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청말의 장편소설 『라오찬 여행기(老殘遊記)』
중국 청나라 말기의 소설가 유악(劉鶚)의 소설로 1906년 무인서관(商務印書館)에서 간행되었다. 시정 비판소설로 전20회로 되어 있다. 기골 있는 관리이며 학자인 유악(1857∼1909)은 당시의 세태를 풍자하여 1903년 그 앞부분을 잡지 [수상소설(繡像小說)]에 제13회까지 연재, 그 뒷부분을 [톈진일일신문(天津日日新聞)]에 제20회까지 재록ㆍ연재하여 완결시켰다.
작중에 등장하는 라오찬(老殘)이라는 의사는 산둥성의 각지를 편력ㆍ견문하며 관리의 무능과 사리만을 추구하는 생태를 생생히 묘사한다. 관료정치를 통렬히 비판하고 라오찬의 활약으로 무고한 백성이 구출된다는 통속적인 줄거리이다.
그러나 백성들은 실은 청렴을 가장하고 공을 세우려는 관리의 희생물로서, 오히려 탐관오리보다 더 위험한 관리들의 독선적 행동을 꼬집고 있는 것이 이 책의 특색이다. 또한 작가의 최대 관심사였던 치수(治水)사업을 비롯하여 정치에 대한 이상이 여러 가지 삽화를 통하여 정열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떠돌이 의사 라오찬은 방울을 흔들고 다니며 사람들의 병을 치료해준다. 하루는 산둥 구치엔청을 지나다가 여름마다 전신에 종기가 나서 고생하고 있는 부호 황뤼허를 만나 그의 괴병을 치료해준다. 그날 밤 꿈에 친구 원장보, 더휘셩과 함께 덩주의 펑라이거의 경치를 구경 갔다가 광풍이 몰아치는 거대한 파도 속에서 침몰 직전의 배 한 척을 보게 된다.
라오찬은 배를 지휘하는 선주와 조타수, 남녀 승객을 유린하며 돈과 물건을 빼앗는 선원을 보고 분개해 작은 배를 타고 그쪽으로 이동하다 보니, 배가 전복될 판이었다. 그때 큰 소리로 연설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데, 어떤 이는 소년들에게 선장과 선주를 때려죽이라고 부추겼고, 어떤 이는 난동을 부리지 말라고 했다. 라오찬은 배를 인도하기 위해 나침반과 육분의1를 주었지만, 선원과 연설자가 라오찬을 매국노라고 하면서 죽이려 한다. 결국 작은 배도 부서지고, 라오찬은 친구와 함께 바다 밑으로 떨어지다가 깜짝 놀라 꿈에서 깨어난다.
라오찬은 지난으로 가는 길에 붉게 물든 가을산과 아름다운 대명호를 바라보면서 왠지 모를 불안감에 사로잡힌다. 까오싸오인의 소첩의 병을 고쳐준 인연으로 산둥 무대 장궁바오를 만나 그에게 황허가 범람했을 때의 대비책을 알려준다. 장궁바오는 그의 재주를 알아보고 관직에 추천하지만 정중하게 거절한다. 차오저우에 갔다가 그곳 혹리 위센이 억울하게 죽인 사람이 2천 여 명이나 되는 것을 알고, 장궁빠오에게 편지를 보내 위센의 악행을 알려준다.
라오찬은 객점에서 옛 친구 황런뤼를 만나 함께 저녁을 먹다가 기녀 '취환'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취환은 본래 지둥현의 큰 부잣집 딸이다. 2년 전 황허가 범람했을 때 관찰 스쥔푸가 올린 잘못된 치수 방책으로 집이 수몰되어 어쩔 수 없이 기녀가 되었다는 것이다. 또 황런뤼로부터 자칭 청관인 강삐가 비상에 중독된 쟈씨 일가의 살인범으로 웨이씨 일가를 지목하고, 웨이씨 일가는 강삐의 협박과 혹형에 못 이겨 거짓 자백을 하고 죽을 고비에 놓여 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라오찬은 장궁바오에게 편지를 보내 사건의 재수사를 부탁한다. 바이즈서우 태수가 사건을 재수사하면서 웨이씨 일가는 무죄로 드러난다. 바이즈서우의 부탁으로 사건 진상 조사에 참여하게 된 라오찬은 결국 쟈씨 집 큰딸과 혼담 이야기가 나왔던 우씨 집 아들이 공모해서 벌인 일이라는 것을 알아낸다. 또한 우씨 집 아들이 독약을 어디서 구했는지 알아내고 해독약을 찾아내 쟈씨 일가족을 다시 살려낸다. 라오찬은 황런뤼의 도움 하에 '취환'을 속신시켜 첩으로 맞아들이고 이름을 '환취'로 바꾼 뒤 그녀의 형제들을 데리고 장난으로 돌아간다.
『라오찬 여행기』는 주인공 라오찬이 보고 느끼고 행동하는 바를 3인칭으로 서술한 여행소설이자 청 말 당시 사회를 비판한 견책소설2이다. 따라서 여러 개의 삽화를 구슬 꿰듯 이어서 쓰는 연철식3(連綴式) 구성을 사용하고 있는데, 이것은 청 말 번역소설의 영향 때문에 생겨난 소설의 새로운 기법이다. 또한 장회소설4, <삼국지연의>, <서유기> 따위가 있다.">(章回小說)의 형식을 취하고 있는데, 장회소설의 분절법(分節法)이 연재소설에 적합하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구체적인 사건 묘사보다는 작중인물의 대화를 통해 주제의식을 드러내는 견책소설의 특징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한 마디로 『라오찬 여행기』는 장회소설의 형식에 청 말 소개된 서양 소설의 새로운 구성기법을 가미해 중국 소설의 새로운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
이 작품은 라오찬이라는 주인공의 언행 경력을 기술했으나, 소설적인 구성은 취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속에는 청 시대 말기의 정치사회가 그 능란한 필치로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특히 청렴한 관리라고 자처하는 자가 실은 나라를 망친다는 것을 강조하는 점은 오늘의 우리가 유의해서 보아야 할 부분이다.
이 소설에서 회화(會話)의 구성이나 경치에 대한 서술도 전문적인 소설가와는 다른 특이함이 있고, 작중 특정 인물에게 저자의 이상(理想)을 묘사한 것이 있고, 그들과 현실 묘사가 주인공의 행동을 통하여 인상적으로 비쳐지고 있다.
이 소설은 소설 같지 않은 작품이지만, 작자의 순수성과 정열이 작품 전체에 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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