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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朋滿座

월터 J. 취제크 신부의 수기 『러시아에서 그분과 함께』

by 언덕에서 2017. 12. 27.

 

 

터 J. 취제크 신부의 수기 러시아에서 그분과 함께

 

 

 

 

미국인 예수회 사제 취제크 Walter J. Ciszek, 1904~1984) 신부가 소련 시베리아 수용소에서 23년간을 보낸 생활을 감동적이면서도 생생하게 묘사한 기록으로 1963년 출간되었다. 이 책은 소련의 수용시설에서 23년간 강제노동을 한 가톨릭 신부의 생생한 체험기다. 참담한 처지에서도 신을 의지하며 숨은 봉사와 노고를 아끼지 않았던 성직자의 삶을 볼 수 있다.

 1963년 10월 미국으로 돌아온 신부는 23년이라는 세월을 소련에서 지냈다. 그중 15년을 형무소와 시베리아의 강제 노동수용소에서 보냈다. 사람들은 신부에게 두 가지 질문을 했다.

 첫째, '소련에서의 생활이 어떠했습니까?' 하는 것과 둘째, '도대체 어떻게 해서 죽지 않고 살아남았습니까?'하는 내용이었다. 하도 많은 사람들이 동일한 내용을 질문하기에 책을 쓰기로 했다고 전한다.

 그는 시베리아의 광산과 강제수용소에서 자유세계로 돌아왔다. 머리는 백발이 되고 광산과 공장에서의 노동으로 손은 거칠 대로 거칠어졌다. 그의 정신은 꺾이지 않고 꿋꿋했으며, 생애를 바쳐 돌보아온 그곳의 신자들에 대한 애정과 자비심은 끝없고 뜨거웠다.

 이 책은 소설과 유사한 화제를 담고 있지만 논픽션이므로 그 낱낱 장면은 모두 사실에 입각한다. 저자는 스탈린 강권 통치 아래의 강제 노동수용소 진창구렁 속에서 돌아왔다. 모두 "어떻게 죽지 않고 살아남았습니까?"하고 묻게 마련이고, 그때마다 그는 "하느님의 섭리겠지요"하고 서슴없이 대답하는 문맥 속에서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해 신을 섬기면'이라는 성경의 진리를 확인할 수 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미국 국적인 저자 취제크 신부는 신학생 시절 예수회에 입회, 로마 유학 중에 무신론이 팽배한 소련 선교를 위한 바티칸 정책에 따라 1940년 일단 폴란드로 간다. 곧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해 그가 사목하는 곳이 나치 독일 점령지가 되기에 이르렀다. 그 와중에 본래 목표대로 소련에 잠입하는데 성공한다. 그는 신분을 속인 채 전쟁 물자의 보고라 할 수 있는 우랄산맥 지대 노동자 모집에 자원해 갔다.

 그는 이때부터 비밀경찰의 손아귀에 들어갔다. 우랄에서 1년여에 걸쳐 신앙의 불씨를 일구던 중 체포당해 모스크바 정치범형무소 루비안카에서 오랜 심문과 취조를 받았다. 이후 예정된 코스대로 시베리아 강제노동에 수용되는 신세가 됐다. 그곳은 북극에 가까운 혹독한 추위가 정신과 육체를 할퀴는 두딘카와 노릴스크였다. 루비안카라는 곳은 스탈린의 제거 대상이 된 볼셰비키의 혁혁한 노병들이 처형장 이슬로 사라져 간 곳이다. 그들은 온갖 회유와 고문을 견뎌내다 종래엔 굴복하여 반국가 스파이라는 죄목에 사인을 한 후 죽어갔다.

 노릴스크라는 곳은 형기를 마치고 풀려나는 게 기적이란 소문이 파다한 소련의 악명 높은 강제 노동수용소이다. 취제크 신부는 '바티칸 스파이'란 낙인이 찍혀 이런 험지에서 15년 형을 살았다. 그는 석방 후에도 이른바 '제한 자유인'으로 살다가 1963년 우여곡절 끝에 미국으로 귀환한다.

 

 

미국인 예수회 사제 취제크  Walter J. Ciszek, 1904~1984)  신부

 

 

 1937년에 시작되는 이야기는 믿기 어려울 만큼 극적인 사건으로 이어진다. 장래가 촉망되는 재기발랄한 젊은 사제가 폴란드를 거쳐 러시아에 잠입하는데 성공한 해가 1940년이다. 이후 취제크 신부는 1947년 1947년 소속 예수회에서 사망자 명단에 오르게 된다. 그를 위한 장례미사를 올린 동료 사제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진 이후 1963년 돌연히 그가 소련으로부터 귀환된다.

 지은이 월터 J. 취제크 신부는 1904년 미국 펜실베이니아에서 출생, 예수회 입회한 후 로마 그레고리안 대학에서 유학하였다. 1937년 로마에서 사제 서품을 받은 뒤 네스트로프 신부와 러시아에 잠입, 선교활동을 시작했다. 1941 비밀경찰에 의해 체포되어 15년의 강제노동을 선고받았다. 1944년에 부틸카 수용소 수감된 뒤로 1955년 형기를 마칠 때까지 강제노역에 동원되었다. 1963년 포로(간첩) 교환으로 미국에 귀환, 1984년 선종했다.

 취제크 신부는 극한 상황 가운데서도 신에 대한 신뢰를 잃지 않고 용기 있게 사제로서의 삶을 살아갔다. 그를 통해 진정한 신앙인의 삶이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 이 책은 이데올로기의 부산물로 인질이 된 한 성직자가 무려 23년 동안이나 포로 생활을 하면서도 의지를 잃지 않고 고난을 헤쳐 나가는 장면들이 감동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참담한 처지에서도 신을 의지하며 숨은 봉사와 노고를 아끼지 않았던 신부의 삶은 감동적이다.   

 

 

 소련이 '철의 장막' 시절 보여준 이러한 행형 제도는 서방세계에서는 상상할 수조차 없었다. 도스토예프스키에 의해 제정러시아 시대 시베리아 유형지 실상이 장편 <죽음의 집의 기록>을 통해서, 그리고 소비에트 치하에선 솔제니친의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와 <수용소 군도>에 의해서 그곳의 반인륜적이며 잔혹한 노동 실태가 만천하에 알려지게 됐다.

 이 책의 전편에 흐르고 있는 것은 편견이나 군더더기가 없는 문장과 힘찬 메시지 그리고 읽는 이의 마음을 사로잡는 진정성이다. 기차간에서 호송장교가 떨어뜨려 의자 밑으로 굴러들어간 빵조각을 호송병 몰래 삼키는 장면에서 그것은 심화된다. 비루함도 한낱 인간적 슬픔으로 바뀌어 순연한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철의 장막 뒤에서 취제크 신부가 겪은 놀라운 소설 같은 23년간의 체험을 읽으면서 감동에 휩싸이게 된다. 참담한 처지에서 묵묵히 수행되는 굳건하고 겸허한 봉사와 숨은 노고로 점철된 삶과 세월의 의미에 놀라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