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상대 장편소설 『나쁜 봄』
심상대(沈相大, 1960~ )의 장편소설로 네이버 웹소설’에 연재(2013년 5월~7월)되었고, 2014년 [문학과지성]사에서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다. 『나쁜 봄』은 이상향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을 거슬러 쫓는다. 이상향인 그곳에서는 구성원인 개인이 상상을 해서는 안되고 가족을 가져서도 안된다. 그렇다면 그곳은 낙원일까? 작가는 개인과 욕망이 억압된다면 과연 그곳이 낙원일 수 있는지를 묻고 있다.
『나쁜 봄』은 작가의 등단 25년 만에 쓰인 첫 장편소설이다. 작가는 무엇보다도 소설 속 17만3000여자 안에 의존명사 ‘것’을 한 번도 쓰지 않았다는 데 감격스러워했다. ‘탐미주의자’로 불리는 그는 “문장을 다루는 사람으로서 가장 중요한 건 유희다. 문학의 진수는 철학이나 기법보다 말을 가지고 논다는 데 있다”고 말했다. 2015년 [동인문학상] 본심 후보작, 2016년 제21회 [한무숙 문학상] 수상작이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이야기의 배경은 한국적인 분위기의 공간을 가진 시간이 정해지지 않은 흥미로운 이상향이다. 이곳은 미남미녀만 살고 나이에 관계없이 해마다 배우자를 바꿀 수 있는 고을이다. 아이들은 태어나자 말자 고을 공동으로 키워지고, 누구나 원하는 직업을 택할 수 있다. 집과 땅, 음식은 함께 소유하며 모두 180살 가까이 장수하는 풍요로운 땅이기도 하다. 어느 날 이곳에서 살인사건이 벌어진다.
고을에는 권력 기관이 없으나 원로 몇 명이 동네 대소사를 의논해서 결정해왔다. 고을 사람들은 해마다 봄이면 ‘광증(狂症)’에 휩싸인 남녀 한 명씩을 찾아내 처형해 왔다. 광증을 판단하는 기준은 우리가 아닌 ‘나’를 상기하는 모든 것이다. 내 부모가 누군지 알려고 해서는 안된다. “생각과 정신의 부패한 현상”인 상상력, 이야기와 예술 작품을 만드는 창작욕, 낳아준 이에 대한 호기심 모두 광증으로 분류되는 금기다. 고을이 생긴 초기에는 이성과 재물에 대한 독점욕이 주된 광기였는데 그 내용은 갈수록 관념적으로 변해갔다. 이번 봄에는 정기 처형에 앞서 역사를 기록하는 사관 부부가 살해되는 사건이 생기면서 고을의 혼란이 깊어진다.
고을의 지도자 중의 한 사람인 도서관장과 수사관에 임명된 사냥군은 범인을 찾아 나선다. 여러 증거를 확인하던 차에 사관 수업 중인 청년 금잠이 범인임을 밝혀내고 그를 체포하여 화형(火刑)에 처한다. 금잠은 그간 자신의 ‘아버지’가 누구인지를 끊임없이 알려고 했다는 것도 밝혀진다.
화형으로 불꽃과 연기가 드높아질 때 도서관장은 자신이 잊고 있던 아버지라는 존재를 느끼며 ‘아버지’라고 혼자서 중얼거린다. 여기서 소설은 끝난다.
이 소설『나쁜 봄』은 언뜻 ‘개인을 억압하는 이상적 공동체가 가능한가’라는 오랜 주제를 다루는 것처럼 읽힌다. 그러나 오히려 소설은 ‘너 자신을 알라’는 경구의 의미에 대한 이야기로 보인다.
