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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현대소설

체호프 단편소설 『귀여운 여인(Dushechka)』

by 언덕에서 2017. 2. 22.

 

체호프 단편소설 『귀여운 여인(Dushechka)』 

 

 

러시아 작가 체호프(Anton Pavlovich Chekhov.1860∼1904) 단편소설 중 가장 유명한 작품으로 잡지 [가정]의 1899년 1월호에 게재되었다. 『귀여운 여인』은 올렌카의 세 번의 사랑과 실패, 그리고 수의사의 아들 사샤에 대한 모성애를 그렸다. 여성다움의 본질을 순수하게 잘 간직하고 있으면서도, 주체성을 상실한 온순한 노예 같은 인물로 평가되고 있는 올렌 카의 모습을 섬세한 필치로 표현한 수작이다.

 체호프의 작품엔 극적인 사건이 거의 없다. 박진감 넘치는 셰익스피어의 작품과 비교하면 밋밋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하지만 지루한 일상을 살고 있는 인물들의 내면에선 치열한 갈등이 요동친다. 그 깊은 의식의 변화를 찾아 읽어내는 재미가 체호프 작품의 맛이다. 체호프의 작품은 대부분 4막으로 구성돼 있는데 그 흐름이 마치 교향악과 비슷하다. 1막에서 전체적인 설명을 하고, 2막에서 발라드풍의 진지한 이야기를 이어간 뒤, 3막에서 빠른 속도감으로 긴장감을 절정에 이르게 한다. 그리고 마지막 4막이 교향곡의 피날레 악장처럼 마무리된다. 체호프의 작품에 작가만의 논리가 저장되고 있기 때문이다.

 주인공 오렌카는 항상 누군가를 사랑하지 않으면 못 견디는 성격이다. 또한 누군가를 사랑하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를 닮아간다. 그가 생각하는 대로 생각하고 그가 좋아하는 것만 좋아한다. 사람들은 이런 오렌카의 사랑을 ‘여성만이 지닌 숭고한 행위’라고 칭찬한다. 그러나 과연 자신의 줏대를 잃는 것을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까? 덧없는 행복을 찾아 몇 차례 사랑을 하다가 볼품없이 늙어가는 가련한 여성의 처지를 그린 단편으로, 톨스토이도 극찬한 작품이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오렌카는 항상 누군가를 사랑하지 않고는 못 견딘다. 그래서 모두들 그녀를 ‘귀여운 여인’이라고 불렀다.

 첫남편은 극장주였다. 남편과 금술이 좋은 그녀는 주변인들에게 연극에 관한 이야기만 하고 다녔다. 그녀는 극장의 프로그램이나 출연하는 배우에 대해서 남편의 말을 다른 사람에게 그대로 옮긴다. 남편의 의견이 바로 그녀의 의견이었다. 그런 남편이 모스크바에 출장 갔다가 뜻하지 않게 죽고 만다.

 슬픔에 잠겨 있는 그녀를 이웃에 사는 목재소 주인이 위로해 준다. 이것을 계기로 친하게 된 둘은 결혼하게 되고 그녀는 이제 재목(材木)에 관한 이야기만 한다. 그녀는 이미 극장 따위에는 관심이 없다. 그러던 중 목재소 주인도 감기를 앓다가 죽고 만다.

 오렌카는 아내와 따로 살고 있는 셋집 주인인 수의사와 친해진다. 그녀는 이제 가축의 전염병과 건강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게 된다. 그들의 관계가 탄로 날까 봐 걱정이 된 수의사는 그녀에게 주의를 주지만 그녀는 말하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다. 얼마 뒤 수의사는 시베리아로 떠나고 그녀는 다시 혼자가 된다.

 아무것도 할 일이 없고 나이 들어 아름다움을 잃은 그녀는 다른 남자를 사귈 수가 없다. 그러나 그녀는 누군가 사랑할 대상을 찾아야만 한다. 그녀는 수의사의 아들 사샤를 데려다 키우며 그 아이만이 이제 그녀의 유일한 보람이라고 생각한다.

