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한국 현대소설

박민규 단편소설 『갑을고시원 체류기』

by 언덕에서 2016. 8. 9.

 

 

 

박민규 단편소설 『갑을고시원 체류기』

 

 

박민규(1968~ )☜의 단편소설로 2005년 출간된 소설집 <카스테라>에 실려 있다. 박민규는 소설집 <카스테라>로 2005년 [신동엽 창작상]을 받았다. 경남 울산 출생으로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졸업한 작가는 2003년 소설집 <지구영웅전설>로 제8회 문학동네신인작가상, 같은 해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펜클럽>으로 제8회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했다.

 작가 자신이 밝힌 바에 의하면 커닝으로 대학에 입학했고, 졸업한 뒤 해운회사 영업사원ㆍ카피라이터(3년 동안 유일하게 히트한 카피는 '왕입니다요'하는 라면 광고 문구란다)ㆍ잡지사 편집장을 거쳤다. 그러다 마이크 타이슨이 홀리필드의 귀를 물어뜯는 경기를 지켜보다가 "갑자기 소설이 쓰고 싶어서" 작가가 되었다고 한다. 마지막 직장을 그만두고 2년 6개월 동안 칩거하여 서른 편이 넘는 작품을 썼다.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으로 한겨레문학상(2003), <직수영웅전설>로 제8회 [문학동네 신인작가상](2003), <카스테라>로 [신동엽창작상](2005), <누런 강 배 한 척>으로 제8회 [이효석문학상](2007), <근처>로 제9회 [황순원문학상](2009) <아침의 문>으로 제34회 [이상문학상](2010) 등 우리 문단에서 존재하는 대부분의 문학상을 수상했다.

 소설의 배경은 1991년의 봄이다. 주인공은 대학교 2학년생으로 친구 집에 기숙하다 어느 날 친구 집을 떠난다. '이사'도 아닌 '이동'에 가까운 간단한 짐을 들고 거처로 선택한 곳은 월 9만 원에 식사제공이 되는 갑을 고시원이다. 그는 그곳이 단 한 푼의 보증금도 없는 자에게 어두운 세상을 밝혀주는 한 줄기 빛과 같다고 여겼으나 막상 들어가 보니 생각이 바뀐다. '방'이라기보다는 '관'이라고 불러야 할 공간이다. 도저히 다리를 뻗을 수 없는 공간에 책상과 의자가 놓여 있고, 그 곳에서 공부를 하고 자기 위해서는 의자를 빼서 책상에 올려야 하는 사이즈의 방이었기 때문이다. 벽이 아닌 칸막이에 가까운 것이 방과 방을 나눈 곳에서 그는 발뒤꿈치를 들고 걷는 것이 생활화됐고, 코도 푸는 게 아니라 치약을 짜듯 눌러서 조용히 짜는 습관이 생기는 등 소리 없는 사람이 돼야만 했다.

 이 소설 『갑을고시원 체류기는 청년 세대가 느끼는 절박한 현실을 가벼움과 무거움, 감정의 비약 등을 소재로 표현하고 있다. 노력을 해도 출구가 없는 현실을 풍자하는 부분은 가볍지만 무거운 여운을 남긴다.

 

소설가 박민규(1968~ )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1991년 봄, 아버지의 사업이 부도를 맞았다. 집은 사라지고 가족은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다. 삼류대학 학생인 ‘나’의 생활공간은 월 9만원에 식사까지 제공하는 ‘갑을 고시원’이 되고 말았다.

 내가 사는 갑을고시원은 얕은 베니어로 나뉜 칸칸마다 사람들이 들어차 있다. 이곳에서 상체와 하체를 동시에 움직이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리를 마음껏 뻗을 수 없으니 몸은 뭉치고 점점 나무처럼 딱딱해진다. 하지만 그 속에서 다들 소리를 죽여 가며 방귀를 끼고, 잠을 자고, 생각을 하고, 자위를 한다. 그렇게 살아간다. 생각할수록 하나의 장관이, 뭔가를 통해 존재하고, 비릿하고, 술렁이는 느낌이다.

 나는 이러한 고시원 생활에서 “인간은 결국 혼자라는 사실과, 이 세상은 혼자만 사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 ”동시에 '갑자기 어른이 된' 기분에 젖는다. 고시공부를 하는 옆방 ’김 검사‘의 신경을 건드리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방귀를 참아가며 지내야 하는 나의 노력은 슬프면서도 우습다. 그것은 삶의 비애가 드리워진 웃음이다.

 2년 6개월의 고시원 생활 이후 나는 졸업을 하고, 취직을 하고, 결혼한다. ‘운이 좋아서’ ‘간신히, 안간힘’을 다해 내집 마련이라는 목표를 이루었다. 그리고 그 특이한 이름의 고시원이 아직도 그곳에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사진출처: 동아일보

 

 

“그 후 겨울이 왔을 때, 나는 북극곰만큼이나 말이 없는 인간이 되어 있었다. 김 검사는 그해의 고시에서 낙방을 했고, 한 아가씨는 취객에게 폭행을 당해 코뼈가 부러졌으며, 주인아줌마는 은행 바로 앞에서 오토바이 날치기를 당했고, 나머지 사람들은 여전히 스스로를 부끄러워하며 눈을 마주치려 하지 않았다. 그 겨울의 어느 날, 고시원의 히터가 고장을 일으켰다. 수리를 위해, 또 각 방의 통풍구를 점검한다는 이유로 30분가량 모두가 방을 비워야 했다. 담배나 피울까 싶어 옥상으로 올라가니,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곳에 몰려 있었다. 더러는 잡담을, 더러는 담배를, 더러 언 손을 비비며 먼 하늘을 쳐다보기도 하는 사람들을 쳐다보며 - 나는 문득  누구에게나 인생은 하나의 고시(考試)와 같은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했다.” - 본문에서

 몸 하나 반듯이 누이기 어려운 좁은 고시원, 옆방으로 소리가 새어나가지 않을까, 냄새가 피어오르지 않을까 숨죽이는 사람이 한둘이겠으며,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하며 학업을 계속해나가는 고등학생은 또 어떤가. 유원지 저수지에 떠 있는 오리 배를 보며 자전거를 타고 날아간 ET처럼 날아보고 싶었던 사람은 없었겠는가. 작가의 상상력이 현실에 발붙이지 못하는, 지상의 것과는 동떨어진 것이라고 말할 수 없다.

 

 

 '금수저 흑수저' 계급이 있는 '헬조선'에서는 '이생망(이번 생애는 망했다)'이라는 자조가 청년들 사이에서 공감을 얻고 있는 요즘이지만 이 작품을 통해 단지 청년들의 불행을 재확인하는 것만으로는 무의미하다.

 작가는 이 작품 『갑을고시원 체류기에서 거대한 도시 속 ‘고시원’이라는 공간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도시의 변두리로 밀려난 ‘갑을남녀’들이 모여서 고단한 삶을 이어가는 그 곳. 사람들은 각자의 꿈을 향해 나아가지만, 꿈을 이루기란 ‘고시 패스’ 만큼이나 힘든 일이다.

 이 소설의 발표 연도는 2005년이다. 소설의 배경인 1991년과 상관없이 10년이 훨씬 지났건만 지금의 청년 일자리 부족에 대한 사회적 여건은 더욱 악화되어 있다. 지금의 젊은 세대에게도 졸업, 취업, 결혼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성취해야 하는 목표이고 벽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들에게 ‘운이 좋게’, ‘간신히, 안간힘’도 어려운 실정이다. 그런데 이 소설이 나온 10년 전보다 더 처절해진 지금의 젊은 세대이다.