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직 신소설 『혈(血)의 누(淚)』
1906년 [만세보]에 연재한 이인직1 최초의 장편소설로서, 우리 문학 사상 최초의 신소설2로 평가되고 있다. 1907년에 약간 개작하여 단행본으로 간행되었다. 이 작품의 후편은 작품 말미에 "아래 권은 그 여학생이 고국에 돌아온 후를 기다리오"라고 예고된 후, 1913년 2월부터 6월까지 <모란봉>이라는 이름으로 [매일신보]에 65회에 걸쳐 연재되었으며, 아래 권이라고 그가 칭한 작품이 그의 최후의 작품이다.
상편은 1906년 7월 22일부터 같은 해 10월 10일까지 50회에 걸쳐 [만세보]에 장편소설로 연재되었고, 하편에 해당하는 『모란봉』은 1913년 [매일신보]에 연재되다가 미완성으로 끝나, 전편이 그대로 출간된 바는 없다. 단행본으로 처음 발간된 것은 1907년 3월에 광학서포에서 발행한 『혈의 누』이지만, [만세보] 연재분과 내용에 있어 약간의 차이를 보인다. 그 뒤 1912년 12월에 동양서원에서 <모란봉>이라는 제목의 정정본이 출간되었다.
이 작품은 청일전쟁 때 평양 모란봉의 참상을 시발점으로 하여, 그 뒤 10년간의 긴 세월이 지나는 동안 한국ㆍ일본 및 미국을 무대로 옥련 일가의 기구한 운명의 변화에 얽힌 개화기의 시대상을 그렸는데, 자주독립ㆍ신교육사상ㆍ자유결혼관 등이 그 주제로 다루어져 있다. 이 작품의 출현을 계기로 우리나라 소설의 형식과 내용에 있어서 다소나마 고대소설의 격식에서 벗어나 근대소설 영역에 다가갈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고대소설의 문체를 탈피하지 못한 부분이 대부분이고, 구성이나 이야기의 전개 방법이 미숙한 점 등이 초기 신소설의 공통된 취약점이 엿보이기도 한다.
이 작품은 김관일의 부인 최씨가 딸 옥련을 찾아 돌아다니며 허둥대는 모습을 보이는 데에서 시작된다. 상편이 주인공 옥련의 7세∼17세까지의 행적을 다룬 데 비하여 하편은 그 이후의 인생사를 그렸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청일전쟁 직후 옥련의 집에는 불행이 닥친다. 난리통에 잃어버린 딸과 남편을 찾아다니던 옥련 어머니는 두 사람을 끝내 찾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온다. 보름을 기다려도 두 사람이 돌아오지 않자 유서를 써 놓고는 대동강에 투신하여 자살하려 한다. 그런데 마침 빠진 곳이 얕은 곳이라 뱃사공에게 발견되어 죽음을 면한다. 한편, 남편 김관일은 부인이 일본 보초병에게 조사받으러 나간 동안 집에서 머물다가 장인집에 들러 미국 유학을 떠난다.
일곱 살 된 옥련은 모란봉에서 방황하다 왼쪽다리에 포탄을 맞아 신음하다가 적십자 간호부에게 발견되어 병원에 실려 간다. 여기서 만난 일본인 군의(軍醫) 이노우에 소좌는 옥련을 불쌍히 여겨 일본에 있는 그의 집에서 키우도록 한다. 거기에서 일본말도 배우고 학교에도 다니던 옥련은 이노우에가 전쟁으로 사망하자 이노우에 부인의 구박을 받으며 고통스럽게 살아간다.
몇 번이나 자살을 시도하다가 어느 날 가진 돈을 죄다 털어 동경으로 가는 열차를 탄다. 옥련은 거기에서 우연히 미국 유학을 가려고 하는 구완서를 만나게 되고, 구완서는 옥련이 재주 있고 불쌍한 아이라 여겨 같이 미국 유학을 가게 된다. 미국에서 5년을 지낸 뒤 옥련은 고등소학교를 우등으로 졸업하고, 그것이 신문에 알려져 아버지를 만나게 된다. 구완서와 옥련은 약혼하고, 고국에 돌아가 고국을 문명한 나라로 만들자고 약속한다.
외롭게 살아가던 옥련의 어머니는 지내온 사연을 적은 옥련의 편지를 받고 기뻐한다.
이 소설 『혈의 누』는 1894년의 청일전쟁3을 배경으로 하면서 10년 동안이란 시간의 경과 속에서 한국, 일본, 미국을 무대로 7세의 소녀 여주인공 옥련의 기구한 운명 전반에 얽힌 개화기의 시대상을 그리고 있다.
신교육, 여권 신장 등을 바탕으로 하여 자유 결혼을 그 주제로 삼았고 혼인에 대한 기성도덕을 깨뜨린 새로운 모럴을 제기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형식과 내용면에서 고대소설의 틀에서 탈피하여 근대소설로서 문학사적 새로운 계기를 보인다.
