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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朋滿座

윤구병 에세이집 『가난하지만 행복하게』

by 언덕에서 2018. 2. 21.

 

 

 

 

윤구병 에세이집 『가난하지만 행복하게』

 

 

 

 

 

윤구병씨는 충북대에서 철학과 교수를 지내다 1995년 전북 부안으로 낙향해 농사를 지으면서 대안교육을 하는 ‘변산교육공동체’의 설립자다. 저자는 자신을 가꾸고 실천하는 체험과 경험을 현대인과 나누고자 이 책을 썼다. 윤구병씨는 2008년 모든 공직에서 물러났고, 자신의 명의로 된 모든 재산을 공공의 목적에 쓰이도록 사회에 환원했다. 현재는 변산공동체에 초가삼간을 짓고 그 속에서 자연인의 삶을 살고 있다.

 2008년 12월에 펴낸 이 책에서는 대학교수로 재직할 때부터 지금까지 그가 몸담은 곳곳에서 자연과 인간의 공존, 상생, 유기적 생명관이 끊임없이 드러난다. 그의 즐거운 생존운동은 변산공동체의 설립 목표나 운영 방식, 그가 기획한 일련의 어린이책들과 수필집 <잡초는 없다>에서도 확인된다. 농약도, 기계의 도움도 받지 않고 공동체 식구들이 농사를 짓던 초창기 시절의 체험과 생생한 경험, 대안교육을 고민하고 점점 물질적 부를 욕망하게 만드는 현대문명에 대한 비판 또한 고스란히 담겨 있다.

 

 

 

 

 

 『가난하지만 행복하게』는 윤구병의 삶, 특히 그의 삶의 전부나 마찬가지인 변산공동체와 그 이후의 10여 년에 대한 생생한 삶의 기록이다. 모든 공직에서 물러나고, 자신의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였으며, 함께 생활하던 변산공동체에 초가삼간을 지어 지내며 자연인의 삶을 살고있는 저자는 자신의 삶만으로도 오늘의 세상에 무언의 메세지를 웅변한다. 그 메세지는 바로 '가난하지만 행복하게' 여러 생명체가 함께 더불어 살자는 것이다.

 물질 중심의 가치관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개인과 국가간 빈부 격차의 확대, 갈등은 심화되고 우리의 삶의 질은 점차 피폐되었다. 도시 사회는 소유욕과 탐욕, 병적인 욕망으로 인간을 내몰았다. 누군가는 넘쳐나는 부를 주체하지 못하고, 누군가는 매일매일 생존의 문제와 씨름한다. 인간은 자연을 파괴했고, 그 자연은 다시 인간의 삶을 위협하고 있다. 이 같은 세상에서 저자의 화두가 '공존'과 '상생'인 것은 당연한 귀결일지도 모른다.

“되살려내야 합니다. 땅을 되살려내야 합니다. 땅을 되살려내야 하고, 우리의 인간성을 되살려내야 하고, 그러면서 공동체 사회에서 우리 모두가 공동의 울타리가 되어 먹을 때 같이 먹고 굶을 때 같이 굶자는 원리로 소유욕과 탐욕을 근절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희망이 없습니다.”

 물질에 대한 병적인 욕망이 인간을 헤치고 삶의 질은 점차 낮아지는 현재를 바꾸기 위해 그는 제안한다. ‘좀더 가난하게, 좀더 힘들게, 좀더 불편하게’ 살 것을. 이어 이 모든 일의 출발은 흙에서 새로운 생명을 일구는 데서 시작한다고 말한다. “땅을 되살려내야 합니다. 땅을 되살려내야 하고, 우리의 인간성을 되살려내야 하고, 그러면서 공동체 사회에서 우리 모두가 공동의 울타리가 되어 먹을 때 같이 먹고 굶을 때 같이 굶자는 원리로 소유욕과 탐욕을 근절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희망이 없습니다.”

