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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고대 서사시 구지가(龜旨歌)

by 언덕에서 2018. 7. 17.

 

 

 

 

 

고대 서사시 구지가(龜旨歌)

 

 

 거북아, 거북아 龜何龜何(구하구하)

 네 목을 내어라. 首其現也(수기현야)

 네 목을 내잖으면 若不現也(약불현야)

 구어서 먹으리. 燔灼而喫也(번작이끽야)

 

 이 노래는 <삼국유사> 권2 ‘가락국기’에 실린 가락국의 시조인 수로왕의 탄생 의식에서 불리어진 주술적 집단 무요로서, 우리 시가 문학의 가장 원초적인 모습을 지니고 있는 원시민요다. 비록, 한역이어서 완전한 모습은 볼 수 없으나 향가의 4구체와 유사한 형식의 노래이다.

 가락국 시조인 수로왕의 강림신화 중의 삽입 가요로, 이와 유사한 노래로 신라 성덕왕 때의 <해가(海歌)>가 있다. 이 두 노래를 비교 검토해 보면, <구지가>는 원시주술적 집단가요인 것이 분명해진다. 이 노래의 기록상의 연대로 보면, <황조가>보다 후대의 것이지만, 작품의 성격으로 볼 때는 서정시보다 훨씬 이전의 집단적 원시가요에 속한다. 신의 강림을 소망하는 주술적 노래로서 우리 민족의 원초적 삶의 모습과 문학 생성기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명령과 위협으로 형성되는 구지가의 주술 구조는 당시 폭넓게 사용된 형식으로 보인다. 고구려를 세운 동명왕이 즉위 2년에 비류국과 세력 다툼을 하는 과정에서 흰 사슴을 잡아 거꾸로 매달고 홍수를 내려서 비류국의 항복을 받고자 행한 기우주술(祈雨呪術)가에서도 유사한 형태를 확인할 수 있다.

 

 (가정) 하늘이 만약 비를 내려서 비류 왕도를 표몰시키지 않으면

 (위협) 내 진실로 너를 놓아주지 않으리니, 이 어려움을 벗어나고 싶거든

 (명령) 너 능히 하늘에 호소하라. (이규보, ‘동명왕편’)

 

 주몽이 홍수로서 비류국을 항복받고자 사슴에게 비를 내리도록 명령하고 위협했던 주술의 내용과 구지가에서 대신들이 새 왕국을 세우고자 거북에게 왕을 보내도록 명령하고 위협하는 주술의 내용은 그 구조가 같다. 바다용이 앗아간 수로부인을 되찾기 위한 주술 목적에서 부른 <해가> 역시 이 주술 구조를 적용하여 실현시킨다.

 

허왕후신행길축제의 홍보대사인 배우 박규남(30&middot;왼쪽)과 인도 여성 안젤리 싱(31). 김해문화의전당 제공

 

 구지가의 배경설화는 다음과 같다.

 후한 세조 광무제 건무18년 임인(AD - 42년) 3월 계욕일에 마을 북쪽에 있는 구지봉에서 무엇을 부르는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마을 사람 2, 3백명이 그곳에 모여들었다. 형체는 보이지 않고 사람의 소리만 나는데, 말하기를,

 "이곳에 사람이 있는가, 없는가?"

하였다. 구간(九干)들이,

 "우리들이 여기 있습니다."

하였다. 그러자 또 이르기를,

 "내가 온 곳이 어디냐?"

 "구지봉입니다."

 "하느님께서 나에게 명하시기를 이곳을 다스려 새 나라를 세우라 하셨기로 나는 너희들의 임금이 되어 내려갈 것이니, 너희들은 구지봉 봉우리 흙을 파면서 노래를 부르며 춤 을 추면 이제 곧 너희들의 대왕을 맞는 일이 될 것이니, 기뻐하고 뛰놀아라."

 구간들이 그 말과 같이 노래하며 춤추었다. 얼마 후 보랏빛 줄이 하늘에서 내려와 땅에 닿았다. 줄 끝에는 붉은 보에 금함이 싸여 있었다. 열어 보니 해처럼 둥근 6개의 황금알이 있었다. 그날 밤을 지나, 이튿날 새벽에 함을 여니 여섯 동자가 나타났다. 그들은 나날이 자라 10여 일이 지나자 키가 9척이나 되었다. 이는 은나라의 천을과 같고, 그 얼굴이 용의 얼굴과 같았음은 한나라의 고조와 같고, 눈썹의 팔채(八彩)는 당고와 같고, 눈의 동자가 둘씩 있음은 우순과 같았다. 그 달 보름날에 즉위하였는데 처음으로 나타났다 하여 이름을 수로(首露)라 하고 나라를 대가락(大駕洛) 또는 가야국이라 불렀으니, 곧 여섯 가야의 하나요 나머지 다섯 사람도 각각 다섯 가야의 주인이 되었다.

 


 

 

 <구지가>의 내용은 일견해서 동요와 다를 바 없다. 구간(九干)을 포함한 수백 명의 군중이 구지봉 산 꼭대기에 모여 임금을 맞기 위해 흙을 파헤치며 목청껏 불렀다고 여겨진다. 그 우렁찬 대합창이 메아리쳐 울렸을 것을 생각해 보면 고대인들의 집단 가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짐작이 간다. 신화 속의 이야기이지만 당시의 사람들은 이와 같이 군중의 합창에는 주술력이 있다고 믿었고, 과연 하늘로부터 임금을 맞았다.

