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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朋滿座

브르통 산문집 『걷기예찬』

by 언덕에서 2018. 1. 31.

 

 

브르통 산문집 『걷기예찬』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대학 사회학과 교수인 다비드 르 브르통1이 쓴 걷기 예찬에 관한 수필집이다. 브르통은 ‘몸’의 문제에 대해 깊은 관심을 바탕으로 <몸과 사회>, <몸과 현대성의 인류학>, <고통의 인류학>, <몸의 사회학> 등을 썼다. 2002년에 출간된 이 책 『걷기예찬』은 걷기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읽고 있는 스테디셀러이다.

 이 책은 걷기에 관한 수필집으로 철학적이고 진지하며 깊은 사색을 하게 만든다. 사회학전공 교수인 저자는 현대 사회에서 우리가 잃어가고 있는 것, 가져야 하는 것들을 '걷기'라는 수단을 통해 설득하고 있다. 걷기라는 행위가 의미하는 것이 넓고 또 다양함을 여러 각도에서 설명한다. 저자는 우리가 가까이서 흔히 보던 것들에 대한 시각을 넓히고 또 변화시킨다.

“걷는다는 것은 세계를 온전히 경험한다는 것이다. 기차나 자동차는 육체의 수동성과 세계를 멀리하는 길만 가르쳐 주지만, 그와 달리 걷기는 눈의 활동만을 부추기는 데 그치지 않는다. 우리는 목적 없이 그냥 걷는다. 지나가는 시간을 음미하고 존재를 에돌아가서 길의 종착점에 더 확실하게 이르기 위하여 걷는다. 전에 알지 못했던 장소들과 얼굴들을 발견하고 몸을 통해서 무궁무진한 감각과 관능의 세계에 대한 지식을 확대하기 위하여 걷는다.” -  본문 32쪽

 

 

 저자 브르통에게 걷기는 자기 몸의 감각을 깨우고 단련시키는 “능동적 형식의 명상”이다. 기차나 자동차 또는 엘리베이터나 에스컬레이터에 의지하여 수동적으로 존재하던 몸이 스스로의 동력으로 움직이기 시작할 때 비로소 “세계를 온전히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걸으면서 자신의 몸에서 일어나는 고유한 리듬을 발견하게 된다. 걸음으로 몸의 상태를 살필 수도 있다. 몸이 건강하면 발걸음도 가볍고 경쾌하다. 걸을 때 비틀거리거나 몸을 가누지 못하면 몸에 이상이 왔다는 증거다. 걷다보면 낯선 사람, 집들, 골목길들을 발견하고 불어오는 바람, 들려오는 소리들을 감각할 수 있다. 그리하여 우리가 알지 못했던 세계를 경험하게 된다. 발끝부터 전해지는 미세한 떨림 하나하나에 귀를 기울이며 온몸으로 세계와 마주하는 행위가 바로 걷기다.

 이 책, <걷기예찬>은 제어장치 없이 돌아가고 있는 현대사회의 속도에 제동을 걸고, 몸의 의미를 본래대로 되돌려놓음을 이야기한다. 저자는 걷기를 '생명의 예찬인 동시에 깊은 인식의 예찬'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초고속광통신이란 신조어를 만들어낸 현대사회 속에서 몸이란 그러한 장치들을 보조하는 수단, 혹은 군더더기로 전락하고 있다. 누군가 사방을 두리번거리면서 대낮의 도심 속을 느긋하게 걸어간다면 그는 할일 없는 사람, 팔자 좋은 사람이라고 오해받기 십상이다. 그러나 '걷기'만큼 삶의 불안과 고민을 해소하고 정신적으로 평온함을 주는 대체물도 없다. 한걸음씩 내딛는 순간에 느껴지는 몸의 육체적인 감각을 통해서 정신은 더 넓은 세계로 걸어 나간다.  

 '발로, 다리로, 몸으로 걸으면서 인간은 자신의 실존에 대한 행복한 감정을 되찾는다'로 시작되고 있는 이 책의 서두는 걷기에 대한 저자의 철학을 잘 집약하고 있다. ‘걷는다’는 것은 몸으로 걷는다는 것을 뜻한다. 몸은 정신과 합일된 몸을 지칭하고 있다. 때문에 행간에 문득문득 보여주고 있는 그의 동양적인 존재론이 낯설지 않다. 영혼의 구원에 가까운 길 떠남을 저자는 다음처럼 적고 있다.

 '길은 구체적인 걷기 체험을 통해서, 때로는 그 혹독한 고통을 통해서, 근원적인 것의 중요함을 일깨움으로써, 인간으로 하여금 고통스런 개인적 역사와 인연을 끊어버리고 쳇바퀴 도는 것 같은 일상의 길에서 멀리 떨어진 내면의 지름길을 열도록 해준다.'  

 생활 터전이 도시화될수록 개인과 그의 몸은 소외된다. 문을 열고 거리로 나서면  끊임없이 밀리는 자동차와 사람들, 그리고 온갖 통제할 수 없는 소음을 만나게 된다. 대개의 경우, 걷기란 일에 필요한 약속시간을 맞추기 위한 걷기, 즉 노동의 연장선이다. 걷다가 지쳐도 마땅히 앉을 곳이 없는 비인간적인 길이 대부분이다. 조용하게 자기만의 시간을 가지고 길을 나서는 행위는 이상한 사람이 하는 행동처럼 치부되고야 말았다. 저자에 의하면 걷기란 '미친 듯한 리듬을 타고 돌아가는' 현대성에 대한 도전이며, 개인적 존재의 확인인 동시에 '승리'의 보증이다.

 저자는 '몸'과 '걷기'의 중요성과 행복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걷기의 즐거움 못지않게 읽기의 즐거움에도 감각적인 관심을 보이고 있다. 깊은 인식이 배어있는 행간,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고 초대하고 있는 다양한 문장은 예사로운 에세이를 넘어 철학서로 인식하게 만든다. 이 책을 읽으면서 장 자크 루소, 피에르 상소, 랭보, 패트릭 리 퍼모, 스티븐슨, 그리고 일본 하이쿠의 대가 바쇼 등, 훌륭한 여행가들을 만날 수 있다. 

 

 

 

 

 저자는 뿌리가 없는 두 발은 걸으라고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리는 걷을 수 있는 타고난 능력 대신 자동차를 소비할 능력을 키우라고 강요받는다. 운송수단의 발전으로 인간이 걷던 길은 도로로, 걸음걸음이 만들어내던 자기 속도는 바퀴의 비인간적인 속도로 대체되었다. 이동하는 데 시간이 단축된 것만큼 빠른 속도에 생활리듬이 강제적으로 맞춰지고 있는 것이다. 걷기는 그런 식의 삶에 대한 저항을 의미한다. 소비하는 대신 움직여라! 우리가 매일 명심해야할 내용이기도 하다.

 

  1. David Le Breton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대학 사회학과 교수이다. ‘몸’의 문제에 대해 깊은 관심을 바탕으로 《몸과 사회》, 《몸과 현대성의 인류학》, 《고통의 인류학》, 《몸의 사회학》 등을 썼다. 2002년에 출간된 《걷기예찬》은 지금까지도 걷기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사랑을 받으며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았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