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古典을 읽다

중국 청대 장편소설 『유림외사(儒林外史)』

by 언덕에서 2017. 6. 7.

 

중국 청대 장편소설 『유림외사(儒林外史)』

 

중국 청대(淸代)의 문인 오경재(吳敬梓,1701-1754)의 작품이다. 날카롭고 유머러스한 필치로 갖가지 유형의 사대부들을 통해 사리사욕, 불학무식과 무능함, 비굴함, 허위와 부패 등 각양각색의 추태를 묘사하고 있다. 과거제도와 전통 예의에 대한 가르침의 폐습에 대한 폭로, 사대부들의 정신생활의 공허함과 부패·타락에 대한 신랄한 풍자 등을 통해 전통 사회 정치의 어두움과 도덕성 상실, 풍속 피폐의 현상들을 공격하고 있다. 또한 관리들의 탐욕, 지주들의 인색함, 소금 상인들의 음탕함 등도 묘사하고 있다. 과거를 위한 공부를 비판했으며, 스스로의 힘으로 먹고 사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동정을 표시했다. 

 『유림외사』는 작가 오경재가 거듭되는 불행과 고통 속에서 체험을 통해 비판적으로 통찰한 청대의 사회 현실, 특히 타락한 지식인 사회의 본질을 파헤쳐 무려 10년에 걸친 각고의 노력 끝에 문학적으로 형상화한 자전적(自傳的) 걸작이다.

 유림외사는 전 55회. 50회의 것이 있었던 모양이나, 지금은 전하지 않는다. 가장 널리 쓰인 56회본은 중국인의 저서의 일반적으로 통하여 쓰는 전례로 편수를 짝수로 하기 위해 후세 사람이 1회를 늘인 데 불과하다. 저작 연대는 옹정(雍正) 말년(1735)이나 건륭(乾隆) 초년(1736)이며, 그 즈음 우림 즉 일반 벼슬을 하지 않은 선비(士人) 계급은 과거에 급급하여 공허한 학문을 자랑하고, 명문임을 장식품으로 삼고, 영달을 꾀할 뿐이어서 인간성을 상실하였다.

 작가는 그 폐풍을 찌르기 위하여 학자나 관료나 명사(名士)를 비롯하여 시정인(市井人) 등 각종 인물을 그려내고, 그 언동을 정밀하고 자세하게 표현함으로써 통렬하게 풍자하려 하였다. 그러나 전편을 일관하여 줄거리는 없고, 각 인물은 소위 열전(列傳) 체재로 이어갔으며, 각각 짜여진 내용을 가진 단편이 자연히 전체를 구성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이 형식은 뒤에 나온 풍자소설 <관장현형기(官場現形記)><문명소사(文明小史)> 등에도 그대로 본받아졌다.

 작중 인물은 각기 실재의 모델이 있었던 모양이며, 작자 자신도 한 사람의 군자로서 등장한다. 벼슬을 하지 않은 선비(士人)의 허식과 내용이 없고 허술함을 폭로하는 데 중점을 두었으므로 그 구체적인 묘사 면에서는 대단히 생생한 기운이 있으나, 이것은 작자의 실제적인 경험에 의하여 생긴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작자 자신이 이상을 나타내려고 한 부분은 자칫 형식적인 냄새가 나며, 따라서 그 풍자도 철저한 상호비판에까지 깊이 들어가지 못한다는 것이 중평이다.

 

 56회의 많은 이야기 중 하나의 예를 들자면 그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범진(范進)이 두세 걸음 방 안으로 들어가니 한복판에 합격 통지서가 이미 걸려 있는 것이 보였다. 범진은 보지 않았으면 몰라도 한 번 보고는 또 한 번 읽어보더니 손뼉을 치며 한바탕 웃고 나서 소리쳤다.

 "오! 그래! 내가 합격했어!"

 그러다가 다리가 걸려 뒤로 넘어지더니 이를 악무는 것이었다. 어머니가 당황해서 황급히 더운물을 갖다가 몇 모금을 먹였다. 그러자 그는 일어나서 또 손뼉을 치고 크게 웃으며

 "아! 좋다! 합격했구나!"

하고는 웃으면서 다짜고짜 문 밖으로 내뛰었다. 소식을 전하러 왔던 심부름꾼들이나 이웃 사람들이나 모두 깜짝 놀랐다. 대문을 나선 범진은 얼마 못 가서 다리 하나가 늪에 빠졌다. 발버둥을 치다가 머리는 헝클어지고 두 손은 흙투성이가 되고 온몸이 물 범벅이 되었다. 사람들이 그를 잡지 못하여 그는 손뼉을 치고 웃으면서 곧장 장터까지 가 버렸다.

