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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우정, 친구 사이의 정

by 언덕에서 2016. 12. 23.

 

 

 

우정, 친구 사이의 정 

 

 

 

 

 

 

 

 

1.

 

사소한 말다툼으로 헤어진 어린 시절의 친한 친구가 있었다. 젊은 날의 객기(客氣) 탓이었다. 주위 친구들의 권유도 있고 해서 다시 만나기로 했다. 무려 10년 만이었다.

 그의 얼굴에는 병색이 깊어 보였다. 소문을 들으니 갑상샘에 이상이 생긴 희귀질환으로 몸무게가 무려 50kg이 늘었다가 제대로 된 진단을 받고 치료를 시작한 후에야 체중이 빠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지나치게 살이 쪘다가 '쑥' 빠진 얼굴은 바람 빠진 풍선과 같아서 나이보다 늙어 보였고 주름이 지나치게 많아 보였다.

 10년 만의 해후였으니 그간 세월이 많이 흐른 것은 틀림없어 보였다. 1, 2분 정도의 어색함이 사라지니 금방 10년 전의 사이로 돌아간 느낌이 들기도 했다. 그 시절부터 둘이 만나면 하는 일이 술 마시는 것이어서 술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는 가방에서 약 봉투를 꺼내더니 한줌이나 되는 상당량의 약을 꺼내더니 술과 함께 삼켰다.

 “내겐 술도 약이잖아.”

 그렇게 해서 한 달에 한 번꼴로 2년가량을 만났다. 그런데 만날 때마다 난처한 일이 생겼다. 그는 내가 가장 싫어하는 행동을 하고 있었다.

 주사(酒邪). 전에는 전혀 그렇지 않았던 그는 취할 때마다 내게 시비를 걸고 있었다. 술로 인해 발생하는 불상사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술의 순기능을 옹호하는 사람이다. 스트레스를 삭혀주고 어색한 분위기를 완화해주며, 표현하기 어려운 진심을 나타내는데 그만한 기능을 가진 것이 있던가? 그러나 술의 효능을 제대로 이용하지 못하여 불상사를 만들어 패가망신하거나 타인과 원수가 되는 경우를 비일비재하게 목격하기도 한다.

 처음에는 그의 주사를 이해하려고 노력했으나 생각처럼 쉽지는 않았다. 눈에 보이지 않으면 멀어진다는 속담이 수긍이 갔고 10년이란 시간은 그것을 부채질했을 것이다. 그는 취할 때마다 이유 없는 인신공격과 모욕을 내게 가했고 심지어 그것을 즐기는 듯했다. 그때마다 나는 곤혹스러웠다.

 인내에 인내를 거듭하던 나는 그에게 공백기를 갖자는 취지의 문자를 보냈다. 즉시 답장이 날아왔다.

 

“나는 너보다 더 오래 살 거다!”

 

 이후로 그를 만나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허망하기 짝이 없는 내용이어서 나의 한 시절이 또 지나가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2. 

 

우정의 얘기를 하다 보면 우리는 흔히 관중(管仲)과 포숙(鮑叔)의 고사를 떠올리게 되지만 우정이란 그렇게 친구 간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비록 적일지라도 인격적인 의리를 지키고 그 의리의 두터움이 죽음을 초월할 지경에 이르면 그것은 오히려 한평생을 함께 사는 친구보다도 더 아름답고 귀하다.

 중국 삼국시대 말엽에 서로 국경을 마주 보며 싸워야 했던 진(晉)나라의 양우(羊祐)와 오(吳)나라의 육항(陸抗)이 바로 그렇다.

 어느 날 양호와 육항은 서로의 국경 지대에서 사냥하다가 공교롭게도 마주치게 되었다. 양호는 군사들의 기강을 더욱 엄히 하여 상대방에게 무례함이 없도록 하였으며 육항도 예를 다하여 양호를 대했다.

 사냥을 마치고 돌아온 양호는 육항의 군사들이 쏜 화살이 꽂힌 짐승은 모두 육항에 돌려보냄으로써 대장으로서의 고결한 품위를 보였다. 말이 쉽지 이를 갈도록 미워해야 할 적국의 장수에게 잡은 짐승을 되돌려 보냈다는 것은 양호의 인품이 어떠했으리라는 것을 짐작게 한다.

 양호로부터 의외의 선물을 받은 육항은 그의 인격에 깊이 감동하여 그대로 있을 수 없었다. 육항은 심부름 온 양호의 부하 편에 좋은 술을 한 병 보냈다. 술을 받은 양호가 그것을 마시려 하자 그의 부하들은 혹시 독(毒)이 들어 있지 않나 의심하여 마시지 못하도록 말렸으나 양호는 육항의 인품을 의심치 않고 그 술을 맛있게 마셨다.

 그런 일이 있은 지 얼마가 지나지 않아 문안차 양호를 찾아온 육항의 부하가 이르기를 육항이 병이 났다고 말했다. 병의 증세를 자세히 들은 양호는 자기가 먹던 약을 육항에 보냈다. 약을 받아든 육항이 그것을 먹으려 하자 혹 그 약에 독이 들어있지 않나 하여 부하들이 그 약을 먹지 못하도록 말렸으나 육항은 웃으며 그 약을 먹고 씻은 듯 병이 나았다.

