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경일기(近頃日記)
1월 27일 금
연휴이기에 그간 읽다 만 책들 중 두 권은 한나절 만에 다 읽을 수 있었다. 여류 작가가 쓴 장편 소설로 제목은 하성란의 <삿뽀로 여인숙>과 전경린의 <검은 설탕이 녹을 때>이다.
전자는 소설의 개연성이란 면에서 스토리가 무책임하다는 느낌이 들었고, 후자는 과잉 감상이 과잉의 관념을 만든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그런 면에서 두 권의 소설은 과거 우리 세대가 만홧가게에서 빌려보던 무협지와 다른 점이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다독(多讀)만이 능사는 아니다. 책을 읽더라도 좋은 책을 읽어야 할 것이다.
내일이 설날. 아내의 요청으로 딸아이와 재래시장에 갔다. 방년 24세. 이제는 시집을 가도 이상하지 않은 다 큰 처녀다. 내가 어릴 때 어머니와 함께 갔던 시장이라고 하니 놀란다. 무엇을 사야 하고 어떤 것은 사서는 안 된다고 내게 말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 옛날 어머니의 모습과 아내의 젊은 시절을 떠올려 본다. 생각은 확장되어 지금의 내 모습도 먼 후일, 나를 그리워 할 누군가의 얼굴에서 남은 모습이라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1월 28일 토
설날 미사의 강론 시간에 새로 부임한 신부(神父)님은 자신이 본당 부주임(副 主任)신부라고 소개했다. 분향(焚香)하는데 어린 시절 앞집에 살던 동네 후배가 독서와 분향을 봉사하는 것을 목격했다. 백선종 경위님. 후배의 부친인 그분이 생각났다. 50대 후반에 불치의 병에 걸리셨다는 소문을 듣고 마지막으로 뵙기 위해 입원해 계신 병원으로 문안간 일이 있었다.
“나는 틀렸나 봐, 이제는 자네 아버지를 따라가야겠네.”
그때 내 나이가 군에서 막 제대한 스물다섯이었으니 세월은 화살처럼 흘렀다. 내가 이 나이 되도록 경찰에 대해 좋은 감정을 지고 있는 것은 그분의 영향이 크다. 이웃을 가족처럼 항상 따뜻하게 대하셨던 그분의 모습이 아들인 주성이의 얼굴에서 그대로 남아있다. 내 얼굴에서 아버지의 모습이 남아있을까? 내가 죽은 후 아들아이의 얼굴에서 나의 흔적을 찾을 수 있을까?
남은 오후 시간에는 KBS의 설날 특집 다큐멘터리를 재생해서 시청했다. 제목은 ‘멕시코 한류, 천 년의 흔적을 찾아서’ 이런 것이었다. 콜럼버스가 미주 대륙을 발견하기 전에 고조선 또는 고구려나 발해의 유민이 베링해협이나 쿠릴열도를 배를 통해 건너서 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갔다는 가설에 따라 이 다큐멘터리는 시작한다. 경주에서 발견된 신라 시대의 토우 중 개미핥기나 아즈테카 문명의 유물 중에서 태극 문양이나 신라인으로 추측되는 벽화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 데서 시작되는 내용은 흥미진진하기 짝이 없었다. 아주 잘 만든 한 권의 책을 읽은 느낌이었다.
1월 29일 일
어릴 적 죽마고우와 그의 딸과 3인이 통음하다.
친구 B는 여전히 머리를 길러 묶은 상태였고 따님은 내일모레면 서른이라며 자신의 나이를 다시 상기시키고 있었다. 도시샤대학(同志社大學)을 졸업한 후 동경에서 글로벌 기업에 근무 중인 여진은 사정에 가까운 부탁을 내게 하고 있었다.
“아저씨, 제발 우리 아빠 머리 당장 자르라고 야단 좀 쳐주세요. 누가 저 모습을 좋게 보겠어요?”
내가 대답했다.
“사는 게 얼마나 답답하면 머리를 저렇게 하고 다니시겠니? 그리고 하지 말라고 성화를 부리면 더 하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잖아.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네 아버지를 이해한다. 사회가 나를 배반한다고 해서 나마저 사회를 배반할 수는 없는 거잖아.”
1월 30일 월
지난주, 10년간 살던 집을 팔고 새집을 계약했다. 무엇보다도 한 동네에서만 반 백 년을 살았다는 것이 이사(移徙)의 결심을 굳히게 하였다. 넓은 집이 필요한 것도 이유 중의 하나다.
타지에서 직장을 얻을 줄 알았던 아들은 이 도시에 청(廳)을 둔 공직을 갖게 되었고 일본 유학 중인 딸 또한 귀국 후 대학원에 다녀야 하기에 향후 10년은 아이들과 함께 지내야 한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이다. 그간 묵묵히 지내주었던 두 아이에게 감사한다.
이사 갈 집은 시내 중심부의 넓은 공원을 끼고 있어서 탁 트인 시야가 마음을 편하게 만들었다. 계약이 끝나자 앞으로 살아갈 집에서의 장면을 상상하게 되었다. 여행은 여행이라는 행위 자체보다 여행을 준비하는 과정 자체가 더 즐거운 것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이사도 그런 듯하다. 살아보면 몇 달 만에 그 환경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게 되겠지만 준비하는 과정은 즐겁기 짝이 없다.
꽃이 피기 시작하는 사월, 아름답게 흐르는 오월의 맑은 햇빛, 성하의 녹음, 가을의 단풍, 뜰 안에 가득한 새 소리, 풀 향기, 나무 냄새……. 모든 것이 거룩한 축복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그곳에서의 생활이 불편해지면 지금의 이 기대를 온전히 기억해내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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