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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朋滿座

무위당 장일순의 이야기 모음 『나락 한 알 속의 우주』

by 언덕에서 2017. 11. 7.

 

 

무위당 장일순의 이야기 모음 『나락 한 알 속의 우주』

 

 

 

 

 

이 책은 서예가이자 사회운동가인 무위당 장일순1 의 문집이다. 글쓴이의 글을 모은 문집이라고 하지만 글로 쓰인 것이 아니고 그의 강연과 대담을 글로 옮겨놓은 이야기 모음이다. 이 이야기 모음집에는 공생의 논리에 입각한 생명존중 사상이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비로소 우리 사회의 일부분만이 알고 존경하는 그가 누군지 궁금해 하면서 공부하게 되었다. 누군가의 표현처럼, 장일순 선생의 삶을 되돌아보면 시대를 잘못 태어난 죄가 안타깝다는 생각이 든다. 그가 살았던 시대는 국가의 정체성이 혼란을 겪던 시대로 올바른 목소리를 낸다는 것을 상상하기 어려웠다. 그는 폭력 사회라고 부를 수 있는 전체주의적인 환경 속에서 자신의 행동이 그 무용함을 알면서도, 자연 속으로 돌아가서 즉시 할 수 있는 일, 당장 사회에 보탬이 되는 일, 생산적인 농민운동의 삶을 살다가 그는 세상을 떠났다.

 이 책을 읽다보면 종교에 얽힌 이야기가 꽤 많이 등장한다. 그러나 그는 특정 종교에 얽혀 있는 삶을 살지 않았다. 그는 어릴 적 불교신자였다가도 형의 죽음을 통해 가톨릭을 접하게 되고, 또 삶을 살면서 개신교도 익히고. 게다가 우리나라 옛 선조들의 종교라고 할 수 있는 동학(東學)까지도 섭렵했다.

 종교가 그 종교를 믿는 사람들에게만 범위가 국한되어 진다고 한다면 그 종교의 근본 생각은 편협하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가 믿는 종교는 한 그루 나무라 생각해 보았을 때 하나의 가지만 붙들고 있는 것이 아니라고 저자는 단언한다. 근본 뿌리는 모두 한 가지인데 우리는 그 한 가지를 붙잡고서 '기독교'다, '불교'다, '이슬람교'다 '힌두교'다 라고 구분하고 그렇게 사이를 나눌 뿐이라는 것이다. 

 

 

 

 

 인간이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햇빛과 물과 공기와 풀과 쌀 등의 음식물이다. 풀 한 포기가 싹이 되어서 자라고 쌀 한 톨이 자라 벼가 되고 곡식이 되기 위해서는 햇빛과 공기와 흙이 필요하다. 지구상의 생명체가 살아가기 위한 최소 조건은 지구와 해와 달이고 곧 우주다. 저자는 우주와 인간과 지구상의 생명체는 한 몸이라고 이야기한다.

 나락 한 알 속에는 무수한 생명의 싹이 들어있고 그 싹들은 우주로부터 만들어진 것이고 '축소된 우주'이다. 인류의 현대과학이 물질의 가장 작은 단위로써 이론적으로 '추측'하는 원자와 미립자의 존재양식은 우주의 존재양식과 다름이 없다.

 장일순 선생은 이 단순한 원리를 통하여 인간의 삶과 행동, 종교, 공동체, 협동조합운동, 생명운동을 이야기한다. 인간중심, 인간지배 그리고 이분법과 경쟁으로 이루어진 서구사상이 지구와 자연을 파괴, 고갈시키고 더 나아가 인간 자신들의 삶과 사회까지도 파멸시켜가고 있음을 일깨워준다. 기독교 하느님과 불타 석가모니는 보이지 않는 곳이나 교회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세상 만물 속에, 사람들 안에 자리하고 있음을 알려준다. 특히 그는 해월 최시형 선생의 동학사상과 천도교에서 서구의 기독교 사상과 동양의 유,불,선 사상을 아우를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장일순 선생은 말이나 사상으로서가 아니라 직접적인 실천과 삶으로서 한살림 공동체를 시작하고 운영했던 경험을 설명하고 있다. 그에게 한살림운동은 생명사상이자 공생의 시대를 살아가는 것이었다.

 

 

 

  

 

 장일순 선생은 60~70년대 반체제운동을 했고 80년 말부터 90년대까지 생명운동을 전개했다. 1992년 6월 11일 MBC TV <현장 인터뷰, 이사람>에 출연한 그를 대담한 황필호 전 동국대 철학과 교수는 원주의 토담집을 찾아 대화를 이어갔다. 원래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 그의 첫 텔레비전 출연이었다.

 "선생님은 1960년대, 1970년대 반독재체제 투쟁에 앞장서 그야말로 옥고도 치르시고 그 후에도 지학순 주교님을 위시해 여러 사람과 같이 원주 지방에서 재야운동가로 활동하고 계시고, 또 최근에는 '땅이 살아야 사람이 산다'는 기치 아래 무공해 식품을 생산·판매하고 권장하는 한살림 운동을 전개하시고, 또 듣기로는 서예에도 일가견이 있으시다고 그렇게 들었습니다. 그런데 선생님께 대중매체에 얼굴이 나오는 것을 싫어해 겨우 모시게 되었습니다. 허락해 주셔서 아주 고맙습니다."

 - 본문 중에서

 출연 당시 그는 몇 달 전 위암으로 수술을 받았고 시대의 병, 암에 대해서도 말을 이었다.

 "자연도, 지구도 암을 앓고 있고, 자연 전체가 암을 앓고 있는데 사람도 자연의 하나인데 왜 암에 안 걸리겠어요. 그러니까 큰 것을 나한테 가르쳐주느라고, 결국은 '지금 너 좀 앓아 봐라' 하고 그러시는 것 같아요."

