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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야기

2.28사건과 영화 <비정성시(悲情城市), A City of Sadness>

by 언덕에서 2016. 9. 8.

 

 

2.28사건과 영화 <비정성시(悲情城市), A City of Sadness>

 

 

 

 

 

 

 

<비정성시>는 1989년에 타이완 출신의 허우샤오셴(侯孝賢) 감독이 만든 영화로 우녠전(吳念眞)·주톈원(朱天文)이 각본을 쓰고 량차오웨이(梁朝偉)·우이팡(吳義芳)·신수펀(辛樹芬) 등이 출연하였다. 한 시대의 정치·사회 이념의 갈등이 한 가족에게 영향을 미친 결과에 대한 기록이기도 하다. 제목을 해석하면 '비정한 도시' 정도로 설명할 수 있는데, 영어로 번역한 것은 'A City of Sadness'로 '슬픔의 도시' 로 해석할 수 있다. 이 도시에 슬픈 일이 일어난 것은 무엇일까?

 1945년 8월 일본 천황의 항복 선언 이후 중국에서는 마오쩌둥(毛澤東)의 공산당과 장제스(蔣介石)의 국민당이 내전을 벌인다. 타이완의 남부 도시 가오슝을 중심으로 한 대만인의 독립운동을 국민당 정부가 무차별 진압하여 3만여 명의 사상자를 낸 처참한 2·28사건이 일어난다.

 허우샤오셴 감독은 1945년에서 1949년까지 이 비극의 현대사를 한 타이완의 가족을 통해서 바라보았다. 이 작품은 타이완의 토착민인 내성인1(內省人)과 대륙 출신 외성인2(外省人) 간의 극한 대립 속에서 한 외성인(外省人) 임씨 가족의 비극을 담은 영화로, 임씨의 막내아들 문청과 아내 관미의 시점에서 전개된다.

 이 영화는 이 시기를 보내는 임씨 가문이 겪는 비극을 그린 시대물이다. 임아록의 네 아들은 성격과 직업은 다르지만 모두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죽거나 미쳐버린다. 가족사와 대만 역사를 교차시킨 수작이다. 1989년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최우수작품상인 산마르코 황금사자상 수상. 1989년 제26회 금마장영화제 감독상, 남우주연상. 68회 칸영화제 감독상 수상. 부산국제영화제(BIFF)가 선정한 '역대 아시아 영화 100' 중 5위에 선정.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1945년 일본의 무조건 항복 소식이 전해지는 라디오 뉴스가 들리는 가운데 한 아이가 태어난다. 대만이 51년간의 일제 식민통치에서 벗어나는 날, 임아록 가문은 장손을 얻는 경사까지 겹쳐 두 배의 기쁨을 누린다.

 임아록은 네 명의 아들을 두었는데 장사를 하는 첫째 문웅과 셋째 문량은 상하이조직의 권유로 쌀과 설탕 밀수에 손을 댄다. 의사인 둘째 문상은 일본군에 끌려간 뒤 소식이 끊겼다. 귀머거리에다 벙어리인 넷째 문청(양조위 분)은 선량한 인물로 사진관에서 일한다. 문청은 친구인 지식인 청년 관영이 도모하는 반정부 활동을 지원하며 자신도 나라를 위해 일하고자 한다.

 1947년 대륙인(外省人)과 대만인(內省人)이 충돌하는 2·28사건이 발생하고 관영은 대정부 투쟁을 위해 가오슝에서 타이베이로 떠나게 된다. 대륙에서 건너온 국민당 정권의 부패는 날로 심해지고 물가는 천정부지로 치솟아 국민들은 이중, 삼중고에 시달리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문웅과 문량은 일제에 협력했던 전력 때문에 고발당해 체포된다. 문웅은 석방되지만 조직싸움에 휘말려 칼을 맞고 사망한다. 문량도 석방되나 미쳐버리고 다시는 제정신을 찾지 못한다.

