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高朋滿座

우리가 꿈꾸는 또 다른 삶 『슬로 라이프(slow life)』

by 언덕에서 2017. 9. 29.


 

우리가 꿈꾸는 또 다른 삶 『슬로 라이프(slow life)』

 

 

                                                                  

일본 환경운동가 쓰지 신이치(ツジ 信一 つじ しんいち, 1952~, 한국 이름: 이규)가 쓴 ‘느리고 소박한 삶의 안내서’이다. 저자는 <슬로우 이즈 뷰티풀(Slow is beautiful)>이란 책으로 알려져 있다. 메이지가쿠잉대학교 국제학부 교수이자 세계적으로 활발한 활동을 펼치는 저자가 쓴 이 책은 날로 황폐해지는 개인과 사회, 지구 환경의 유일한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는 ‘슬로 라이프’의 다양한 현장을 70개의 키워드로 정리해 소개한 입문서이다. 저자는 지금까지 진행되어 온 세계화(글로벌화)로는 인간과 지구의 병이 치유되기는커녕 더욱 악화시킬 뿐이라며, ‘슬로 라이프로 돌아갈 것’을 이 책을 통해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또 실제로 지구 곳곳에서 ‘슬로 라이프’를 실천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방식을 소개하는 한편 소박하고 느긋한 삶을 누리기 위해서 독자가 ‘지금 여기’서 실천에 옮길 수 있는 방법들을 안내하고 있다. 이 책 『슬로 라이프』는 세계화1에 대항하여 전 지구적으로 거대한 물결을 이루고 있는 ‘느린 삶 운동’의 중요한 문제들을 ‘핵심문장’을 통해 설명한 안내서이다. 그 핵심문장'들은 70개 중 몇을 예로 들자면 다음과 같은 내용들이다. 

 
● 걷기 : 슬로 라이프의 첫걸음은 산책을 되찾는 일이다.
방랑 : 진정한 풍요를 위해 물질과 돈에 의지하지 말자.

맥도날드화 : 패스트푸드가 세계를 균질화시키고 있다.
씨앗 : 종자를 보존하는 일은 생태계를 지켜 내는 일이다.
지구 온난화 - 멸종 : 경제 시간이 생태계의 시간을 앞질러가다가 생긴 이상 현상.
신체 시간 : 왜 그렇게들 서두르지? 그래 봐야 빨리 죽는 것밖에 더 없는데….
노인 - 어린이 : ‘노인은 노인답게, 아이는 아이답게’가 힘든 비정상 사회.
비전화(非電化) : 아주 조금만 불편해질 용기를 가져 보자.
테크놀러지-아트 : 기계 없이도 살 수 있는 삶의 기술을 회복하기.
잡곡 : 맛도 좋고 영양도 좋고 환경에도 좋다는데….
육식 : 먹어야 한다면 줄이기라도 하자.

 

‘슬로 라이프2’즉, ‘느린 삶’이라고 하면 대개의 사람은 주말 낚시나 바다가 보이는 집, 집에서 만든 건강한 요리, 일요일의 농사체험이나 정원 가꾸기, 달콤한 낮잠과 한가한 시간 등을 떠올릴 것이다. 물론 이러한 느긋한 즐거움은 ‘슬로 라이프’를 실천하며 얻을 수 있는 개인적 측면의 행복이다.

 그러나 이 책은 개인적 차원으로 환원된 느린 삶의 단면만을 다루지 않고, 인간관계, 사회, 경제, 그리고 환경적 측면으로 확장되는 보다 깊은 차원의 개념을 함께 다루고 있다. 즉 ‘슬로 라이프’를 개인적 선호의 문제가 아닌 시대가 필요로 하는 가치이자 21세기에 가장 시급한 대안으로 보고 있으며, 반세계화의 흐름 속에서 대두되고 있는 중요한 논점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다.  

