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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현대소설

투르게네프 중편소설 『첫사랑』

by 언덕에서 2017. 1. 26.

 

투르게네프 중편소설 『첫사랑(Первая Любовь)』

 

 

러시아 작가 투르게네프(Ivan Sergeevich Turgenev.1818 ~ 1883)의 자전적 중편소설로 1860년 잡지 [독서문고]에 발표되었다.

『첫사랑』은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와 함께 러시아 문학의 3대 거장으로 손꼽히는 투르게네프의 대표작이다. 한 여자를 사이에 둔 아버지와 아들의 삼각관계를 투르게네프 특유의 부드럽고 섬세한 필치로 그려내고 있으며, 등장인물들의 탁월한 심리 및 성격 묘사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청춘기의 싹트는 사랑을 정감 넘치는 필치로 그린 원숙기의 걸작이다. 

 열여섯 살의 주인공 블라지미르는 이웃에 사는 가난한 공작부인의 딸 스물한 살의 지나이다에게 홀딱 반한다. 지나이다는 개성이 강하고 적극적인 처녀로 자신을 숭배하는 뭇 남성들을 휘어잡아 자신에게 복종하도록 한다. 블라지미르는 그녀 마음에 들고자 온갖 노력을 기울이지만 그녀는 그를 사랑하지 않는다. 어느 날 그는 그녀의 애인이 따로 있다는 소리를 듣고는 야심한 밤에 칼을 품고 정원에서 연적을 기다린다. 그러나 뜻밖에도 그 연적이 자신의 아버지임을 발견하고 큰 충격에 휩싸인다. 자신의 미래가 망가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지나이다의 모습에서 블라지미르는 사랑의 신비와 공포를 느끼고 비로소 첫사랑의 열병에서 벗어난다.

 이성에 대한 어렴풋한 동경에 눈떠가는 소년의 순진한 마음이 아름답게 전개되며, 자서전적 요소를 보이는 작품이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16세의 ‘나’는 모스크바 근교의 별장에서 어느 여름밤, 별채에 이사 온 공작댁 딸 지나이다를 담 너머로 보고 반해버린다. 교만한 이 미소녀와의 교제를 금지한 어머니 몰래 그녀의 숭배자들과 사랑을 겨루어 그녀의 달콤한 키스를 받고 행복감에 도취되나, 그녀를 괴롭혀온 것이 자기 아버지였다는 것을 알고 놀란다. 즉, 소년은 공작의 딸 지나이다를 사랑하게 되지만, 어느 날 문득 지나이다가 자기 아버지의 애인이라는 것을 알면서 첫사랑은 어이없이 무너진다.

 아버지가 그녀의 하얀 팔을 채찍으로 후려치자, 관능의 노예가 된 유순한 그녀가 빨갛게 부르튼 채찍 자국에 천천히 키스하는 처절한 장면을 본다. 2개월 후 아버지는,  “여자의 사랑을 두려워하라”는 유언을 남기고 급사하였다. 

 소년은 또 많은 주변 사람 중에서 처자식이 있는 중년 남자를 택한 지나이다를 통하여 사랑이 가지는 불가사의함을 알게 되고 가슴아파 한다.  

 

 

 이 소설에선 블라디미르와 그의 아버지 사이의 관계가 꽤 흥미롭게 그려진다. 블라디미르를 아끼긴 하지만 자식에 대한 예의 그 이상의 사랑을 보여주지 않는 아버지의 캐릭터는 당시 러시아 귀족들의 보편적인 모습이랄 수 있겠지만 투르게네프 작가 본인의 삶에서 기인한 것이라는 것이 더 정확하다. 이 소설의 진실성은 작가의 현실에서 기반을 둔다. 사랑이 없는 결혼을 한 아버지, 어머니를 똑 닮은 아들을 사랑할 수 없는 아버지, 그런 아버지에게 더욱 촉각을 곤두세우는 어머니. 아이러니하게도 소설 속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들이 투르게네프에게는 현실이었으니 이런 소설이 탄생했다. 지나이다에게 진실로 사랑하는 대상이 생겼다는 것을 알고 살인까지도 불사하려던 청년은 그 상대가 누구인지를 깨닫고 모든 것을 접게 된다. 그 상대가 다른 사람이었다면 이야기는 통속극으로 흘렀을 것 같다. 그러나 그것이 자신이 사랑을 갈구해 마지않는 아버지임을 깨달았을 때 이야기는 바뀐다. 심지어 아버지를 미워할 수도 없다. 소설 안에서 나오는 아버지에 대한 묘사가 지나이다에 대한 묘사보다 더 치밀하다는 것이 이 작품을 읽는 포인트다.

 

♣ 

 

 이 작품에서 우리는 투르게네프의 깊은 사랑 철학과 탁월한 성격 묘사를 읽을 수 있다. 사랑은 불가항력적이고 맹목적인 힘으로 사람을 지배하고 사람에게 행복보다는 깊은 상처를 남기지만 그 누구도 독을 지닌 사랑의 행복과 그 상처를 피할 수가 없다. 사랑은 우연하고도 찰나적이며 인간의 정신적 육체적 성숙 과정에 영원한 영향을 준다는 그의 철학은 작품의 밑바탕을 이룬다. 더불어 모든 면에서 주변 사람들을 압도하고 뭇 남성들을 지배하면서도 한 남자에게 지배당하는 여인, 정열적이고 모순적인 지나이다의 형상이 여성 심리 묘사의 달인 투르게네프의 섬세한 펜 끝에서 생생한 빛을 발하고 있다. 사랑을 위해 4미터 담장 위에서 뛰어내리는 블라지미르의 무모함, 남자다움을 보여주기 위한 어처구니없는 행동, 나이프를 들고 깜깜한 정원에서 연적을 기다리는 블라지미르의 심리 역시 더할 나위 없이 섬세하게 그려진다.

 한 여자를 사이에 둔 아버지와 아들의 삼각관계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배경으로 한 속류 멜로드라마로 변질되지 않는다. 오히려 주인공 블라지미르로 하여금 첫사랑의 미혹에서 벗어나 성숙으로 나아가게 하는 계기가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첫사랑이 깨지는 지점에서 주인공은 사랑의 모순과 본질을 깨닫고 비로소 사랑의 열병에서 회복된다.

“내 아들아, 여인의 사랑을 두려워해라. 그 행복, 그 독을 두려워해라......”

아버지가 죽음 직전에 아들에게 남긴 이 말은 투르게네프가 독자에게 주는 사랑의 잠언으로 판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