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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朋滿座

용서해라, 그래야만 행복해진다 『용서』

by 언덕에서 2017. 12. 20.

 

용서해라, 그래야만 행복해진다 『용서』

 

 

 

 

 

달라이 라마와 30년 동안 절친한 친구로 지내온 중국계 캐나다인 학자가 달라이 라마와 나누는 용서에 대화를 기록한 책으로 2004년 발간되었다. 이 책의 저자인 챈은 30년 넘게 달라이 라마와 함께 세계전역을 여행하면서 둘만의 명상 시간과 세계지도자들과의 만남을 가졌다.

 저자는 달라이 라마가 가진 자비심의 한계가 어디까지인가를 매우 특별하게 관찰했다. 위대한 영적 지도자의 감동적인 모습을 격식 없이 그려내었다. 1950년 중국이 티베트를 강제 점령한 이래 티베트인들은 중국 정부에 의해서 대량살상을 당했다. 명분은  '정신 개혁'과 '문명화'라는 명분이었다. 그 결과, 동양의 심원한 사상을 간직한 티베트의 사원과 경전은 불탔다.

 중국인의 경멸과 감시 속에 힘든 삶을 이어나가는 티베트인들은 순박하면서도 따뜻하게 포용하려는 '용서'의 철학이 밑바탕을 이루고 있다. '용서'는 달라이 라마가 40년 넘게 벌이는 평화 운동의 일환이다. 이 책은 비폭력 평화 운동을 중심으로 저자인 중국인 학자 빅챈이 어떻게 적국 출신인 달라이 라마와 깊은 우정을 맺을 수 있었는지를 서술한다. 아울러 달라이 라마가 가지고 있는 용서의 지혜란 무엇인지를 생생한 일화와 대화, 관찰을 통해 이야기하고 있다.

 지난 2008년 베이징올림픽이 진행되기 전 성화 봉송 때 주목을 받았던 것이 티베트이었고 그 중심에 달라이 라마 14세(이하 달라이 라마로 칭함)가 있었다. 1959년부터 티베트의 많은 사람들이 중국인들에 의해서 죽어갔다. 유구한 역사를 이어온 티베트는 중국의 속국이 아닌 독립국임을 세계를 향해 외쳐왔다. 그들의 외침은 폭력과 침략의 속성에 대해 생각해보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중국 공산당 정권에 의해 티벳 라샤의 포탈라 궁에 중국기가 휘날렸다. 중국 정부는 티베트 영토에 중국의 한족을 이주시키고 티베트의 국민을 마구 죽여 버리는 만행을 저질렀다. 그것도 모자라 티베트족의 자녀가 두 명 이상이 되었을 때 더 이상 아이를 못 갖게 하기 위해서 불임수술까지 강제로 시켰다. 또한 티베트의 우라늄을 중국으로 들여와 핵 실험을 하고 핵폐기물을 다시 티베트에 버리는 일을 서슴지 않았다. 그러한 중국을 보면 도대체 그들이 약소국가를 대하는 만행의 기준이 무엇인지가 궁금해진다. 그들은 서양의 제국주의 때문에 청나라가 망했고 일본에게도 제국주의로 인한 침략을 당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00년 이상 티베트를 침략하고 있는 그들의 이중적인 행태는 분노를 자아낸다.

 

 

 

 

 

모택동의 티베트 지배는 제국주의의 패턴을 못 벗어난 데다 민족과 언어, 종교가 다른 유목민을 집단농장에 정착시키는 등 원천적 생존 구조마저 바꾸려 했다. 이에 수도 라사에서 무장봉기가 일어났고 '살아있는 '부처'로' 국가를 다스려 온 달라이 라마 14세는 히말라야를 넘어 인도로 망명했다.

 “붉은 낫과 망치와 별이 티베트의 산림을 남벌하고 있다”는 것이 그의 제일성이었다. 티베트인 봉기 10년 동안 120만 명이 살해당하고 10만 명이 망명했으며 6,200개의 승원이 파괴됐다. 그때 달라이 라마는 말했다.

 “라마를 담은 그릇은 깨어져도 거기에 담긴 라마는 깨지지 않는다. 그릇은 물질이지만 라마는 정신이기 때문이다.”