 이 책에서 소개되는 몇 가지 핵심문장과 단어를 살펴보면, ‘슬로푸드’를 제목으로 한 글에서 우리는 유전자조작이나 세계적 기업들의 횡포에 맞서는 개인들의 결단이 어떻게 전 지구적인 운동으로 퍼졌는지를 설명한다. 한편 ‘씨앗’이라는 제목의 글에서는 다국적 식품기업들이 종자 균질화를 통해 착취한 이윤이라는 세계화의 단면을 깨닫게 된다. 따라서 향토 종자보존이 얼마나 중요한 문제인지에 대해 인식할 수 있다. 또한 ‘지역 통화’라는 핵심단어를 통해 달러화나 유로화에 맞서는 대안적 화폐의 현장을 바라보게도 된다. 무엇보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읽고 생각만 할 수 있는 이슈들이 아니라 바로 우리 주변에서 실천할 방법들을 예시하고 참여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이는 환경보호 운동가이자 문화인류학자로 활동하며 ‘느린 삶 운동’의 중심에 있는 저자가 몸소 체험한 지혜와 지식이 녹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슬로 라이프는 이처럼 단순한 개인적 취향의 문제가 아니지만, 본질적으로 슬로 라이프는 개인적 차원의 선택이다. 2002년 출판된 <문화 창조자들 Culture Creative>에서 폴 레이와 샐리 앤더슨이 지적한 바와 같이 ‘느린 삶’의 주역들이라 할 수 있는 ‘문화 창조자3’ 그룹은 그 수가 해마다 늘어 미국 성인 인구의 3분의 1 이상을 차지한다고 한다. 이를 달리 비유해 보면 “미국 한복판에 프랑스 정도 규모의 독립국”에 해당하는 규모이다. 다만 이들은 교단이나 정당을 만들지 않고 자신의 커뮤니티 영역 안에서 활동하기 때문에 사회가 이들의 존재와 힘을 인식하기 힘들 뿐이다. 만일 이들의 수가 더욱 불어나 ‘연대’가 가능해질 때 그 흐름이 몰고 올 변화는 가늠하기조차 힘들다.

 이 책은 이렇게 개인적인 차원에서 전개되는 슬로 라이프 운동의 모습들을 사회적, 지구적으로 조망하여 그 의의를 밝힘과 동시에 다시 개인으로 돌아가 지금 여기서 자신이 실천할  방법들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며, ‘슬로 라이프’의 이상을 현실적으로 안내한다.

 

 

 

 

우측,  저자 쓰지 신이지

 

 

 

 슬로 라이프(slow life)는 엄밀히 말해 브로큰 잉글리시(가짜 영어)다. 영어에는 정작 이런 표현이 없기 때문이다. 이 말은 이 책 『슬로 라이프』 저자인 한국계 일본인 쓰지 신이치에 의해 처음 작명되었다. 이후 ‘슬로 라이프’라는 용어는 그 기세가 불붙듯 불어나 유럽에서 시작된 ‘슬로푸드’나 북미의 신조어 ‘LOHAS(Lifestyle Of Health And Sustainability)’처럼 범용 되고 있다.

 그러나 지은이 쓰지 신이치는 이 현상이 반갑다기보다 불안하다. 이탈리아의 슬로 푸드 운동에서 나온 ‘슬로’나 삽시간에 마케팅 용어로 변질되어 큰 인기를 끈 ‘웰빙(well-being)’처럼 본래의 의미가 왜곡되어 전파되고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원래 ‘슬로 라이프’에는 ‘친환경’적이고 ‘지속 가능한’ 자원의 사용, ‘글로벌에 맞서 로컬을 살리는’ 등의 의미가 담겨 있는데, 이러한 원뜻에 녹아 있는 ‘뺄셈’의 발상은 빠지고 어느새 ‘슬로 라이프’ 실현에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여러 물건과 서비스를 팔기 위한 ‘덧셈의 상술’로 전락하고 있는 듯하기 때문이다.

‘슬로 라이프’는 사실 각박한 21세기를 살아가는 도시인들의 꿈이다. 쫓기는 듯한 일상에 자신이 인생이 매몰되는 듯한 상실감을 어느 개인이 느껴보지 않겠는가? 독한 매연, 풀 한 포기 키울 수 없는 땅, 물조차 안심하고 마실 수 없는 지금의 환경에 문제를 느끼지 않는 개인이 어디 있겠는가?  다만 이 책은 ‘느리게 사는 꿈’이 개인적 차원의 꿈만이 아니라 충분히 실천 가능한 구체적인 삶의 방식이며, 본질에서는 황폐해진 이 지구와 사회를 살리는 유일한 ‘사회·경제적 대안’임을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슬로 라이프’의 단면들을 반영하는 중요한 이슈를 70개의 핵심문장(키워드)으로 정리해 조목조목 소개하고 있다.