 <삼국지>의 말미에 나오는 이 이야기는 요즘 세상의 우정이라는 것이 얼마나 삭막해졌는가 하는 것을 비교할 수 있다.

 

 

3. 

 

텔레비전에서 EBS - TV 외의 다른 채널을 보지 않는 편인데, 우연히 종편 방송을 트니 구순인 김형석(1920~ ) 교수가 출연하고 있었다. 젊은 시절, 선생이 쓴 책을 상당량 읽은지라 존경의 마음으로 노학자의 강의를 진지하게 들을 수 있었다.

 프로그램 중간에 채널을 돌린 것이어서 앞의 내용은 무엇인지 알 수 없지만, 노인으로 생활하는 긍정적인 사고나 행동에 관한 경험담을 강의 중인 것으로 여겨졌다. 그날 선생의 말씀 중에 잊지 못할 내용은 이랬다. 우정에 관한 이야기였는데 나이가 들수록 그 우정을 키우려 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어떤 측면에서는 애틋하고 또 어떤 측면에서는 슬픈 느낌이 들기도 했다.

 선생의 우정에 관한 경험담에는 자신과 함께 철학 교수로서 한 시절을 풍미한 동갑인 故 김태길(1920~2009) 교수와 故 안병욱(1920~2013) 교수가 등장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두 분이 모두 살아 있을 10년 전의 이야기인데, 어느 날 선생과 안병욱 선생은 세 사람이 이제 살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한 달에 한 번 정도 만나서 차라도 마시면서 우의(友誼)를 다지는 것이 어떠냐는 합의를 보게 되었다. 그래서 김태길 선생에게 전화해서 두 사람의 생각을 전하게 되었는데 김태길 선생의 의견은 나머지 두 분과 달랐다는 것이다.

 “우리 세 명이 그렇게 만나다가 한 사람씩 떠나면 남은 사람이 얼마나 힘들겠어요?"

 노교수는 말을 이어갔다.

 “이후 두 친구의 죽음을 겪으며, 집 식구가 떠나니까 집이 텅 빈 것 같은데 친구가 떠나니 세상이 빈 것 같아요. 괴테가 임종할 때 의식이 흐려져서 환상 비슷한 것을 보게 되는데 바람에 종이가 날아가는 걸 보더니 저거 쉴러의 편지인데 날아가는 것 아니냐며 걱정했다고 해요, 야스퍼스는 막스 베버가 떠나자 한 1년 동안 아무것도 못 했다고 하고…….”

 

 

4.

 

 부끄러운 고백을 해야겠다. 올해 중순에 친한 친구가 죽었다. 장례식에 참석하고 돌아온 며칠 동안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취중의 어느 늦은 저녁, 힘들었던 때문인지 그간의 심정을 카톡에다 적어 그에게 보냈다.

 “친구, 네가 세상을 떠나니 너무 힘드네…….”

 놀랍게도 폰에서 그가 나의 메시지를 받고 있다는 표시가 떴다. 아마도 그의 가족 중 누군가가 그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어서 그의 폰을 간직하기 때문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면 그의 영혼이 그런 현상을 만들었든지.

 <크눌프(Knulp)1>를 읽으며 받았던 감상들이 되살아났다. 애정도 우정도 가족의 인간관계도 모두 그에게는 속박의 상징이어서 이 모든 것을 떠나 자연 속에서, 가끔씩 만나는 사람들 속에서 떠돌아다닌다. 이러한 자유는 역으로 시민적인 행복이나 가족의 안온함을 포기한 데서 연유한 것이어서, 주인공이 인생을 마감할 무렵이면 쓸쓸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작가는 신과의 합일(合一)이라는 설정을 통해 그에게 따뜻한 시선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인생은 얼마나 짧은가.

 

  1. 독일의 작가 헤르만 헤세(Hermann Hesse)의 소설. 1915년에 발표되었다. 3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서정적인 작품이다. 헤르만 헤세의 전작품에 일관되게 흐르고 있는 방랑벽과 회향심(懷鄕心)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특히 고독한 방랑자의 모습을 선명하게 그려 젊음이 결코 충동적인 낭만만이 아님을 젊은 독자들에게 일깨워주는 아름답고 감동적인 소설이다. 작품의 부제 ‘크눌프 삶의 세 이야기(Drei Geschichten aus dem Leben Knulps)’처럼 ‘초봄’, ‘크눌프에 대한 나의 회상’, ‘종말’이라는 세 편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작가의 고향인 남독일을 배경으로 전개되는 이 이야기들은 예시적 상황이나 다양한 관점을 통해 방랑자 크눌프의 삶과 성격을 보여준다.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이지만 크눌프에게는 배신당한 사랑의 상처, 어린 아들과의 생이별, 부모님에 대한 죄책감이 있다. 주인공 크눌프에 관해 헤세는 1935년 어느 독자에게 보낸 편지에서 “크눌프 같은 인물들이 저를 사로잡습니다. 그들은 ‘유용’하지 않지만 해롭지도 않습니다. 유용한 인물들보다는 훨씬 덜 해롭지요. [...] 만약 크눌프처럼 재능 있고 영감이 풍부한 사람들이 자신들의 세계에서 자리를 찾지 못한다면, 크눌프뿐만 아니라 그 세계에도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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