말처럼 장가들고 싶은 데릴사위와 좀 더 부려먹고자 하는 장인 사이의 갈등을 줄거리로 하고 있는데 농촌을 배경으로 토속적이며, 해학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제목 봄 봄이 암시하듯 사춘기 남녀의 관심사인 결혼 문제가 갈등의 요인일 뿐이다.

 어떤 사람이 순진하고 어리숙할 때, 우리는 동정심을 느끼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웃음을 참을 수 없다. 이 소설의 주인공이 바로 그런 사람이다. 일을 실컷 부려먹다가 지쳐 떨어지면 그만이고, 끝까지 버티면 사위로 삼으려는 장인의 속셈을 이 소설을 읽는 사람은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소설의 주인공은 혼인을 시켜주지 않는 장인을 한편으로는 원망하면서도 장인이 달래는 대로 따라간다. 여기에서 우리는 웃음을 터뜨리게 된다. 그러나 그런 장인을 미워할 수도 없다. 장인 역시 순박한 시골 사람으로 말투나 행동이 재미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