 1959년 3월 ‘세계의 지붕’ 티베트의 수도 라사에서는 대규모 반중 무장 폭동이 일어났다. 1950년 2만 명의 중국 군대가 티베트를 무력으로 점령한 지 9년만의 일이었다.

 티베트는 오랫동안 외부 세계와 단절된 채 고립적인 독자 사회를 유지해 왔다. 18세기 이래 중국의 영향권에 들어있던 티베트는 신해혁명과 청 왕조의 붕괴 등으로 중국 대륙이 혼란에 빠져 있던 1912년 독립을 선포했다.

 그러나 중국의 국민당과 공산당 모두 이를 인정하지 않았으며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되자 곧 ‘서쪽 끝 영토’를 평정하기 위해 나섰다. 중국 군대의 주둔과 점증하는 한족 이주민으로 끓어오르던 티베트인들의 감정에 불을 붙인 것은 1959년 서쪽 잠무카슈미르에서 들려온 중국 군대의 잔인한 진압 소식이었다. 이 지역 일부 강제 점령했던 중국 군대는 현지인의 저항을 무자비하게 진압했다. 그러나 티베트인들을 더욱 격노하게- 만든 것은 점령자들이 달라이 라마를 체포하려 한다는 소문이었다.

 달라이 라마는 티베트 불교의 가장 큰 종파인 황모파 교주로 15세기 이래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이자 실질적인 통치자였다. 달라이 라마는 관세음보살의 화신으로 생각됐으며 죽은 후에는 다시 환생한다고 믿어졌다.

 제14대 달라이 라마인 ‘텐진 갸초’는 1935년에 태어나 5세 때 달라이 라마로 추대됐다. 티베트인들에게 달라이 라마는 문자 그대로 살아있는 부처님으로 절대적 존재였다.

 중국 정부는 티베트인의 반란을 가차 없이 진압했다. 반란자는 무자비하게 살해됐고 반란의 구심점 역할을 한 불교사원들은 폐쇄됐다. 달라이 라마는 결국 수백 명의 추종자들과 함께 히말라야를 넘어 망명했다. 그는 인도 북부의 다람살라에 망명정부를 세우고 독립운동을 시작했다. 이후 중국 정부는 티베트에 대한 통치를 대폭 강화했다. 불교 집회를 금지하고 귀족과 사찰의 재산을 몰수했으며 집단농장을 설치했다. 한편으로는 도로, 교량, 병원, 학교를 건설함으로써 티베트를 종교의 굴레에서 해방시키고 근대화한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티베트인들의 망국은 한편으로는 티베트의 독특한 문화와 종교가 세계에 알려지는 계기가 됐다. 초기 불교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고도의 정신성을 강조하는 티베트 불교는 현대문명에 지친 서양인들에게 큰 호소력을 가졌다. 달라이 라마를 비롯한 종교 지도자들의 상당수가 조국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은 티베트 불교의 전파에는 오히려 유리한 조건이었다. 1989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달라이 라마는 오늘도 세계를 돌며 평화주의에 입각한 독립운동과 종교-문화 간의 상호 존중과 이해를 설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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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티베트 불교의 영적 지도자인 14대 달라이 라마와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 대 동양학연구소 교수 '빅터 챈'30여 년 동안 나눈 대화를 한권의 책으로 묶고 있다. '용서'라는 주제 하에 달라이 라마가 몸소 겪은 중국과 티베트라는 정치적 상황 뿐 아니라,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과 그간 만나며 나눈 깨달음을 풀어놓는다.

 그는 용서의 지점을 이렇게 얘기한다. 우리에게 상처를 주고 우리가 적이라 부르는 사람이 우리에게 어떤 짓을 했는가에 상관 없이, 세상 모든 존재는 우리 자신이 그렇듯 행복해지기 위해 노력하는 존재임을 떠올린다면, 비로소 용서와 화해로 나아갈 수 있지 않겠냐는 것이다. 더 나아가 고통을 이겨낼 수 있는 인내심을 키우기 위해서 우리는 상처 입힌 누군가가 있어야 하며, 그런 사람들이 있어서 비로소 우리는 용서를 베풀 기회를 얻게 된다는 것이다. 결국, 진정한 삶의 승리자는 적이 아닌, 자기 자신의 분노와 미움을 이겨낸 사람이라는 가장 본질적인 '나'를 넘어서는 이야기를 전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