우선, 이 소설은 그 문체가 묘사적이어서 고대소설이 설화체에 그치는 점과 대조를 이룬다. 또한 소재 채택과 사건 전개에 있어서 본질적 변화를 일으킨 새로운 작품이다. 고대소설은 예외 없이 그 소재 채택이 비현실적인 쪽에서 이루어졌다. 예를 들면 <구운몽>에서 양소유는 하남의 선비 집안에서 태어나는가 하면, <홍길동전>에서는 길동이 비를 부르고 바람을 일으키는 도술을 부린다. <심청전>이나 <장화홍련전>에서는 죽은 주인공이 비현실적으로 되살아난다. 이것은 고대소설이 우연성이 강한 사실을 다루고 있음을 보여 준다. 그러나 이 소설에서는 그 소재들이 대체로 우리 주변에서 만들어졌다. 이는 신소설이 고대소설보다는 근대소설 쪽에 한걸음 다가섰음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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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다른 측면에서 본다면, 이 소설에서 개화사상은 구체적으로 발견할 수 없고 다만 외적 국제 정세에 의해 초래된 가정 비극을 극단적 애조로 그렸다. 문체 또한 고대소설적 운문체이며 구성의 미숙이 엿보인다.
이인직은 최초의 산문 문장을 구사한 반면, 작품 속에 친일 의식과 반민족 의식이 농후하다는 평을 받기도 했다. 실제로 그는 매국노 이완용의 수족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고대소설의 설화체를 탈피한 서사와 묘사 중심의 서술 방식, 소재의 선택, 사건의 전개 등 장편소설로서의 본질적 변화 구도를 취한 것은 근대소설로서 문학사적 의의를 남기고 있다. 또 권선징악이 아닌, 개화와 수구의 대비를 통해 시대적 전환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러나 이 소설은 청국의 배척을 통한 친일의 편향성도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
- 호 국초(菊初)이며 경기 이천(利川)에서 출생하였다. 일본 도쿄[東京] 정치학교를 수학한 뒤 1906년에 『만세보(萬歲報)』 주필이 되면서 신소설 『혈(血)의 누(淚)』를 동지에 연재, 계속 많은 작품을 썼다. 1908년에는 극장 원각사(圓覺社)를 세워 자작 신소설 『은세계(銀世界)』를 상연하는 등 신극운동을 벌이기도 하였다. 국권피탈 때 이완용(李完用)을 돕고 다이쇼[大正] 일본왕 즉위식에 헌송문(獻頌文)을 바치는 등 철저한 친일행동을 하기도 했으나 한국에서 처음으로 산문성(散文性)이 짙은 언문일치의 문장으로 신소설을 개척한 공로는 크다. 『혈의 누』 외에 그의 대표작으로 알려진 『귀(鬼)의 성(聲)』, 그밖에 『치악산(雉岳山)』 『모란봉(牡丹峰)』 등이 있고, 단편으로 『빈선랑(貧鮮郞)의 일미인(日美人)』이 있다. 한국 최초의 신소설가로서 개화사상을 고취하고 갈등과 성격 묘사, 그리고 사실적 문장을 처음으로 구사하였다고 평가된다. [본문으로]
- 삽오경장(甲午更張) 이전의 소설. 즉 고대소설을 시대의식의 관점에서 구소설(舊小說)이라고 호칭하는 데 대하여. 그 이후의 서구적(西歐的)인 영향하에서 나온 소설을 일컫는 소설 양식의 문학사적(文學史的)인 술어(術語). 신소설의 특징은 고대소설이 동양적(東洋的)인 데 대하여 서구적(西歐的)이라는 것, 소설의 형식이 서구 근대소설의 영향하에 이루어지고, 문장이 언문일치(言文一致)에 접근한 문체를 썼다는 것, 주제(主題)를 비롯한 작품 내용이 개성의 존엄성(尊嚴性), 인간의 자유를 위시한 새로운 시대의식을 고취하였다는 점 등이다. 신소설의 작가로는 이인직(李人稙)ㆍ이해조(李海朝)ㆍ최찬식(崔瓚植)ㆍ안국선(安國善) 등을 들 수 잇으며, 대부분의 중요한 작품은 1906년부터 1916년까지의 10여 년간에 창작ㆍ발표되었다. [본문으로]
- 1894년 동학농민운동을 진압하기 위해 청군이 조선으로 진출하자 일본군도 텐진조약을 빌미로 군대를 파견한다. 하지만 치밀하게 준비해 온 일본에 의해 청일전쟁이 시작되지만, 육전과 해전에서 모두 청군이 패함으로써 조선에서 청의 영향력은 쇠퇴하게 된다. 또한 청일전쟁의 패배는 중체서용에 입각한 양무운동의 한계를 노출함으로써 캉유웨이를 중심으로 한 변법자강운동이 시작되는 계기가 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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