 - 본문 중에서

 

 장일순 선생은 동학의 생명사상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서의 사회적·윤리적·생태적 기초를 발견했다. 동학은 물질과 사람이 다 같이 우주의 생명인 한울을 그 안에 모시고 있는 거룩한 생명임을 깨닫고 있고 그것은 어느 시대나 변하지 않는 잔리이기 때문이었다. 자연과 인간을 자기 안에 통일하면서 모든 생명과 공진화해 가는 한울을 이 세상에 재현시켜야할 책임이 바로 시천(侍天)과 양천(養天)의 주체인 인간에 있다는 생각이었다.

 선생은 동학의 교주 수운 최재우, 해월 최시형과 예수, 노자 등의 말을 인용해 생명사상의 참뜻을 되새겼는데 모든 종교의 지향점이 동일하기 때문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식물도 애정을 가지고 귀하게 어겼을 때는 즐거워한다고 하거든, 그런 걸 알면 선악 얘기는 할 필요 없지. 저놈 나쁜 놈이야 하면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고. 그러나 아 자네 얼마나 고달픈가 하고 받아들이면 스스로 화냈던 거, 욕심냈던 거, 다 풀리거든, 그래서 둘이 다 좋아진단 말이지, 차원이 달라지잖아요." 

 - 본문 중에서

 

 

 

 이 책 제목에도 나타나듯 장일순 선생은 '나락 한 알에 우주가 함께 한다'와 동학의 이천식천2(以天食天)이라는 사자성어를 강조했다. 동학의 2대 교주 해월 최시형 선생이 밝힌 "천지만물이 모두 한울을 모시고 있다, 그러므로 이천식천은 우주의 상리(常理)"라는 말을 자주 인용했다. 사람들이 흔히 먹고 있는 음식도 한울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한울의 일부인 음식을 먹는 것은 바로 '한울로써 한울을 먹는 것'라는 의미이다.

 그리고 장일순 선생은 스스로의 호를 ‘일속자(좁쌀 한 알)’라고 지을 정도로 겸손하였으며 사회 혁명에 대해서도 낮은 자세로 임할 것을 요구했다.

 ‘혁명이란 때리는 것이 아니라 어루만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본래 만물이 위대한 것입니다.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또한 한 포기의 풀과 같이 존경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 본문 중에서

 

 

 

 책 표지 뒷면에 쓰인 <녹색 평론> 발행, 편집인 김종철 님의 추천사는 무위당 장일순 선생의 생각을 가장 명료하게 표현하고 있어 옮겨다 본다.

 "무위당 선생은 우리더러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되거나 무엇을 하라고 직설적으로 요구하지 않는다. 또 선생은 우리가 '살아남기 위해서' 지금 당장 어떤 행동에 나서지 않으면 안된다고 강하게 설득하려 하지 않는다. 선생은 다만 세상에 살아 있는 존재들과의 근원적인 공감과 대화를 통해서, 개인이 어떻게 참된 행복에 도달하고 기쁨을 누릴 수 있는지를 자신의 체험에 비추러 부드러운 음성으로 차근차근 말할 뿐이다.

 선생의 생명사상의 핵심은, 적어도 내게는, 공경의 사상으로 이해되었다. 사람 하나하나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 모든 목숨 가지고 태어난 것들을 그 어느 것도 하찮은 미물이라고 여기지 않고, 깊이 주의를 기울여 대하는 일관된 마음과 태도, 이것은 이 책 어느 페이지에서든 선생의 곡진한 목소리에서 우리가 느낄 수 있는 가장 두드러진 면모이다."

 

  1. 장일순 (1928년 9월 3일생, 1994년 5월 22일 사망) 대한민국의 사회운동가. 교육자이며 생명운동가이다. 도농 직거래 조직인 한살림을 만들었고 생명운동을 했다. 경성공업전문학교 재학 시, 미군 대령을 총장으로 하는 후신 국립 서울대학교 설립한 반대운동(국대안 파동)을 하다 제적되다. 그 후 원주에 정착, 대성학원을 세운다. 그러나 그가 미국이나 소련의 일방적인 입장에만 서는 통일안에 반대하는 중립평화통일안 때문에 1961년 5. 16 군사정권에 의해 3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옥살이를 한다. 1971년 10월 지학순 주교 등과 함께 박정희 정권의 부정부패를 폭로하는 가두시위에 참여하는 등 사회운동을 하게 된다. 이후 농민 운동을 하였으나, 김지하 등과 함께 운동을 반성 해본 결과 기존의 농민운동이 실패했다고 판단하여 도시와 농촌에 직거래를 하고 자연요법으로 농사를 짓는 한살림운동을 시작한다. 그 후 장자와 같은 무위자연의 삶을 추구한다. 1994년 5월 위암으로 별세한다. [본문으로]
  2. 1885년(고종 22) 설교에서 최시형은 “천지만물이 모두 한울을 모시고 있다. 그러므로 이천식천은 우주의 상리(常理)이다.”라고 주장하였다. 사람들이 흔히 먹고 있는 음식도 한울의 일부이기 때문에 사람이 한울의 일부인 음식을 먹는 것은 바로 ‘한울로써 한울을 먹는 것’이 되는 셈이다. 이런 맥락에서 최시형이 1881년에 7년 전부터 신도들에게 금하여오던 어육과 주초(酒草)의 사용을 해제시킨 것을 이해할 수도 있다. 또, 이 가르침을 “하느님으로써 하느님을 먹여 기른다.”라고 풀어, 만물이 모두 하느님을 모시고 있다는 뜻이며, 만물 속에 하느님 곧 신이 있다는 범신론적 사상을 나타낸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