 소식이 끊겼던 둘째 문상은 결국 사망한 것으로 밝혀지고 가족들은 그의 유언이 적힌 천 조각을 받게 된다. 가족들의 비극에 절망하고 시국에 환멸을 느낀 문청은 반정부 활동에 참여하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관영은 문청에게 생업에 충실하라고 조언하며 동생 관미를 부탁한다. 간호사인 관미는 오래전부터 오빠 친구인 문청을 좋아해왔다. 문청은 관미와 결혼하고 관영이 속한 단체에 비밀리에 자금을 대주며 생활한다. 문청과 관미 부부는 아들을 낳고 짧은 행복을 누리지만, 관영의 조직이 검거되고 문청까지 체포되어 생사를 알 수 없게 된다. 문청에게는 관미와 갓 태어난 아기가 남는다.

 

 

 


 1947년 2월27일, 국민당의 전매국 소속 사복 감시반과 경찰이 타이베이 시내에서 불법으로 담배를 밀매했다는 죄목으로 한 여인을 구타한다. 사소한 사건이었지만 경찰이 옆에서 그 광경을 보다가 항의하던 대만인들을 총으로 사살하면서 사태는 갑자기 확대되기 시작했다. 28일에는 타이베이시 전역에서 파업과 철시 및 데모대의 시위가 시가지를 휩쓸었고, 국민당의 병영과 비행기장, 시정부 및 국민당 당 지부들이 공격당한다. 그러자 국민당은 본토의 국민당 군대를 급거 파견해 피비린내 나는 탄압을 자행했다. 같은 해 3월8일부터 개시된 대토벌 작전에서 도합 2만여 명의 본성인, 즉 대만의 토착민들이 학살됐다.

 <비정성시>는 이 같은 피비린내 나는 대만 역사와 그 그늘에 묻힌 슬픈 도시, 처연한 가족사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영화의 주인공인 문청은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극단적인 설정이긴 하나 대만의 민중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캐릭터다. 부패한 정권에 탄압받고 착취당하지만 제대로 항의하지도 못한 채 억눌려 살아온 대만 민중의 처지가 문청과 같다. 모진 풍파를 묵묵히 견딘 문청은 임아록의 네 아들 중 가장 무난하고 평화로운 삶을 살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문청마저 당국에 체포되어 끌려가는 모습은 행복한 결말을 용납하지 않는 정치 현실의 비정함을 증명한다.

 

 

 

 


 문청과 문청의 친구인 오관영, 동생 오관미 등은 외성인 국민당 정권과 투쟁을 벌이는 본성인 지식인들이다. 그들은 청나라가 대만 민중의 뜻을 거슬러 시모노세키조약을 맺더니 이제는 무능한 국민당이 대만과 주민의 삶을 결딴내려 든다고 규탄한다. 본성인들은 장개석의 국민당 정권이 부패를 일삼고 대만을 실업과 고물가의 지옥으로 몰아넣을 거라며 일본의 바통을 이어 통치자가 된 외성인 국민당 세력을 성토한다.

 갈등과 긴장이 고조되던 끝에 결국 밀수 담배팔이 노인의 사망사건이 도화선이 돼 1947년 2.28사태3라는 정부 보고서를 통해 공식화했다. 희생자가 3만명에 달한다고 추산됐다. 허우 샤오시엔 감독 연출과 양조위 주연의 1989년작 영화 <비정성시(悲情城市)>는 2·28 사건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valign="top">가 발생한다. 2.28사태는 말할 것도 없이 본성인 중심의 대만인에 대한 외성인 국민당군의 폭정이 빚어낸 참극이다. 하지만 비극의 싹은 국민당이 일본으로부터 정권을 넘겨받는 순간부터 발아하기 시작했다. 반 국민당 투쟁조직에 자금을 대던 문청은 투쟁 동지 오관영과 함께 체포돼 어디론가 끌려가서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남편 문청과 잠시나마 행복한 결혼 생활을 꾸렸던 오관미의 삶도 또다시 먹구름에 뒤덮인다.

