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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어디에 계십니까?

by 언덕에서 2017. 1. 12.






어디에 계십니까?







1. 오발탄


고속버스 터미널 행 시내버스를 탄 적이 있다. 가는 도중 정거장에서 할아버지 한 분이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창밖을 내다보니 연세가 여든은 넘어 보이는데, 머리부터 옷까지 희다 못해 새하얀 느낌을 주는 노인이었다. 바람이 불면 바스러질 것 같은 기분마저 들었다.

 버스기사는 기력이 없어 온몸을 떨며 버스에 오르는 할아버지가 버스에 안전하게 탈 때까지 끈기 있게 기다리고 있었다. 버스 위로 오르는 걸음 하나하나가 후들거려서 보는 이 또한 힘들게 만드는 장면이었다. 버스 문에서 버스 안까지 이동하는 데에 2분 이상이 걸렸다. 버스기사가 물었다.

 “할아버지, 어디까지 가셔요?”

 “남포동……. 갑니다…….”

 그러니까 할아버지는 버스를 잘못 타신 것이다. 버스가 가는 목적지는 그 반대편이었기 때문이다. 길 반대편의 정류장을 오인하신 것이었다. 뭔가 심상치 않음을  직감한 버스기사는 다시 물었다.

 “할아버지, 남포동은 왜 가세요?”

 “몰라……. 그냥 가야할 것 같아서…….”

 버스기사 뒷자리에 앉아 있던 중년의 남자가 내리려는 할아버지를 부축하여 안전하게 내리게 했다. 이번에도 버스기사는 끈기 있게 기다려주었다. 그 두 사람이 아니었더라면 그 할아버지는 그날 어떻게 되었을까? 나의 자책감은 더해 갔다. 그 순간, 경찰에 신고를 해서 안전 귀가토록 조치해야 함을 간과했기 때문이다. 할아버지는 도시 속의 미아가 되지 않았을까? 할아버지의 가족은 어찌하여 그런 외출을 방치하였을까?



2. 경로석


모 대학교 사회교육원에서 사진을 배우면서 동학(同學)으로 친해진 분이 있다. 그는 ‘파리바케트’로 유명한 제빵회사의 중역 출신으로 작년에 칠십을 넘긴 분이다. 사진 수업이 끝나고 귀가할 때는 항상 함께 전철을 타게 된다. 그날 수업이 밤늦게 끝났음에도 전철 안에는 앉을 자리가 없었다.

 갑자기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윤 선생, 여기 와서 앉아요!”

 돌아보니 그는 전철 내의 ‘경로석’에 자리 잡고 있었다. 열차 내는 붐볐으나 경로석은 텅 비어 있었던 것이다.

 “어유, 제가 어떻게 그 자리에 앉습니까? 연세가 된 분들이 앉아야지요.”

 “하하, 뭘 모르시네. 이 시간에 경로석은 항상 비어있어요. 앉을 사람들은 모두 집에 가고 없거든. 노인들은 저녁 되면 모두 집에 가요. 전철에서 유독 노인이 낮에 많은 것은 다 이유가 있어요.”

 그랬다. 나이 많은 분이 보이면 얼른 양보해야지 하며 경로석에 앉았는데 여섯 정거장 후 내릴 때까지 경로석에는 앉은 이는 우리 두 사람 외에 아무도 없었다.

 그분 이야기를 들으니 낮에는 하릴 없이 전철을 몇 호선 돌며 하루를 소일하는 노인들이 부지기수라는 것이다. 그는 말을 이었다.

 “부산진역 앞에 가면 무료급식소가 있어요. 오전 열한시부터 배식하거든. 다들 전철 타고 한바퀴 돌다가 그곳에서 밥 먹곤 하지요. 친구 때문에 나도 그곳에서 밥 먹어 본 적이 있어. 하하.”



3. 여성 배려칸


그날, 오후 5시임에도 불구하고 전철은 앉을 자리가 없었다. 행여 자리가 있을까 하고 둘러보는데 놀라운 것은 그 시간 전철을 탄 사람 대부분이 5~70대였다는 거다. 이상하리만큼 젊은 사람은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발견할 수 없었다. 전철 출입구 문에는 ‘이 칸은 여성을 위한 여성 배려칸’입니다‘라는 문구가 붙어있었다.

 한 정거장을 지나자 젊은 새댁이 어린 아기를 포대기를 돌려 앞으로 안고 탔다. 빈자리가 없었으므로 한손은 전철 손잡이를 잡고 다른 한손으로는 칭얼거리는 아기를 달래고 있었다. 귀엽기 짝이 없는 아기는 돌이 갓 지났을까?

 그런데 새댁 앞뒤로 앉아 있는 그 많은 사람 중 그 어느 한 사람도 자리를 양보하지 않았다. 무슨 이유일까 생각하며 나는 좌석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살펴 보았다. 모두가 6~70대였다. 그들의 속내를 내 방식대로 해석하자면 이렇다.

 ‘아기를 안은 새댁 자네는 힘들겠지만 나이 많은 우리도 자리 양보하기란 쉽지 않은 것이라네. 이 나이에 서서 가면 힘들거든. 우리도 젊었을 때 그런 고생 많이 했으니 자네도 잠시 참아보게.’

 심리학에는  ‘집단심리’라는 측면에서 옳은 일을 행하려 하다가도 대다수가 침묵을 지키면 행하려는 행동을 포기하고 다수와 동조하는 현상을 지적한다. 그날 전철에 앉아 있던 대다수의 노인도 그랬던 것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여섯 정거장. 어쨌든 그날 그 새댁은 계속 서서 가야만 했다.



4. 어디에 계십니까?


우리 옛 정신의 상징, 은성했던 시절의 흰 수염 드리운 수호부였던 그 시절의 할아버지들. 춘삼월 꽃그늘에서 통음에 젖으시고, 잎 지는 정자에서 율을 지으셨다. 유묵을 논하실 때는 인간에 계셨지만, 노장을 설하실 때는 무위에 노니셨다.

 당신들의 성성한 백발은 우주에 대한 심원한 이해와 통찰을 감추고 있었으며, 골 깊은 주름과 형형한 눈빛에는 생에 대한 참다운 예지가 가득 고여 있었다. 가지지 못하고 약한 자를 배려하고, 겸손을 강조하였으며 예의와 품위를 잃지 않으셨다. 지켜야 할 것에 엄격하셨고, 노해야 할 것에 거침이 없으셨다. 한번 노성을 발하시면 마른하늘에 벽력이 울렸으며 높지 않은 어깨에도 구름이 넘실거렸다.

 그런 당신들을 우리 모두는 존경하였고, 그 말씀에 수긍했다. 아침에 일어나 절하며 뵙고, 거리에서 만나면 두 손을 모았다. 주무실 때 절하며 물러나고, 길은 멀리서부터 읍(揖)하며 비켜섰다. 그러나 이제 그런 당신들은 모두 사라졌다.

 작금의 시정(市井)에는 보호받지 못하고, 갈 길 없으며, 경우(境遇) 없는 노인들만 눈에 띈다. 누가 이렇게 만들었는가. 그 시절의 할아버지들, 어디에 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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