 

 


 

☞ 이 책의 저자 쓰지 신이치는 세 개의 이름을 갖고 있다. 우선 일본에서 태어나 가진 이름인 쓰지 신이치, 국제적으로 사용하는 이름인 게이보 오이와, 그리고 한국인이었던 선친이 지어 준 한국이름인 이규(李珪). 이렇게 그는 세 개의 이름을 지니고 산다.

 그는 문화 인류학자이자 환경운동가이다. 미국 코넬대학에서 인류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일본의 메이지가쿠잉대학 국제학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그는 ‘슬로’라는 개념을 축으로 전 세계적으로 환경운동과 문화 운동을 하는 한편 환경공생형 비즈니스(본문 213면 ‘비전화’, 245면 ‘슬로 비즈니스’, 269면 ‘슬로 카페’ 참조)에도 참여하고 있는 한편 전국적으로 활발한 강연 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는 슬로 라이프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세상에 퍼뜨린 인물이기도 하다. 일본에 슬로 라이프 물결을 일으킨 《슬로우 이즈 뷰티풀》(빛무리) 외에도 캐나다-일본 저술 상을 받은 <스톤 보이스>, <블랙뮤직만 있다면>, <슬로 비즈니스> 등의 책을 썼다.

 

 

 

  1. 세계화(世界化, 미국 영어: globalization, 영국 영어: globalisation)는 국제 사회에서 상호 의존성이 증가함에 따라 세계가 단일한 체계로 나아가고 있음을 가리키는 말이다. 각 민족국가의 경계가 약화되고 세계사회가 경제를 중심으로 통합해 가는 현상으로 전 세계가 하나로 연결되고, 그 속에서 상호 의존성이 심화됨을 뜻한다. 그동안 달랐던 사회가 전 세계적으로 서로 밀접한 관계를 갖는 연속적인 과정을 일컫는다. 이 과정은 경제적, 과학기술적, 사회문화적, 정치 권력과 맞물려 있다. 세계화 과정의 기원에 대해서는 두 가지 상반된 의견이 있다. 근대화와 함께 시작되었다는 견해가 있는 반면, 인류의 역사 시작부터 세계화가 진행되었다는 견해도 있다. 세계화의 과정은 일반적으로 경제적인 관계를 일컫는 경우가 많지만, 최근에는 문화적인 측면의 세계화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경제 강대국 중심의 세계 재편이라는 비판도 있다. [본문으로]
  2. ‘친환경’적이고 ‘지속 가능하며’ 글로벌에 맞서는 삶의 방식. 경제적 관점에서만 재단된 시간의 틀을 깨고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삶의 속도를 지향한다. 북미에서 회자하는 LOHAS(Lifestyle Of Health And Sustainability)와 비슷한 개념이다. 현재 ‘문화 창조자’들이라 불리는 많은 사람에 의해 하나의 대안적 삶의 방식으로 자리 잡고 있다. slow life라는 말은 이 책 《슬로 라이프》를 지은 쓰지 신이치(이규)에 의해 처음으로 만들어졌다. [본문으로]
  3. 문화 창조자들이란? 폴 레이와 셀리 앤더슨의 공저 《Culture Creatives》에서 처음 거론되었다. 문화 창조자들(줄여서 CC)은 사회적 지위보다는 자기실현, 금전보다는 시간, 물질적인 만족보다는 창조적이고 정신적인 경험을 추구하며, 환경 문제와 커뮤니티에 강한 관심을 보인다. 이들 CC는 기존 종교의 편협성, 상업적 쾌락주의, 경제성장 지상주의, 세계화로 인한 생태계 파괴를 거부한다. 이들은 20세기 중반의 히피에서 출발해 그 수가 해마다 늘어가고 있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