 린씨 가문의 첫째 아들 문웅은 셋째 문량이 연루된 밀수조직과의 다툼 도중 사망하고, 실종됐던 둘째에게선 끝내 사망소식이 날아온다. 이 부분은 본성인 대만인들의 삶은 점점 암울해지고, 대만은 일본 지배 하에 있을 때 보다 오히려 더 슬프고 비참한 도시로 전락해감을 의미한다. 1949년 10월 공산당이 대륙을 접수하고 국민당 정부가 대만으로 쫓겨 와 타이베이에 임시정부를 수립하면서 대만은 완전한 외성인 세상이 된다.

 

 

 

 

 감독은 한 가족을 통해 격동의 타이완의 현대사를 보여주며, 역사의 진실과 인간이 역사 속에서 겪는 슬픔을 독특한 화법으로 이야기한다. 그 직관적인 감각은 삶을 영화로 기록하는 현대의 역사가가 되고 싶은 소망을 이루기 위해 영화 속에 또 하나의 벽을 만드는 듯하다. 그리하여 관객은 감독에 의해 제시된 또 하나의 눈을 통해 영화를 보게 된다. 카메라의 호흡이 길고, 사실적인 조명 아래 생략 기법을 써서 등장인물의 심리가 사실적이고 세밀하게 그려진 수작이다.

 

 

 

 

 

  1. 2015년 7월 현재 대만 인구의 98%는 한족(漢族)이다. 대륙에서 이주해온 이들이 대다수인 셈이다. 애초부터 타이완에 살고 있던 원주민 비율은 2% 정도에 불과하다.한족은 ‘본성인’과 ‘외성인’으로 나뉜다. ‘본성인(本省人)’은 초기 이주자들이다. 명나라나 청나라 시절 대만에 건너와 터전을 잡았다. 이들의 비율은 전체 인구의 84%를 차지한다. [본문으로]
  2. '외성인(外省人)’은 장제스의 중국국민당 정부가 중국공산당에 패하면서 대만으로 밀려온 1949년 전후에 대만으로 함께 건너온 사람들을 일컫는다. 이들은 전체 인구의 14% 정도를 차지한다. 상대적으로 교육과 소득 수준이 높은 외성인들은 인구가 적음에도 중국국민당 정부가 정권을 장악하면서 고급 관리직 대부분을 차지하는 등 기득권층을 이뤘다. 게다가 1947년 발생한 2.28 사건을 계기로 본성인과 외성인 간의 갈등은 극에 달했다. [본문으로]
  3. 대만 현대사의 가장 비극적인 사건이다. 일본의 식민지배 이후 공산당에 쫓겨와 대만 통치를 시작한 국민당 정부는 정부의 허가없는 담배 판매를 금지했다. 하지만 1947년 2월27일 타이베이에서 밀수 담배를 판매하던 린쟝마이(林江邁)라는 여성이 공무원에게 단속되면서 소총 개머리판으로 심하게 가격당해 중상을 입었다. 주변 시민들이 항의하자 공무원은 발포했고, 본성인 학생 한 명이 사망했다. 2월28일 분노한 군중들이 봉기했고, 경찰서를 공격했다. 군과 경찰은 시위대를 향해 기관총을 발사했고,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시위가 전국으로 확대되면서 국민당 정부는 사태를 진정시키길 원했고, ‘2.28 사건 처리위원회’를 구성했다. 처리위원회는 공정하게 사건을 조사하면서 시민들의 지지를 얻었고, 대만의 자치와 인권보장을 요구하는 ‘32개조 요구’를 내밀었다. 하지만 3월8일 대륙의 국민당 군대가 대만에 도착했고, 대대적인 유혈 진압이 시작됐다. 처리위원회 인사들이 상당수 처형됐고, 본성인들도 대대적으로 학살당했다. 학살은 5월까지 진행됐다. 이 사건은 이후 40년 가까이 언급되지 못하다, 1992년에 이르러서야 <2.28 사건 연구 보고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