 

  오늘날의 페미니즘 문학은 이 귀여운 여인을 다른 견해로 대할 수도 있을 것이다. 홀로 서지 못하는 영혼, 철저한 타인지향의 정신을 여성해방의 전사들은 가장 못 견뎌 한다. 그런 이들에게 올렌까는 전혀 가망 없는 여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렌까는 틀림없이 사랑받는 여인의 전형이다. 미래야 어떠하건 체홉의 시대까지 아니, 지금까지도 남자들의 다수는 그녀 같은 여인들과 행복했다. 톨스토이 같은 거장이 네 번이나 읽은 것도 상큼하게 형상화된 그 전형성이 준 감동이 아니었을까. (<이문열 세계명작산책> 1126쪽에서 인용)

 이 작품은  '사랑만 있으면 살 수 있다' 또는  '사랑 없으면 살 수 없다' 는 극단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올렌카라는 여인에 대한 이야기다. 이 여자가 살아가기 위해서는 그녀의 몫까지 결정해줄 수 있는 사랑이 필요하다. 이런 모습은 극장에 관한 얘기가 남편이 바뀜에 따라 정 반대의 성향을 띄는 것이 한 예다. 결국 올렌카는 덧없는 사랑을 쏟다가 쓸쓸히 늙어간다. 작가는 상대방에 따라 바뀌는 주관적인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 작품이 발표될 때는 크림전쟁이 한창이었다. 작가는 크림전쟁에서 애매한 입장을 취했던 그리스의 모습을 풍자하는 듯하다. 그리스는 전쟁을 일으키면서 계속 입장을 바꾸었다. 쉽게 말하면 이리 붙었다가, 저리 붙었다가 했던 점을 지적하는 듯하다.

 또는 당시 러시아의 지배자였던 니콜라스 2세를 풍자했을 수도 있다. 니콜라이 2세는 선친의 정책을 계승하여 구체제 속에 제국을 보전하고자 했으나 혁명의 거센 파고 앞에 자신의 의지를 접을 수밖에 없었다. 1917년 2월 혁명으로 폐위된 후 감금생활을 이어가다 1918년 볼셰비키에 의해 예카테린부르크에서 가족과 함께 처형되었다. 그의 죽음으로 로마노프 왕조 시대는 막을 내리게 되었다.

 

 

 주인공 올렌가는 누구에게도 귀여움 받는 여인이었다. 첫 남편은 극장주인. 그녀는 남편과 그 직업을 사랑했고, 그 남편이 죽자 두 번째 결혼을 한다. 목재상 남편과 그 직업을 사랑한다. 이번에도 사고로 남편을 잃자, 세 번째는 유부남 수의사를 사랑했고 그 아들 사샤에다 온갖 정성을 쏟는다. 체호프는 이런 줏대 없는 여인에다 ‘귀여운 여인’이란 제목을 단다. 이에 대해 톨스토이는 “그게 진짜 귀여운 여인이다!”라고 격찬해 마지않는다.

 톨스토이는 구약 <민수기>(22~23장)를 인용한다. 발락의 뇌물을 받고 이스라엘을 저주하기로 나선 발람이 정작 나아가서는 저도 모르게 저주 대신 축복을 해버린 사건이 그것이다. 발람이 타고 간 나귀도, 그래서는 안 된다는 점을 알고 있는 판세인데도, 발람은 저주 대신 축복을 해버렸다. 그 나귀보다 어리석은 발람이 바로 체호프라는 것이다. 여성해방운동이 판을 치는 마당에 이와 정반대의 여인을 그렸다는 점이 이유일 듯하다. 곧 맹목적인 여성의 ‘자연성’. 이렇게 말한 톨스토이는 자기의 체험담을 이야기한다.

 연병장에서 말을 조련할 때 저쪽 구석에서 어떤 부인이 자전거 타기를 연습하고 있었다. 부인에게 방해되지 않기 위해 아주 조심한다는 것이 저도 모르게 그쪽으로 말을 몰아 결국은 충돌하고 말았다. 자기와는 정반대였지만, 체호프도 이와 꼭 같았다. 체호프는 『귀여운 여인』을 쓰러뜨리고자 마음먹고서 온 힘을 모아 노력했지만, 저도 모르게 거꾸로 축복한 결과에 이르렀다. 그러고 보면 어떤 이데올로기보다 소중한 것이 따로 있는데 그것은 작가의 마음의 흐름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