  이 노래에서 '거북'을 내세운 것은 무슨 뜻인지 학자에 따라 그 설이 분분하다. 대체로는 신령스러운 존재로 보고 있다. '거북'과 '용'은 설화에서 혼용되었고, 또 고대 민족은 이를 원시적 신성 관념의 타부(taboo)로 믿었으리라. 따라서, 이 노래는 그대로 영신군가로서의 주술요이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의 흙을 파면서 불렀다는 점을 주목해 본다면 그것은 노동의 괴로움을 덜고자 하는 생각에서 나온 것일 것이므로 노동요의 성격도 지닌다.

  이 노래의 아류로 '해가(海歌)'가 있다. '구지가'를 신군(神君)맞이의 주술요라 한다면 '해가'는 재액 극복의 주술요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내용이나 대상은 다르다 하더라도 결국 소원을 빌어 성취했다는 점과 집단 가무였다는 점에서는 서로 일치한다.

 

龜乎龜乎出水路(구호구호출수로) 거북아, 거북아 수로를 내놓아라.

掠人婦女罪何極(약인부녀죄하극) 남의 아내 앗은 죄 그 얼마나 큰가?

汝若悖逆不出獻(여약패역불출현) 네 만약 어기고 바치지 않으면,

入網捕掠燔之喫(입망포략번지끽) 그물로 잡아서 구워 먹으리라. (‘삼국유사’ 권2. 가락국기)

 

 

 


 

 '구지가'는 향가의 4구체와 비슷한 형식을 가진 노래로 수로왕의 강탄 의식에서 불리어진 주술적인 집단 무요이다. 

 ① 다산에 대한 원시인들의 기원을 표현한 노래라는 견해가 있는데 거북의 머리는 외형적으로 남근과 유사하므로 이 노래는 남근 숭배의 상징적 의미를 지닌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즉 다산을 기원하는 신화적 의미를 가진다. 한편 거북은 여신이며, '거북'의 머리는 남근을 상징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최래옥 교수) 

 이렇게 보면 '거북'은 여성과 남성을 동시에 가진 양성구유의 존재로서, 그 자체가 남성과 여성의 합체를 통한 생산력의 상징이 된다. 이 해석은 '거북'이 구지봉의 산신이라는 해석과도 상통하는데, 대체로 한국 고대의 산신은 여신이었기 때문이다. 덧붙여 원시인들의 강렬한 성욕을 표현한 노래로 보는 견해도 있다. (정병욱 교수)

 

 ② 영신제의 절차 중에서 가장 중추가 되는 희생무용에서 가창된 노래라는 견해가 있는데 영신제의 절차 중에서 가장 중추가 되는 희생 무용에서 가창된 노래라는 견해로 '거북'은 특별한 제의에서 제단에 바쳐지던 희생 동물의 이름을 따서 제의 공간의 이름을 지은 사례가 있는데, 구지봉이라는 지명이 바로 이러한 해석의 근거가 된다. (김열규 교수)

 

 ③ 산신 제의에서 가창된 노래라는 견해가 있는데 이 노래의 공간적 배경은 구지봉이라는 신성한 지역이며 구지봉이라는 이름이 곧 거북을 나타낸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 노래의 거북은 구지봉의 산신을 의미하는 것일 가능성이 있다. 즉, 구지봉의 산신을 거북이라는 구체적이고 신령스러운 동물로 나타낸다. 혹은 이와 달리, 이 노래의 가창 집단이 거북을 토템으로 하는 족속이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이 경우, '구지가'는 자신들의 토템인 거북을 죽여서 먹음으로써 신령스러운 토템인 거북과 자기 집단 사이의 일체감을 형성하려는 집단의 제의에서 가창되던 노래로 볼 수 있다.

 

 ④ 거북 점을 칠 때 부른 노래라는 견해로 거북을 불에 구워 먹겠다고 위협한 것은 실제로 그렇게 하겠다는 뜻이 아니라, 점복 의식과 관련된 상징적 표현이라 볼 수 있다. 오랜 옛날에는 거복의 등껍질을 불에 구울 때 그것이 갈라지는 모양을 통해 점을 치던 습속이 있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노래는 거북등껍질을 이용한 점복 의식에서 새로운 우두머리의 출현을 예언하는 내용으로 이해할 수 있다. 중국의 임명덕 등이 있다. 잡귀를 쫓는 주문으로 보는 견해 (박지홍 교수)인데, 700여년 후 성덕왕 때 불러졌다는, 내용 및 주제가 같은 '해가'와 연결시켜 볼 때 원시 주술적 집단 무요<무요(舞謠)>로 봄이 유력하다.

 

 ⑤ ‘거북’은 김수로왕이며, 그는 1세기 무렵 철기문화를 갖고 온 인도인이다. 이런 해석에 따르면 구지가의 앞부분은 이런 내용이 된다. “왕이시여, 왕이시여, 어서 나와 주소서.”(이상돈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