중국 청대(淸代)의 문인 오경재 (吳敬梓,1701-1754)

 

 위의 이야기에서 백발이 되도록 과거 시험에 실패만 거듭하다 어느 날 갑작스런 합격 소식에 그만 실성해서 우스꽝스럽게 미쳐 날뛰는 범진의 모습은 과거 시험으로 병들고 피폐해진 당시 지식인들의 내면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일장 희비극이다. 이밖에 실소를 금치 못할 갖은 비열한 수단으로 하층민들에게서 이익을 뜯어내는 엄대위, 마지막 숨이 넘어가는 상황에서도 등잔에 심지가 두 가닥이 타고 있는 것을 보고는 기름이 아까워 가족들에게 손가락 두 개를 펴 보이며 죽지 못하는 엄대육, 도박과 여색 등으로 물의를 빚은 형편없는 자를 대단한 명사라 여겨서 삼고초려 하는 누씨 형제, 아들이 없는 것을 한탄하면서 무모하게도 과거를 볼 자격조차 없는 외동딸을 팔고문의 달인으로 만드는 노편수, 딸이 남편을 따라 순절하게 하고는 참 잘 죽었다며 앙천대소하는 왕옥휘 등등이 그 희극과 비극의 주인공들이다.

 작가는 다양한 지식인의 일상적 단면들을 통해 그들 삶의 비애와 속물근성, 파렴치함, 허영심, 위선 등을 풍자적으로 폭로하고 있다.

 

 

 

 이 소설은 언어가 잘 다듬어져 있고, 복잡한 인간생활 속에서 전형적인 부분을 선택하여 인물의 성격을 표현해내는 데 뛰어나며, 풍경 묘사 또한 훌륭하다. 전체적인 구성에 있어서는 일관된 주인공이 없지만 줄거리가 치밀하게 배치되어 있어 내재된 연관성을 갖추고 있다. 또한 백묘(白苗: 미사여구로 꾸미지 않고 사실 그대로 표현하는 묘사법) 수법을 사용했으며, 줄거리의 자연스런 전개를 통해, 가소로운 인물 군상들을 독자 앞에 드러내보였는데, 직접 서술하는 방식을 택했다.

 이 작품은 중국 고전문학 풍자예술의 극치라 할 수 있으며, 청대 말기의 견책소설☜(譴責小說)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루쉰(魯迅)은 1935년에 발표된 <시에쯔(燮紫)의 『풍성한 수확[豊收]>에 대한 서문」에서 “중국에선 확실히 <삼국지연의>와 <수호전>이 유행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사회에 아직 ‘삼국’의 기풍과 ‘수호(水滸)’의 기풍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유림외사』를 쓴 작가의 능력이 어찌 <삼국지연의>를 쓴 나관중보다 못하겠는가?”라며 이 책에 대한 문학사적 가치를 높이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각종 고사에 보이는 이야기를 능란하게 이용한 수법은 소설의 기교로서도 별로 새롭지 않다는 것이 중론이다. 작자의 박식을 넌지시 보이려는 데 불과하다는 것이다. 또 문장은 백화(白話)의 전형적인 것이라 하여 문학혁명 때 크게 화제에 올랐다고 한다.

 

 


☞견책소설: 아편전쟁(1839~1842) 이후 연이은 외세의 침입과 내부가 혼란에 빠지자, 중국 소설은 국가 민족의 위기를 극복하는 데 있어 능동적인 역할을 담당하였다. 따라서 일부 소설은 사회개혁을 목적으로, 특히 시정() 폐단의 폭로와 그에 대한 풍자적인 묘사의 경향이 두드러졌다. 루쉰[]은 이러한 소설을 견책소설이라고 불렀다.

 

 

 

 

  1. (1701 ~ 1754)안휘성(安徽省) 전초현(全椒縣) 출생으로, 자(字)는 민헌(敏軒)이고 호는 입민(粒民)이며 만년에는 문목노인(文目老人), 진회우객(秦淮寓客)이라고도 했다. 명망 있는 관료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과거 시험에서 여러 차례 실패를 겪었고, 여기에 가문 내의 변고와 갈등이 겹치면서 방황하다가 33세 때 고향을 버리고 남경(南京)으로 이주하여 글을 팔아 생계를 이어가면서 불우한 만년을 보냈다. 『유림외사』의 등장인물인 두소경(杜少卿)은 작자 자신의 화신인 것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장편소설인 『유림외사』는 오경재의 일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고 영향력 있는 저작이며, 그 밖의 저작으로 시문집인 『문목산방집(文木山房集)』과 『시경(詩經)』 연구서인 『문목산방시설(文木山房詩說)』 등을 남겼다. [본문으로]
  2. 여러 사람의 전기(傳記)를 차례로 벌여서 기록한 책. [본문으로]
  3. '백화문(白話文)'이라고도 한다. '문언(文言)'과 상대되는 개념으로 중국어 글말 중의 하나이다. 아주 오랜 기간 동안 중국어의 글말형식은 문언문이었다. 문언문은 선진(先秦)시기의 입말을 기초로 형성된 것으로서, 본래 고인들의 입말을 적어 표현한 것이었지만, 후대로 갈수록 점차 입말과 괴리가 생기면서 한위(漢魏) 시대에는 더욱 심해져, 결국 언어의 발전은 사회와 서로 적응하지 못하게 되었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