작가가 만든 ‘우리 고을’이 이상 사회가 아니라면 그가 생각하는 낙원은 어떤 곳일까? 그는 모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가장 행복한 곳은 우리가 사는 대한민국 여기”라고 말했다. 그는 “여기도 문제가 있지만 현실을 떠난 유토피아도, 메시아도 모두 존재하지 않는 꿈일 뿐이다. 단지 우리가 꿈을 꾸듯 조금씩 바꿔 나가야 한다”며 “우리 사는 곳이 유토피아가 아니지만 그래야만 하기에, 문학의 상상력이 유용한 것”이라는 것이다.
작가에 의하면 ‘~것’을 안 쓴 건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그만의 문장이다.
"구체적인 명사나 형용사를 통해서 문장의 사실성을 강화해야 진짜 문장가지, ‘이것저것’ 하는 건 삼류 문장이라고 생각해왔어요. 완결성이나 주제보다도 언어의 유희를 펼쳐 보인 작품을 첫 장편으로 냈다는 데 자부심을 느낍니다. 세종대왕이 한글 창제한 뒤 600년 만의 특별한 쇼라고 생각합니다.”
작가가 공들여 쓴 고답적인 문장에는 우리 고을만의 명사들이 녹아 있다. 소설 속 사람들의 이름은 담을 다 쌓았을 때 태어나 ‘화담끝’, 태어난 지 달포째 새근새근 잠만 자 ‘금잠’, 물이 범람하던 때 태어나 ‘수청수’라는 식이다. <경향신문 2015. 1/16>
♣
이 작품은 비현실적인 마을, 그곳에서 벌어지는 일을 다루는데, 현실공간에서 벌어지는 일과 크게 다르지 않다. 20대와 100살이 넘은 노인과의 결혼. 그것도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사는 것이 아니고 시효를 두고 결별을 하고 새로운 결혼을 한다. 이 점만 현실세계와 다르다. 그 외에 공통점은 넘친다. 지도자로 보이는 인물의 정보 독점, 배타성, 폭력을 통한 권력 유지, 다부다처에 대한 욕구, 동해보복법(同害報復法) 시행...
내용 중 무엇보다도 인간의 삶이 부모가 없어도 살아갈 수 있다고 설정한 것은 두려움을 안겨준다. 권력을 위해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을 처형해야 하는 점. 권위를 위해 폐쇄된 사회를 꾸려야 하는 점도 현대의 우리와 다르지 않다. 새로운 정보에의 접근을 철저하게 막고. 지금 이대로 영원히 만을 외치는 지도자도 그렇다. 정보의 공유가 폐쇄된 사회를 무너뜨린다고 여기는 생각은 북한의 정치체제와 일맥상통하기도 한다. 그러나 소설 속 인물들에 대한 명명, 자신의 특기만 가지고 살수 있는 상황 등은 깨알 같은 재미를 준다. 뭐든 만능이 되어야 한다는 우리 교육을 비판하고 있음이 틀림없다. 사고(事故)에 대한 추리과정도 끈끈해 읽는 재미가 있다. 그러나 부모 없이 생겨난 개인은 존재할 수 없다.
이 소설 『나쁜 봄』은 디스토피아1를 설정하고 이를 바탕으로 현 세계를 통렬하게 반추하고자 하는 작가의식이 드러난 작품이다. 초반의 사건을 매 장과 연결시키면서 마지막까지 긴장을 늦추지 않게 하는, 대단한 인내를 요구하는 서술을 끝까지 견지하고 있어 읽는 재미도 크다.
- 현대 사회의 부정적인 부분이 극단적으로 확대되어 초래할지도 모르는 미래의 모습.디스토피아(Dystopia)는 유토피아와 반대되는 가상사회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 사회는 주로 전체주의적인 정부에 의해 억압받고 통제받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이 단어는 존 스튜어트 밀의 의회 연설에서 처음 쓰인 단어이다. 존 스튜어트 밀은 그의 그리스어 지식을 바탕으로 이것이 ‘나쁜 장소’를 가리키는 말이라고 언급했는데, 이것은 dys(나쁜)와 topos(장소)가 결합된 단어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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