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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소설

조정래 단편소설 『유형의 땅』

by 언덕에서 2018. 5. 9.

 

 

 

 

조정래 단편소설 유형의 땅

 

 

 

조정래(趙廷來.1943∼ )의 단편소설로 1981년 제27회 [현대문학상] 수상작품이다. 분단의 상처를 입은 하층민의 처절한 삶을 다룬 이 작품은 복수의 역사 속에 휘말린 한 남자 이야기로 조정래의 대표적 단편소설이다. 신분제도와 이념적 대립 속에 갇혀 복수로서 탈출을 꿈꾸는 주인공 만석과 그를 통해 드러나는 사회의 뒤틀림, 그 뒤틀림 속에서 소멸되어 가는 인간의 존엄성을 냉정한 시선으로 그렸다. 이 작품을 통해 복수라는 이름 아래에서 무의미해져 버린 인간존중사상을 발견할 수 있다.

 또한 이 작품은 작가 조정래가 줄기차게 추구해 온, 국토의 분단이 빚은 민족의 비극을 소설로 형상화했다. '유형의 땅'이라는 제목이 암시하듯 분단된 이 땅에서 벌어진 비극상은 바로 유형의 고장 그 자체다. 특히 여기서 '땅'의 상징성은 민족과 국토의 분단으로 인한 한 인간의 원초적 생존을 지탱해주는 영원성과 모태성 그리고 동질성 회복을 의도적으로 표현한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최씨 문중의 대대로 내려오는 머슴의 아들로 태어난 만석은 비정한 주인집에 대해서 언젠가는 복수를 하겠다는 한을 품고 성장한다. 그러던 어느 날 억지를 쓰는 최 씨네 아들을 보다 못해 때리게 된다. 이 일로 아버지는 초주검이 되도록 맞고 얼마 안 되는 소작지까지 빼앗기게 된다. 청년이 된 그는 양반 지주에 대한 증오를 불태우며 기회를 노린다.

 6ㆍ25전쟁을 맞은 그는 고향마을의 인민위원회 부위원장이 되어 지주들의 처형에 손수 앞장선다. 최씨 문중을 비롯한 양반 지주들에게 죽창을 들고 설쳐대며 피바다를 만들며 어릴 때 상놈으로 겪은 울분을 토해낸다. 그러던 중 만석은 여맹에 가입해 일하던 그의 아내 점례가 인민군 대장과 부정한 관계를 맺는 현장을 우연히 목격하고는 그 자리에서 이들을 죽이고 고향을 떠난다. 이 때문에 만석의 부모와 그의 세 살 난 아들이 인민군에게 죽음을 당한다.

 전국을 떠돌며 막노동꾼으로 일하던 만석은 우연히 알게 된 순임과 결혼하여 한 많은 자신의 과거를 청산하고 아파트 관리실의 잡역부로 자리를 잡는다. 이들 사이에 태어난 아들 철수를 유일한 낙으로 여기며 생활한다. 그러나 잠시 뿐, 아파트 관리비 절감계획으로 실직당한 그는 쉰세 살의 나이지만 어린 아들을 위해 다시 공사판에 뛰어들어 열흘 치씩의 일당을 모아 아내에게 보낸다. 이러한 만석을 두고 젊은 아내 순임이 방세까지 빼내어 젊은 남자와 눈이 맞아 도망을 친다.

 늙고 지친 그는 아들을 데리고 아내를 찾아 나서지만, 실패하고 병이 든다. 아들을 고아원에 맡기고 자신은 30년 만에 고향을 찾아간다. 고향은 그를 용서해주지 않았고 그는 반쯤 남은 정종병과 헐어빠진 가방을 안고 다리 아래서 죽는다. 죽은 뒤에도 그의 시체는 아무도 돌보아 줄 사람이 없다.

 

 

 

 

 한국 전쟁은 아직도 풀리지 않는 한으로 남았다. 아픔을 안고 사는 자들은 여전히 살아서 고통을 받고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그것을 지나간 일쯤으로 여기고 잊어버리고자 한다. 작품 속에서 젊은 사내의 시각을 통하여 작가는 현대인의 한국 전쟁에 대한 시각을 날카롭게 꼬집는다. 그 사내는 죽은 사람이 어젯밤 자신과 대화를 나눈 노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만석의 시신을 모른 체한다. 이유는 성가시기 때문이다. 이처럼 우리는 지난날의 아픔을 들추어내고 그것의 치유를 위해 무언가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성가신 일로 여겨 덮어두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다. 경찰이 적당히 조서를 꾸미고 만석의 시체를 거적으로 덮어 버리듯, 지난 역사를 지금의 편의대로 묻어 버린다.

 6ㆍ25전쟁과 그 후의 사회 현실을 배경으로 전지적 작가 시점에서 쓰인 이 소설은 조정래가 쓴 대부분의 소설처럼 분단의 상처가 가져다 준 인간 현실의 고통스런 단면을 그린다. 특히 하층계급으로 내려갈수록 이데올로기의 대립으로 인한 분단의 상처와 질곡이 더욱 심했음을 알려준다. 이 작품은 ‘태백산맥’ 이라는 대하소설의 토대가 되는 작품이다. 한국 전쟁을 소재로 하고 있으면서도 전쟁을 바라보는 시각과 태도에 특징이 있다. 이 작품에서의 한국전쟁은, 그 이전의 신분적 격차가 전제되어 있는 상황에서 의미를 던진다.

 

 

 

 전쟁은 만석에게 대를 이어 온 불평등을 해소할 수 있는 화풀이의 마당이 된다. 그는 최씨 문중의 씨를 말리기 위해 혈안이 된다. 만석의 아버지는 한풀이는 또 다른 한을 맺게 하여 끝없이 되풀이되는 증오만을 남기게 된다는 것을 알고 만류하지만, 만석은 곧이 듣지 않는다.

 작가는 한국전쟁이 봉건적 질서를 무너뜨리는 하나의 의미라는 점을 강조한다. 즉, 주인공 만석의 입장에서 전쟁은, 정치 이념의 대결장이 아니라 계급적 불평등에 대한 역전의 기회로 삼을 수 있는 사건이었다. 그래서 전쟁이 나자, 만석은 양반 후예의 그늘에서 천대받고 살았던 것에 대한 증오심을 마음껏 발산하게 되지만, 그것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죄악이었다.

 여기서 ‘땅’이라는 상징적 제명은 바로 민족과 국토의 분단으로 인한 한 인간의 삶의 파탄을 그려낸다. 동시에 인간의 원초적 생존을 지탱해 주는 영원성과 모태성, 동질성 회복을 위한 의도적 표현이다. 따라서 이 작품은 분단 역사의 비극을 그리면서, 시대 변화로 삶이 파멸하는 주인공 만석을 통하여 생존 욕구와 우리 사회의 분단 현실에 대한 원인을 파헤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