 

 

 

 

 

 그의 이름은 윤구병이다. 1943년 전남 함평에서 태어난 그는 아홉 형제 중 막내다. 그의 첫째 형은 윤일병이고, 그의 여덟번째 형의 이름은 윤팔병이다. 부모님은 그렇게 이름을 지었다. 그러나 형제 중 6명은 6·25 전쟁 때 목숨을 잃었다. 상심한 아버지는 나머지 자식을 농부로 키우고 싶었다. 그게 목숨을 지키는 일이라 생각했다. 아버지의 뜻대로 그는 학교에 가지 않고 '소년 농부'로 유년을 보냈다. 친척의 제안으로 뒤늦게 학교에 들어간 그는 서울대 철학과에 들어가는 '괴력'을 보였다.   졸업 후에는 <뿌리 깊은 나무>초대 편집장을 지냈고, 충북대학교에서 철학교수로 학생들을 지도했다. 어린이를 위한 책 <개똥이 그림책>등을 기획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1996년 대학교수직을 버리고 전북 부안 변산면 운산리로 내려갔다. 농부가 된 그는 '변산공동체'를 일궜다. 최근에는 재단법인 민족의학연구원을 설립했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유기농식당 '문턱없는 밥집'을 서울 서교동에 열었다. 역시 가난한 기초생활수급자 자녀들만을 대상으로 한 무상교육 대안학교가 문을 열었다. 

 

 

 

 그는 젊은이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대학생 여러분들은 안정된 직장과 삶을 말했는데, 실제로 대학교수가 정말 안정적일까? 대도시 중산층의 삶, 그리고 지금의 세계체제가 정말 안정적일까? 실제로 지난 수십년간 인류는 지속가능한 미래를 믿고, 미래가 예측이 가능하다고 여겼다. (인류의 상황은) 지난 100년, 50년 사이에 상황이 급속도로 바뀌었다.

 수십만 년 동안 지구에는 쓰레기가 없었다. 생체에너지를 이용해서 살 길을 찾았기 때문이다. 생체에너지는 순환가능한 에너지이기 때문에 쓰레기가 없다. 사람 힘으로 안 되면 말이나 소·낙타를 이용했다. 그런데 200년 사이에 물질에너지인 화석연료를 이용하는 삶이 시작됐다. 도시의 삶은 90% 이상이 물질에너지에 의존한다. 그런데 물질에너지는 수렴에너지가 아니다. 석유·석탄 태우고, 우라늄 폭파시키는 파괴에너지다. 이것들이 하늘·수질·땅을 오염시킨다. 조상들이 준 맑은 하늘, 깨끗한 물과 땅을 지난 200년 동안 모두 더럽히면서 살아왔다.

 우리는 후손들에게 깨끗한 자연을 물려줄 생각이 없다. 우리 때 다 말아먹겠다는 결심인 것 같다. 이건 안 된다. 물질에너지의 안정적 공급은 환상이다. 국제관계와 고갈에 따라서 교란이 올 수 있다. 도시에 전력이 끊기면 일주일도 못 버틴다. 그러면 전부 흩어지게 된다. 누군가는 생체에너지를 이용하는 방법을 전수받고 익혀놔야 한다. 변산공동체가 그런 곳이다. 이런 곳이 자꾸 늘어나야 한다. 그래서 내가 택한 삶이 가장 안정적인 삶이다. 현대 교육 체계가 물질중심인데, 그것이 사회와 개인의 삶을 안정시키는 게 아니다. 실제로 많은 생명체는 생체보시를 하면서 어울려서 살 길을 찾는데, 인간은 자본주의 체제에서 다른 생명체와 함께 사는 길을 찾지 않았다. 물질에너지 공급이 끊기면 일주일도 견딜 수 없는 삶을 안정적인 것으로 보고, 다른 생명체와 상생할 수 있는 길이 없다고 하는데, 그건 아니다. 나는 훨씬 안정된 길을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